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호소' 전략?…왕기춘 '국민참여재판' 신청 이유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아동·청소년의 성보호법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구속된 전 유도국가대표 왕기춘이 26일 오전 첫 공판이 열리는 대구지방법원에 도착해 마스크와 베이지색 수의 차림으로 법무부 호송버스에서 내리고 있다. 2020.6.26/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대구=뉴스1) 남승렬 기자 = 10대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혐의(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구속기소된 2008년 베이징올림픽 유도 은메달리스트 왕기춘의 국민참여재판 공판 준비 기일이 오는 10일로 예정된 가운데 그의 국민참여재판 신청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앞서 첫 공판일인 지난달 26일 왕기춘은 신원 확인 과정을 마친 뒤 재판부가 '국민참여재판을 할 용의가 있느냐'고 묻자 "원한다"고 답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국민참여재판은 시민 중에서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들이 재판에 참석해 유·무죄 평결과 양형에 관한 의견을 내리는 재판 방식이다.

형사사건을 대상으로 하며, 국내에서는 2008년 2월12일 대구지법 11호 법정에서 처음 열렸다.

배심원들은 심리에 관여한 재판부와 함께 토의하며 양형에 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다만, 배심원들의 평결과 양형에 관한 의견은 권고적 효력만 갖는다.

법조계는 왕기춘의 국민참여재판 신청에 대해 다소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들의 경우 대부분 재판 과정이 일반에 노출되는 것을 꺼려서다.

대구의 한 변호사는 "대중의 관심이 큰 유명인의 민감한 형사사건의 경우 국민참여재판 신청은 이례적"이라며 "왕기춘의 경우 올림픽 메달리스트라는 이력과 피해자와의 관계성 등을 시민 배심원단에 감정적으로 호소해 감형이나 무죄를 이끌어내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왕기춘의 국민참여재판 신청이 재판 과정과 판결 과정을 전문 법조인이 아닌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감성 호소' 전략이라는 것이다.

통계적으로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 선고율은 일반 형사사건 재판보다 높은 편으로 알려졌다.

대검 자료를 보면 2018년 실시된 국민참여재판 175건 가운데 무죄 선고가 34건(19.4%)으로 나타나 같은해 진행된 일반 형사 재판 23만7699건 중 무죄 판결이 7496건(3.15%)인 것과 비교하면 크게 높은 편이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대구의 한 변호사는 "국민참여재판의 취지는 법조 엘리트들의 기소와 재판 독점에 변화를 준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피해자 입장은 고려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며 "왕기춘 사건의 경우 피해자는 국민참여재판으로 또다른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왕기춘은 2017년 2월 자신이 운영하는 유도체육관에 다니는 A양(17)을 성폭행하고 지난해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B양(16)과 10차례 성관계를 갖는 등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한 혐의 등으로 지난 5월1일 구속됐다.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그는 한때 '유도 천재'로 불리는 한국 유도계의 간판 선수였다.

왕기춘은 서울체고 3학년 시절 2006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남자 73kg급 3위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2007년 19세의 나이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세계유도선수권에서 엘누르 맘마들리(아제르바이잔)을 꺾고 정상에 올랐다.

그는 2008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전국적인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결승전에서 맘마들리에게 13초 만에 한판패를 당했지만, 갈비뼈가 부러진 상황에서 부상 투혼을 발휘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왕기춘은 유도 외적인 문제로 물의를 일으키기 시작하며 몰락의 길을 걸었다.

2009년 경기 용인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여성을 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아 대한유도회로부터 사회봉사 징계가 내려졌다.

2012년에는 음주운전으로 벌금을 냈고, 2년 후 육군훈련소에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들어갔다가 발각돼 영창 처분을 받기도 했다.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