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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思見]'회장님'과 '아버지'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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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2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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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사회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검찰청에서 바라다 보이는 삼성전자 서초사옥 C동. 맨위층인 42층이 이건희 회장과 미래전략실장 방이 있는 곳이다. 그 아래가 이재용 부회장실이 있는 41층이다./사진제공=뉴스1
검찰청에서 바라다 보이는 삼성전자 서초사옥 C동. 맨위층인 42층이 이건희 회장과 미래전략실장 방이 있는 곳이다. 그 아래가 이재용 부회장실이 있는 41층이다./사진제공=뉴스1
힘과 권한은 자리로부터 나온다.

권력은 최상위 포식자가 위치한 피라미드식 구조의 정점에서 아래로 흐른다. 권력의 구조적 속성이다. 그래서 위치는 언제나 권력을 상징하는 바로미터다.

사무실 배치는 권력 서열을 보여준다. 관공서나 기업에 가보면 관공서의 장이나 회장의 사무실은 대부분 최고 위층에 있다.

삼성(서초사옥 C동 42층)과 현대자동차(양재사옥 동관 21층) 신세계(성수사옥 20층) 등이 그렇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최고 위층이 아닌 경우는 회장실 위층을 공용공간(회의실 및 연구소-LG, 직원식당-CJ, 귀빈식당-SK)으로 쓰는 경우다.

회장실 아래로 권력의 크기에 따라 자리배치가 이뤄지는데 기업들은 대부분 비슷하다. 유교 영향을 받은 우리 문화의 단면이 자리의 위치에 투영된다.

자리 얘기를 하는 이유는 오는 2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상대로 열리는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현안위원회의 쟁점이 ‘자리’와 관련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지위는 '41층'




삼성 측은 이 사건에서 합병비율이 부당하다고 따지는 것은 법적으로 전혀 타당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법이 정한 대로 했기 때문이다. 또 일성신약과 민사소송에서 이미 합병비율에는 문제가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검찰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 및 시세조종)과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에 이 부회장이 깊이 관여했다며 기소 입장을 굽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삼성이 원하든 원치 않든 그 당시 이 부회장의 역할과 지위(자리)가 어느 수준이었느냐가 핵심 쟁점이 될 듯하다.

기자의 경험과 기억으로 볼 때 2015년 7~9월 합병 당시 이 부회장의 자리는 아직 ‘42층’에는 오르지 못한 ‘41층’이었다.

2008년 삼성이 서울 태평로 본관에서 서초동으로 사옥을 옮긴 후 최고층인 42층에는 이건희 회장의 사무실과 비서실장(전략기획실 혹은 미래전략실)의 사무실이 자리했다. 삼성그룹 의사결정의 넘버원과 넘버투의 자리다.

그 시기에 미래전략실장을 맡은 최지성 실장은 “나는 이재용 부회장이 아닌 이건희 회장의 비서실장”이라며 기업 내 자신의 권한과 역할에 엄격한 선을 긋기도 했다.

42층 아래에는 회장을 보좌하는 컨트롤타워 조직이 있었다. 41층엔 경영지원팀과 전략2팀·인사팀이, 40층엔 전략1팀과 기획팀·홍보팀 등 지원부서가 배치됐다.

그 아래 39층이 삼성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 CEO(최고경영자)의 사무실이 있었다. 2008년 서초사옥 초기 이 부회장은 39층에 자리했다. 부회장으로 승진한 2012년 39층에서 41층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기억한다. 39층 아래에는 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 등이 있었다.
삼성 서초사옥 전경/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삼성 서초사옥 전경/ 사진=김창현 기자 chmt@




회의 때는 말석, 아버지가 아닌 '회장님'




이건희 회장이 출근할 때 열리는 업무보고나 팀장 회의에선 말석이 이 부회장의 자리다. 이 회장이 회의를 주재하면 양쪽으로 실장과 실차장, 전자 사장단이 자리하고 그 아래로 팀장들이 앉으며 끄트머리가 이 부회장의 자리였다. 의사결정을 하는 자리가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을 보고 듣고 배우는 자리다.

사무실 배치나 회의실 좌석뿐만 아니라 지하주차장에 마련된 임원 지정석의 서열도 마찬가지다.

C동 지하 3층 임원주차장 오른쪽으로 엘리베이터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회장 업무용 차량이 주차하는 장소다. 회장의 옆자리에는 미래전략실장의 차량번호가 적혀 있다. 그 옆에 고객 의전용 차량, 다시 그 옆에 이 부회장 차량이 주차한다.

해외 바이어 등 손님들과의 저녁자리가 끝나고 손님을 배웅한 후 차를 타는 순서도 마찬가지다.

서초사옥 5층, 신라호텔이 운영하는 회사 내 귀빈식당인 코퍼레이트클럽에서 식사를 마치는 시간은 보통 밤 9시가 넘는다. 1층 로비에서 고객을 먼저 보내고 그다음 미래전략실장이 차를 타고 떠난 뒤에야 이 부회장은 차에 오른다.

삼성전자 CEO들과의 의전서열도 마찬가지다.
윤종용·이윤우·최지성·권오현 부회장 시절에도 그들이 이 부회장을 앞선 것으로 기억된다. 이 회장의 가신들에 대한 예우와 권한의 범위 차이에 따른 것이다.

이는 이재용 부회장만의 일이 아니다. 다수의 재계 3세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는다. 꼭 “회장님”이라는 호칭으로 격식을 따진다. 그 어느 자리에서도 나서지 않을뿐더러 ‘아버지의 사람들’에게 함부로 하지 못한다. 그게 재계의 불문율이다.

이건희 회장이 업무를 보던 승지원에서 서초동 사무실로 한창 출근하던 2013~2014년 초쯤 삼성 최고위층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11년 삼성전자 경기도 수원사업장에서 열린 선진제품 비교전시회에서 권오당시 삼성전자 대표이사(부회장)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뒷쪽 왼쪽이 이재용 부회장/사진 제공=삼성전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11년 삼성전자 경기도 수원사업장에서 열린 선진제품 비교전시회에서 권오당시 삼성전자 대표이사(부회장)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뒷쪽 왼쪽이 이재용 부회장/사진 제공=삼성전자




재계, 하늘 아래 두개의 태양은 없다




당시 걸음이 불편해 보이는 이건희 회장의 상황을 감안해 “이제는 이 부회장에게 권한을 서서히 넘겨줄 때가 되지 않느냐”고 질문한 것이다.

그때 그는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다”며 “특히 아버지들은 항상 자식들이 부족해 보이기 때문에 살아 있을 때 경영권을 넘겨주는 경우가 드물다. 삼성도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고 2015년 말쯤으로 기억된다. 또다른 최고위층에게 이 부회장의 직책을 삼성을 대표하는 ‘회장’으로 격상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이 회장이 의식불명인 상태가 1년 넘어 어찌됐든 이제는 이 부회장이 책임지고 경영해야 하는 위치에 있고, 그에 맞는 타이틀을 갖추는 게 필요하지 않냐”고 질문했다.

그는 “그러지 않아도 이 부회장에게 회사의 중심을 잡기 위해 ‘회장 직함’을 다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을 전달했다”며 “그런데 이 부회장은 ‘회장님이 병상에 누워 계신데 그 직책을 단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고 거부했다”고 전했다.

이 회장이 쓰러지고 1년이 조금 지난 당시는 휠체어에 앉았다는 얘기가 간간이 들리고 스키를 타다 의식불명 상태에서 6개월 만에 의식을 되찾은 세계적 카레이서 미하엘 슈마허의 사례 등을 얘기하며 이 회장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때였다.

이 회장이 병석에 누운 지 1년 정도 지났을 무렵, 당시 많은 기자가 삼성의 여러 변화를 ‘이재용식 실용주의’라고 표현할 때도 그때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던 기자는 ‘이건희 회장 플랜의 실행자’(관련 기사 참조)라는 표현으로 후배기사를 손 본 기억이 난다.

그 실행계획의 스토리를 들었기 때문에 이재용 부회장의 성과로 포장하기엔 민망한 측면이 있어서였다.

이 부회장이 이 회장의 계획이나 뜻과 무관하게 회사의 지배력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옮기기 위해 합병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추론은 그 당시를 기억하는 기자 입장에선 어쩐지 어설퍼 보인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 오동희
    오동희 hunter@mt.co.kr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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