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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맞을 짓'을 한 선수는 없다[50雜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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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형 기자/미디어전략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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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06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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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김준형의 50잡스]50대가 늘어놓는 雜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 여전히 나도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의 소소한 다이어리입니다.
이 세상에 '맞을 짓'을 한 선수는 없다[50雜s]
철인3종 협회 사이트에는 한국 엘리트 선수들의 랭킹이 게시돼 있다.
여자 엘리트 선수 ‘1등’에 올라있는 이름은 장○○. 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한 고 최숙현 선수의 동료들이 감독, 팀 닥터와 더불어 최 선수에게 '폭력'을 가한 가해자로 지목한 이다.
1등이 되기 위해 그는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1등’은 그에게 모든 행위를 합리화시켜주는 트로피였을까. 그 한참 아래 ‘18등’에 올라 있는 ‘최숙현’ 이름 석자가 애처롭다. 1등이 보기에 18등은 열일곱 계단이나 열등한 존재였을까.

4년전 개봉한 ‘4등’이라는 영화가 있다.
초등학생 수영선수 준호(유재상), 국가대표 출신 코치 광수(박해준)이 주인공이었다(박해준은 ‘부부의 세계’에서 김희애의 남편 역할로 혜성처럼 등장해 온 국민의 욕을 먹은 그 배우다).
수영을 너무 좋아하지만 늘 4등에 그치곤 하는 준호는 ‘난 수영이 좋은데, 꼭 1등을 해야 하나요’라고 속으로 항변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매를 견딘다. 아시아 선수권대회 1등까지 했던 수영천재였던 광수는 술과 도박 게임에 빠진 루저다. 그러면서도 유능한 코치로 학부모들 사이에 소문이 나 있다. 그의 교육 비법은 폭력이었다.
“하기 싫고 도망가고 싶을 때 잡아주고 때려주는 선생이 진짜다. 내가 겪어보니 그렇다” 빗자루 몽둥이로 아이를 패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정작 본인 역시 선수시절 감독에게 매질을 당한 피해자였다. 감독의 폭력을 기자에게 제보했지만 도움을 받지 못하고선수생활을 그만 뒀다. 아이러니하게도 준호 아빠가 바로 제보를 받았던 체육부 신문기자였다. 준호 아빠는 광수로부터 고발 제보를 받고도 외면했다. ‘맞을 짓을 했겠지’라며 기사를 쓰지 않았다.

두어달 전쯤인가 수영에 관한 영화를 찾다가 이 영화 이야기를 듣고 다운 받아서 봤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이 영화는53회 대종상 영화제(신인남자배우상), 17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하고 평론가들로부터도 호평이 이어졌지만, 관람객은 3만9544명에 그쳤다.
훈육이라는 이름의 폭력, 부모로서의 무력감, 폭력의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불편한' 영화라 흥행에 실패한 것 같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바람대로 많은 국민들이, 체육계 인사들이, 아니 철인3종 지도자와 선수들만이라도 이 영화를 보고 문제의식을 가졌더라면 고 최숙현 선수같은 비극이 혹시라도 막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헛된 생각도 든다.
영화 '4등'의 한 장면
영화 '4등'의 한 장면

부모 입장에선 아이들의 진로 중에 스포츠를 생각하다가도 한국 스포츠계의 반복되는 폭력, 제왕적 감독, 노예처럼 부림을 당해야 하는 학부모와 선수의 처지를 생각하고 그만 두는 경우가 많다. 특히 딸 가진 부모들은 더하다. 폭력은 한국 스포츠 발전의 가장 큰 적이다.

과거 한국 스포츠의 동력을 ‘헝그리 정신’이라고 했지만, 지금 시대엔 운동 그 자체를 즐기고 좋아하지 않으면 한계가 뚜렷하다. 철인3종 경기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운동본능과 능력에 관한 스포츠다. ‘게임’이라는 요소가 있는 구기종목과 달리. 오로지 달리고 수영하고 자전거 페달을 밟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몇년 전부터 아마추어 철인3종 경기에 참가해 오고 있는 터라, 엘리트 선수들이 얼마나 힘든 훈련을 거치는지 조금은 짐작이 간다. 최선수 역시 한 가지 제대로 하기도 힘든 세 종목을 끝없이 연마하기 위해 소녀시절부터 이를 악물었을 것이다.
피말리는 속도 경쟁을 해야 하는 올림픽코스(오픈워터 수영 1.5km, 사이클 40km, 달리기 10km)나 초인적인 체력과 인내력을 요구하는 킹코스(수영 3.8km, 사이클 180km, 달리기 42.195km) 모두 운동 그 자체를 좋아하지 않으면 선수생활 하기 힘들다.
최선수의 일기장에는 수영 육상 사이클 훈련 스케줄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고된 훈련을 힘들어하면서도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견뎠다. 숱한 모욕과 폭력을 겪으면서도 철인3종이 좋아 버텼다. 짐승처럼 때리고 욕해서 운동을 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가해자들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고 짐승처럼 학대했다. 짐승은 그들이었다.

어떤 형태건 폭력은 갈수록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너를 위한 것’라는 거짓으로 합리화된다. 지위를 이용해서 폭력을 가하고, 폭력을 통해 다시 지위를 강화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를 ‘때린’ 적은 없지만, 나 역시 가끔은 손들기 엎드려뻗쳐 같은 체벌을 했다. 꼬집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뭐 그리 대단한 잘못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일들로 벌을 줬다. 양육자의 체벌 빈도가 많을수록 아이의 공격적 성향이 높다는 건 이제는 상식인데.
도로시 로우 놀테라는 작가가 쓴 시 '아이들은 삶에서 배운다(Children learn what they live)'의 귀절이 아프다. “꾸지람 받으며 자란 아이, 비난하는 걸 배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성동일이 딸 혜리에게 했던 대사 그대로다. ‘미안하다, 아빠가 처음이라 몰라서 그랬다’

그런데 감독 코치는 ‘처음’이 아니잖나. ‘전문가’잖나. 때리고 욕해서 1등 만들거면 조폭이나 살인범을 감독 코치로 쓰지 뭣하러 전문가를 찾나.
채찍질은 스스로의 마음으로 하는 것이지 남이 매로 하는게 아니다. 이 세상에 감독코치에게 맞을 짓을 한 선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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