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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간송미술관 사라진다면…"모으기보다 지키기 왜 어렵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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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종태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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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07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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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5월 말 간송 전형필의 장손이 보물 284호 금동여래입상과 보물 285호 금동보살입상을 경매에 내놨다. 조부가 필생의 업으로 모은 문화재를 팔려는 것은 다름 아닌 상속세 때문이었다. 2년 전 간송의 장남인 전성우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이 타개하며 문화재를 승계한 후손이 막대한 상속세를 낼 방법이 없자 어쩔 수 없이 조부의 소장품을 매각하려는 것이다.

2.
한국의 대수장가인 간송.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유출될 뻔한 우리 문화재 5000여점을 수집한 간송은 평생을 수장가의 길을 걷는다. 그 스스로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은 거부였지만 간송은 가업을 잇거나, 남들이 부러워할 직업을 갖는데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 간송에게 가장 즐거운 일은 그저 책을 사모으고 읽는 것이었다.

이런 간송은 위창 오세창을 만나며 '전문 소장가'로 다시 태어난다. 오세창의 아버지는 오경석으로 추사 김정희의 제자였다. 때문에 오세창도 많은 서화를 물려받으며 서예와 전각에 남다른 일가견이 있었다. 간송이라는 호도 오세창이 지어줬을 정도로 둘은 남다른 친분을 쌓는다.

소설가 이충렬의 역작 '간송 전형필'에 따르면 오세창은 간송에게 소장가가 절대 어겨선 안될 2가지 철칙을 강조한다. 첫째, 수장품을 되팔지 말라. 오세창은 "말년에 생활이 힘들면 평생 눈에 갖다바쳤던 것을, 입에 갖다바칠 수밖에 없다"고 충고한다. 하나 둘씩 소장품을 팔기 시작하면 결국 남는 게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오세창은 "모으는 일보다 지키는 일이 더 힘들고 어렵다"며 "팔고 싶은 마음을 잘 참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화를 처분하고 싶을 때면 아예 서첩과 화첩을 만들어 쉽게 팔 수 없도록 마음을 다잡으라고도 했다. 오세창은 특히 평생 모은 소장품이 자녀들 세대에 매각되는 것을 절대 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3.
둘째, 어떤 경우에도 정치적 우여곡절에 휩쓸리지 말라. 오세창은 일제강점기에 재산을 지키기 위해 일제에 협력하는 상황을 조심하라고 신신당부 한다. 청나라나 러시아, 미국 같은 열강들은 물론 국내 사회주의자나 민족주의자도 가까이 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정치권의 어느 한쪽에라도 발을 들여놓는 순간 소장가로서는 비극적 결말을 맞을 수 있다는 게 오세창의 조언이었다. 소장가의 길을 오롯이 가려면 어떤 정치적 세력과도 거리를 두라는 것이다.

4.
간송은 이 두 철칙을 죽을 때까지 지켰다. 그 스스로 서화와 골동품에 미친 사람 행세를 했다. 사람들은 문화재 구입에 전 재산을 탕진했다며 비웃었지만, 그 비웃음 때문에 조선총독부의 현금 동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자금이 필요한 지하 활동가들이 때때로 그의 귀가길을 막아선 채 돈을 내놓으라 협박했지만 그럴 때마다 사금파리를 주며 "이걸 사느라 돈이 다 떨어졌는데 이거라도 가져가겠소?"라고 했다. 간송은 그렇게 목숨을 걸고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고려석탑은 물론 단원과 혜원, 추사의 작품들을 모았다. 1조원의 가치를 갖는다는 훈민정음 해례본도 그렇게 손에 넣었다.

5.
그러나 간송은 소장가의 철칙에서 늘 자유롭지 못했다. 고민 끝에 이 철칙들을 끝까지 지킬 묘안을 짜냈다. 개인 박물관이었다. 1938년 8월 간송은 서울 성북동에 '보화각'이라는 이름의 개인 박물관을 짓는다. 지금의 간송미술관이다. 간송미술관은 2010년대 중반까지 1년에 한 번씩 일반인에게 공개할 때면 소장품을 보려는 사람들로 수백미터 장사진을 이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이제 간송의 철칙은 다시 위태롭다. 장손이 상속세 부담을 피하지 못하고 국보급 불상 외에 추가로 문화재를 더 팔 예정이다.

비단 간송의 문화재만 지키기 힘든 게 아니다. 재계의 수많은 기업들은 엄청난 상속·증여세 부담으로 창업주 손자 세대에선 온갖 문제들이 터지며 만신창이가 되기 일쑤다. 한진그룹이나 롯데그룹처럼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는가 하면, 삼성그룹처럼 수년간 검찰 수사를 받기도 한다. 선대의 유업을 지키려는 것만으로 자칫 죄가 되는 시대다. 100년 기업은 커녕 퀀텀점프(대약진)도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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