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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70주년]"총알 비오듯 쏟아져"…불바다 고지전서 구사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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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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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고지전투 참전한 6·25참전용사 김현조씨
"전투치르고 나면 고지 정상 1m씩 깎여나가기도"

6·25참전용사 김현조씨가 22일 오후 광주 남구 백운동 대한민국 6·25참전국가유공자 광주남구지회 사무실에서 군 복무 당시 수상한 공로표창장과 군복을 입은 사진을 들고 있다.2020.6.23 /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6·25참전용사 김현조씨가 22일 오후 광주 남구 백운동 대한민국 6·25참전국가유공자 광주남구지회 사무실에서 군 복무 당시 수상한 공로표창장과 군복을 입은 사진을 들고 있다.2020.6.23 /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광주=뉴스1) 허단비 기자 = "하늘에서 총알이 비오듯 쏟아지면 그야말로 고지는 온통 불바다가 된다. 전투를 치른 351고지 정상은 전투 때마다 1m씩 깎여 나갈 정도였다."

15사단 50연대 창설부대원인 김현조씨(90)는 한국전쟁 당시 강원도 고성군의 월비산 351고지에서 북한군과 치열한 고지전을 치른 산증인이다. 현조씨가 탈환을 위해 싸웠던 351고지는 남한과 북한의 치열한 전투 끝에 7번이나 주인이 바뀐 곳으로 유명하다.

"351고지를 우리 50연대가 점령하고 있는데 인민군이 고지로 올라오면 동부전선 바닷가에 있는 군함에서 함포사격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면 아군은 고지에 파놓은 땅굴로 들어가고 하늘에서는 총알이 비오듯이 '다다다다다' 쏟아진다. 그러면 아주 일대가 불바다가 되는 거다. 지상에 있는 인민군은 모조리 전멸되고 고지는 1m씩 깎여나갔다."

그는 70년 전 고지를 탈환했던 순간과 동지들의 희생으로 얻은 고지를 북한에 빼앗겨야만 했던 순간들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김씨는 52년 1월16일 입대 후 제주도 신병훈련소와 하산학교에서 6개월간 군사훈련을 받자마자 최전방인 고성에 배치됐다. 그 곳에서 56년 8월31일 하사로 만기전역 하기 전까지 꼬박 50개월을 가족들의 생사도 모른 채 전방에서 고지 탈환을 위해 사투했다.

그는 "그때는 언제 죽을지도 모르니 가족들과 편지도 하지 않았다. 편지를 하다 갑자기 연락이 끊기면 그것도 가족들한테 못할 일이지 않나…"고 말했다.

전남 해남군 황중리에서 여섯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김씨는 인민군에게 포로로 잡힌 큰 형님 때문에 6·25에 참전을 결심하게 됐다.

당시 남한 공산주의자들이 만든 지하조직이 면 소방대장이던 큰 형님을 포로로 잡아가 총살을 하려 했다. '대한민국에 협조를 했다'는 이유에서 였다. 포승줄에 묶여 끌려 간 형님은 총탄이 빗나가며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이후 후유증으로 남은 생을 힘겹게 살았다고 한다.

시체 더미에서 몰래 살아 돌아온 형님을 집 안에서 숨겨 돌보던 어머니는 시름시름 앓으시다 1년 후 돌아가셨다. 이런 이유에서 그는 어떻게 해서든 전쟁에 참전하려 했다.

6·25참전용사 김현조씨가 22일 오후 광주 남구 백운동 대한민국 6·25참전국가유공자 광주남구지회 사무실에서 가명을 쓰고 참전했다가 최근 수정했다는 병적증명서를 내보이고 있다. 그는 '23살 김천석'이란 가명을 쓰고 6·25에 참전했다.2020.6.23 /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6·25참전용사 김현조씨가 22일 오후 광주 남구 백운동 대한민국 6·25참전국가유공자 광주남구지회 사무실에서 가명을 쓰고 참전했다가 최근 수정했다는 병적증명서를 내보이고 있다. 그는 '23살 김천석'이란 가명을 쓰고 6·25에 참전했다.2020.6.23 /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그때 내가 호적이 4년 늦게 올라서 실제는 20살이었지만 호적에는 16살이었다. 용병 지원을 하면 어리다고 떨어뜨릴까봐서 '23살 김천석'이라 속이고 지원을 했다. 남들은 끌려가는 곳인데 나는 어떻게 해서든 참전하려고 혈안이 돼있었다."

그렇게 해남 땅끝에서 최전방 고성 351고지에 배치된 김씨를 맞이한 것은 혹독한 추위였다. 한 겨울에는 영하 25~30도까지 내려가는 고성은 김씨가 난생 처음 겪는 겨울이었다.

김씨는 "고성에서 대변은 싸자마자 얼어버리니 말도 못하게 추웠다. 추위도 추위지만 배고파서 더 힘들었다. 주먹밥을 가져오는 노무자 아저씨들이 포탄에 맞아 쓰러지면 그날은 모두 굶어야 했다. 보급도 어려워 하루에 내 주먹 반도 안되는 주먹밥을 허겁지겁 먹고 나면 배가 고파 총 들 힘도 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주먹밥을 언급하자 그는 밥을 먹기 위해 적진지에 나갔다가 결국 돌아오지 못한 한 전우를 떠올리기도 했다.

"남해사람인데 이병기라고 내가 이름도 잊지 않는다. 참 똘똘한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본인이 나갈 차례가 아닌데 수류탄 메고 총 차고 와서는 적진지에 가겠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보급이 안 좋으니 적진지 나가는 이들만 따로 불러 몰래 밥을 먹여 보내고 그랬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밥을 먹기위해 목숨을 걸겠나..."

현조씨는 병기씨를 떠올리자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지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그러고는 적진지 대신 나가서 죽고 돌아오지 못했다. 참 기가 막힌다. 그런 시절이었다. 내 생일이 음력 2월5일인데 그 친구가 2월4일에 나가 기일이 그 날이다. 그래서 내가 아직도 그 친구를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추위와 배고픔이 그를 힘들게 했다면 가장 두려움에 떨게 한 것은 바로 '목함지뢰'였다.

6·25참전용사 김현조씨가 22일 오후 광주 남구 백운동 대한민국 6·25참전국가유공자 광주남구지회 사무실에서 강원도 고성군 월비산 351고지를 가리키고 있다.2020.6.23 /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6·25참전용사 김현조씨가 22일 오후 광주 남구 백운동 대한민국 6·25참전국가유공자 광주남구지회 사무실에서 강원도 고성군 월비산 351고지를 가리키고 있다.2020.6.23 /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지뢰를 밟고 죽으면 차라리 다행이지만 죽지 않은 전우들은 그 지뢰밭에 들어가 들쳐메고 나와야 했다. 갑자기 행군을 하다 사람이 두동강이 나기도 하고 다리를 잃기도 했다. 지뢰밭을 걷는 그 기분이 항상 긴장하게 만들었고 아직도 목함지뢰 소리만 들어도 무섭다."

그 역시 지뢰밭에 들어가 다리를 잃은 전우를 구했고 격전지에서 전사하고 부상당한 수많은 동지를 업고 날랐다. 하지만 그가 정부에서 받는 국가유공자 예우는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꽤나 달랐다.

김씨는 "일선에서 총 들고 싸운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았으니 끝까지 이 나라를 지킨 것 아니겠나. 전사자와 부상자 역시 그 혼자 전투하다가 전사하거나 다친 것이 아닌데 우리나라는 생존자들에 대한 예우가 너무 형편없어서 분통이 터질 때도 있다"고 말했다.

생존한 6·25참전 용사들은 예우 뿐만 아니라 부족한 역사인식으로 두번 상처를 받는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6·25 참전국가유공자회'는 6·25의 올바른 교육을 위해 '6·25바로 알리기'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일선 학교에 강연 요청을 하면 거절당할 때가 빈번하다.

현조씨는 "어찌보면 국가가 해야하는 일인데 유공자회에서 전문 강연자를 초청해 교육을 하고 있다. 아직까지 6·25에 대한 인식이 바로 알려지지 않은 점이 참 안타깝고 학교에서 강연 요구를 거절할 때는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6·25 7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를 살아가는 후세가 6·25를 바로 알고 나라를 끝까지 지킨 이들에 대한 충분한 예우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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