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오락실 뒤 봐주고, 들키자 조폭에 SOS…그 경찰의 최후 [서초동살롱]

경찰청/사진=뉴스1

어느 날 사무실로 출근하던 A경위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평소보다 삼엄한 분위기였던 것이다. 그렇게 출근 중이던 A경위는 자신의 사무실에 검찰 수사관들이 나와 압수수색을 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A경위는 당황했지만 차분히 발걸음을 집으로 돌렸다. 하지만 집도 안전하지 않았다. 집 근처에도 검찰 수사관으로 보이는 이들이 보였다. A경위는 상황을 눈치채고 잠적하기로 했다. 그는 현장을 빠져나가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A경위가 전화를 걸었던 상대방은 대구 지역 유명 폭력조직 K씨였다. A경위와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던 K씨는 그가 검찰 수사를 피해 도주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은신처를 마련해 줬다. A경위는 K씨의 이러한 도움으로 수사망을 피해 3개월 간 도망 생활을 하다 결국 체포됐다. 현직 경찰과 지역 조폭 간 유착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대구지검 강력부(부장검사 김정헌)는 지난 23일 K씨를 범인도피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 A경위의 도주를 도운 혐의다. A경위는 진즉 검찰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고 뇌물수수 및 공무상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과 벌금 4000만원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검찰 수사 결과 대구 출신의 A경위는 몇 개의 불법 오락실 업주들로부터 수사 정보를 알려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아왔다. A경위는 2019년 4~5월경 업주들로부터 25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했다. 이 대가로 A경위는 업주들에게 단속 정보를 제공하고 단속을 무마시켜주는 등 편의를 제공했다. 또 이들 업주들의 경쟁업소 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A경위에게 뇌물을 제공하던 업소 중 한곳이 다른 경찰관에 의해 단속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다행(?)히도 A경위가 나서서 무마시켰지만, 이때부터 업주들은 A경위를 불신하게 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업주들은 K씨와 같은 조직 소속인 F씨를 통해 A경위에게 뇌물을 제공했다. F씨는 업주들로부터 수수료 명목으로 따로 돈을 받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수수료 문제로 F씨와 업주들 간 관계가 틀어졌고 결국 이 과정에서 A경위가 검찰 강력부의 수사를 받게 된 것이다.


검찰은 A경위를 상대로 구체적 사실관계를 캐물었으나 그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고 한다. A경위는 조사 과정에서 업주들에 관해선 일부 진술하기도 했으나 F,K씨 등 지역 폭력조직에 대해선 일절 진술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통화내역 등 구체적 증거를 제시해도 이를 부인하거나 진술을 거부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검찰은 피의자들의 진술과 구체적 증거물들을 바탕으로 A경위 및 오락실 업주들, 뇌물 전달에 가담한 브로커들, 도피처를 제공한 K씨 등 일당을 전부 재판에 넘겼다. 도주했던 A씨는 도주 중 파면됐다.

현직 경찰관들의 이같은 직무범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정당국에 따르면 지난 15년간 검찰 등 수사기관에 적발돼 수사를 받거나 재판에 넘겨져 처벌받은 현직 경찰관들의 직무범죄는 240여 건에 달한다. 지난해 7월에는 자신이 마약 혐의로 조사 중이던 피의자가 성매매 알선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를 마약 혐의로만 송치한 뒤 함께 성매매 알선을 한 현직 경찰관이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법조계에서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진 만큼 지역 경찰들도 자정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경찰개혁의 일환으로 자체경찰제 등 시행을 앞둔 시기에 경찰관들이 지역 토착세력과 유착되지 않을 수 있도록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지역 경찰관들의 경우 대부분 그 지역 출신인 경우가 많다"면서 "그러다보면 작은 동네의 경우 한다리만 건너도 다 알 수가 있는데 그런 경우 경찰관이라 하더라도 사람인지라 유착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토착세력과 경찰관들의 유착을 막기 위해서라도 근무지를 자주 순환시키는 등의 방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