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직장 가려고 영어시험만 18번" 인천공항 취준생이 허탈한 이유

인천국제공항 계류장에 국내 항공사 여객기들이 멈춰서 있다. /사진=뉴스1

106만1000원.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인천공항공사')에 취업하기 위해 한 취업준비생이 토익과 토익스피킹(토스) 등 영어 시험에만 쏟아 부었다는 금액이다.

최근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보안요원들의 정규직 전환 소식에 취준생들의 반발이 큰 배경으로 이같은 취업 환경도 꼽히고 있다. 공기업 중에도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인천공항공사 일반 공채에서 서류라도 통과하려면 여러 자격 요건을 채우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데 비정규직 전환자들의 정규직 전환 절차와 형평성이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토익·한국사·자격증은 기본…영어시험에만 100만원 훌쩍"
24일 온라인상에서는 전날 한 인천공항공사 취준생이 공기업 취준생 온라인 카페 '공준모'에 올린 글이 취준생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이 글 작성자 A씨는 인천공항 비정규직 보안요원 정규직 전환 소식에 허탈해진다며 이 글을 올렸다. A씨는 "인국공(인천공항공사)을 위해 토익 10번, 토익스피킹 8번을 봤다"며 "매일 허벅지를 찔러가며 14시간씩 전공 공부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공부한 A씨는 4개월 만에 700점이었던 토익 점수를 980점까지 올렸다. 토익 응시료가 회당 4만4500원, 토익스피킹 응시료가 7만7000원임을 고려하면 이 점수를 만들기 위해 총 106만여원을 쓴 셈이 된다.

이 글은 이날 7800여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반향을 일으켰다. 다른 인천공항공사 취준생들 역시 A씨와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반응이다.


인천공항공사 취준생 진모씨(27)는 "인사 공고에는 토익 800점만 넘으면 된다지만 막상 합격자 스펙을 조사해보면 대부분 만점에 가깝다"고 말했다. 진씨는 또 "게다가 대부분 가산점을 최대로 벌 수 있도록 자격요건을 채우고 있다"며 "가산점 대상인 레벨 7 이상의 토익스피킹이나 오픽(OPIc) IH 이상 등급과 컴퓨터활용능력 1급, 한국사능력시험 2급 이상 등은 기본으로 딴다"고 설명했다.

기술직의 경우 컴퓨터활용능력 시험 대신 산업안전기사 등 각 직렬에서 가산점을 주는 기술기사 자격을 따고 취준에 들어간다는 설명이다.

진씨는 "합산 점수 득점 순위로 2차 필기시험을 볼 수 있기 때문에 3~5% 가산점을 받기 위해 이런 자격시험 응시는 필수"라며 "각 자격시험 응시료가 보통 4만원 안팎인데 교재비 등을 고려하면 시험 하나 보는데 수십만원은 기본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려운 전공시험, 세 번의 면접…"하루 5~10시간씩 공부해도 벅차"

지난해 10월 경기도 용인시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9 용인시 일자리 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줄 서 있다. /사진=뉴스1

인천공항공사 공채의 경우 서류 통과까지도 엄청난 노력을 요구하지만 이후 전형도 통과가 험난하다는 것이 취준생들 설명이다.

지난달 29일부터 진행되는 인천공항공사 2020년도 상반기 일반직 신입직원 공채 공고에 따르면 총 전형 단계가 5개다. 국가직무능력표준(NCS)과 전공과목 등을 보는 2단계 필기 전형을 통과해도 AI(인공지능) 면접과 직무면접, 인문학 논술시험과 심층면접 등을 통과해야 한다. 매년 70여명을 뽑는데 사무 직렬은 매년 세 자리 수 경쟁률을 기록한다.

공기업 취업 준비 경험이 있는 직장인 정모씨(31)는 "인천공항공사는 공기업 취준생들 사이에서도 난이도가 최상위급이라고 여겨져왔다"며 "다른 공기업들 중에는 NCS만 보거나 면접도 한 번만 보기도 하는데 인천공항공사는 요구사항도 많고 준비하기 어렵기로 소문나 있다"고 말했다.

공기업 취준생 카페에서도 인천공항공사 취준생들이 그동안 공채 시험 공부를 위해 들인 시간이 적잖았다는 토로가 많았다. 다른 직장을 다니며 인천공항공사 신입 공채를 준비 중이라는 한 누리꾼은 "서류 전형 요건을 채우려고 10번 넘게 토익을 보고 기사 자격증도 따 놨더니 NCS의 벽이 높더라"라며 "매일 출근 전, 퇴근 후 5시간씩 공부했는데 이번 뉴스를 접하니 허탈하다"고 했다.
"비정규직 전환자들도 시험 친다 해도…"
이처럼 취업문을 통과하는데 필요한 비용과 시간이 적잖다보니 기존 공항 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이 불공평하다는 불만이 취준생들 사이에서 나온다.

인천공항공사는 논란의 불씨가 된 보안요원들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도 입사 시점에 따라 NCS 등 입사 전형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불만이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2017년 5월 정규직 전환 선언 이후 입사한 보안요원들의 경우 서류 전형과 인성검사, 필기시험, 면접 등을 치러야 한다. 이중 일부 탈락자도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인천공항공사 인사팀 관계자는 머니투데이와 통화에서 "보안요원 정규직 전환 전형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소방직 공개경쟁채용 전형과 비슷하게 운영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소방직도 기존에는 비정규직으로 선발했지만 2017년 5월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 전환 선언에 따라 이번에 처음으로 정규직 전환 전형이 시행됐다.

해당 공고에 따르면 2017년 5월 이후부터 인천공항공사에서 비정규직 소방대 운영용역으로 일했다면 외부 경력자들과 함께 서류전형과 NCS 기반 필기전형, 체력검정, 두 차례의 면접 등을 거친다. 64명이 선발될 예정이다.

이미 2년 이상 인천공항에서 근무한 2017년 5월 이전 입사자도 비슷한 전형 과정을 거친다. 이 전형 과정으로는 대상자 대부분인 171명이 뽑힌다.

취준생들 사이에서는 "시험은 구색 맞추기일 뿐 아니겠느냐"는 반발이 나온다. 인천공항공사 취준생 김모씨(30)는 "비정규직 대상자들끼리 따로 경쟁을 시킬 테지만 경쟁률 자체가 일반 전형보다 매우 낮지 않겠느냐"며 "근무 경력을 고려하더라도 형평성이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