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개입 안했다더니…대표간 대화서 "셧다운 하는게 맞다"

(서울=뉴스1) 이성철 기자 = 이스타항공이 지난 26일에 이어 임시 주주총회를 재차 열었지만 무산되면서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 불발 가능성은 더 커졌다. 이스타 항공은 이날 주총에서 발행 주식 총수를 1억주에서 1억5000만주로 늘리는 정관 일부 변경안과 신규 이사 3명 선임, 신규 감사 1명 선임 안건 등을 상정할 계획이었으나, 제주항공 측에서 이사와 감사 후보자 명단을 전달하지 않으면서 선임안은 상정되지 못했다. 사진은 6일 강서구 이스타항공 본사 모습. 2020.7.6/뉴스1

제주항공 (10,550원 ▼250 -2.31%)이 이스타항공 인수 과정에서 희망퇴직 및 셧다운(전 노선 운휴)을 요구한 것이 사장간 대화녹취 및 회의록을 통해 확인됐다. 개입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이스타항공의 행보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제주항공의 그간 입장과 상반된 내용이다. 양사의 M&A(인수합병)도 사실상 무산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6일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가 공개한 녹취파일에 따르면 지난 3월 20일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는 셧다운 및 체불임금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이석주 당시 제주항공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 대표는 통화에서 "셧다운이라는게 항공사의 고유한 부분이 사라지는 것"이라며 "어쨌든 조금이라도 영업은 (국내선이라도) 해야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있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희망퇴직 프로그램으로 들어가려면) 지금은 셧다운 하는 것이 예를 들어 관(官)으로 가게 되더라도 맞다"고 답했다. 최 대표의 슬롯 축소 우려에 대해서는 "그건 저희가 각오하고 있다. 저희가 국토부에 달려가서 뚫겠다"며 안심시켰다.

체불임금에 대해서도 이 대표는 제주항공이 책임지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놨다. 최 대표가 "남아 있는 사람들이 제주가 미지급 된 급여를 다 줘야 된다는 것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한다"고 하자 이 대표는 "딜 클로징을 빨리 끝내자"며 "딜 클로징하면 그 돈을 가지고 미지급한 것 중에 제일 우선순위는 임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협력업체에 미지급된 자금에 대해도 최 대표가 우려를 보이자 이 대표는 "제 명의로 법에 저촉이 안되는 수준으로 협조해달라고 레터를 보냈다"며 "제주항공이 최대 주주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협조해달라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노조가 공개한 양사간 간담회 내용에서도 제주항공측이 이스타항공의 구조조정 및 셧다운을 요구한 정황이 나오고 있다. 3월 9일 간담회 회의록에 따르면 제주항공은 기재축소 4대에 따른 이스타항공의 직원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10일 간담회에서는 비용 통제를 이유로 이스타항공에 셧다운을 요청했다. 이스타측은 영업 의견을 취합해 최종 결정하겠다고 답했고 실제로 같은 달 24일부터 셧다운 체제에 들어갔다.

제주항공은 이르면 내일 이같은 셧다운 지시 등 쟁점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힌다는 방침이다.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의 희망퇴직과 셧다운은 자체적인 결정이라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그런만큼 이스타항공 직원들의 체불임금도 인수 전에 해결돼야 한다는게 제주항공의 주장이었다.

이날 이스타항공은 지난달 26일에 이어 다시 임시 주주총회를 소집했으나 역시 안건 상정을 하지 못해 재차 무산됐다. 신규이사 및 감사 선임안을 올렸지만 제주항공이 후보 명단을 주지 않고 있어서다. 이에 이스타항공은 이달 23일 다시 임시 주총을 열기로 결정했다.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조가 공개한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희망퇴직 개입 관련 내용. /자료제공=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