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더듬는 팀닥터·때리는 감독…체육계의 흔한 이야기

"선수를 그냥 쓰고 버리는 물건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어요.…말로 선수한테 엄청 수치심을 줘요. '야, 너 일로와. 이 새끼', '이년아', '글러빠진 새끼야' 이런 표현을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런 것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실업선수 A씨·26)

고(故) 최숙현 선수 사건을 계기로 체육계 내에서 쌓여온 병폐가 곪아 터졌다. 감독, 선배라는 우월적 지위를 등에 업고, 자행된 가혹행위가 곳곳에서 나타났다. 폐쇄적인 구조로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쉽지 않았다.


경찰은 체육계 내에 불법행위를 뿌리뽑기위해 특별수사단을 구성하고, 특별 신고 기간을 운영한다. 선수들이 두려움 없이 신고할 수 있도록 운영할 계획이다.
경찰 특별수사단 구성...상습적인 가혹행위한 경우 구속 수사경찰청은 7월 9일부터 8월 8일까지 한 달간 체육계 불법행위 특별신고 기간을 운영한다고 7일 밝혔다. 경찰은 신고기간 운영과 집중수사 추진을 위해 전국 지방경찰청에 2부장을 단장으로 특별수사단도 구성한다.

체육계 불법행위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우월적 지위와 학연·지연 등 관계(선·후배, 감독·선수 등 상·하관계)가 특징이다. 보복·따돌림·퇴출 등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으로 피해자가 신고나 도움을 요청하는데 소극적인 경향이 있다.

경찰청은 “피해자가 신분상 불이익 등에 대한 두려움 없이 신고할 수 있도록 특별신고기간을 운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폭력행위 △강요·금품 갈취 △성범죄 △모욕・명예훼손, 경범죄위반(불안감조성) 등 각종 불법행위가 주요 수사 대상이다.


경찰은 체육계 불법행위 특별수사단을 구성해 관련 첩보를 수집하고 불법행위가 확인되면 엄정하게 수사할 방침이다. 또 본청에도 단속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수사국장을 중심으로 관련 기능 합동대응체계를 구성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피해자 면담을 통해 사건경위와 피해정도 등을 자세히 확인하고 지속적·상습적 행위 등 중한 사안의 경우 구속수사 등 엄정하게 처리할 방침”이라며 “수사 과정 중에 확인된 내용은 유관기관(문체부·인권위 등)에 통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실업 선수 4명 중 1명 폭력 경험..."억지로 술도 먹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고 최숙현 선수 사망 관련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직장 운동부 감독 A씨가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사진=뉴스1

가혹행위는 체육계 전반에 퍼져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업선수 125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실업팀 선수 3명 중 1명은 언어폭력을, 4명 중 1명은 신체 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선수에게 술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인권위가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선수 B씨(26)는 "미리 통보도 없이 감독이 '오늘 회식 있다' 이런 식으로 없이 강압적으로 요구하고, 억지로 술을 먹어야 했다"고 했다. 심지어 2차로 노래방에 강제로 데려간 뒤 자정이 넘도록 돌려보내지 않는 일도 있었다.

특히 여성 선수를 상대로 성폭력을 저지르는 지도자도 많았다. 팀 닥터가 치료를 이유로 가슴과 허벅지를 만져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는 최숙현 선수의 사례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선수 C씨(39)는 "시합 끝나고 카메라가 집중됐을 때 감독님한테 두 팔 벌려 가슴으로 안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정 교육을 잘못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심지어 어떤 지도자는 고등학생 여자선수에게 술 마실 때 무릎 위에 앉아보라고 하더라"고 밝혔다.

하지만 선수들이 이런 문제를 직접 외부에 제기하기는 쉽지 않다. 팀 내부 구조 자체가 폐쇄적인 데다 문제제기 이후 벌어질 상황에 대한 불안감도 크기 때문이다. 실업팀 생활의 어려움을 대처하는 방법에 71.7%가 '괜찮은 척 웃거나 그냥 넘어감'이라고 답변했을 정도다.

허정훈 중앙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문제가 있는 지도자는 일벌백계하고 다시 지도자 생활을 할 수 없도록 가해자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제2의 최숙현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