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퇴직 시켜달라" 성명서 낸 국책은행 노조

(왼쪽부터) 윤종원 IBK기업은행장,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방문규 수출입은행장/사진=머니투데이DB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IBK기업은행 등 국책금융기관 노동조합(노조)이 ‘희망퇴직’ 실시를 요구하고 나섰다. 보통 노조는 희망퇴직을 반대하는데 국책금융기관 노조가 희망퇴직을 요구하는 건 유명무실한 ‘희망퇴직제도’를 정상화할 필요성 때문이다.


사측과 금융당국도 인력운용 효율화와 신규 일자리 창출을 위해 희망퇴직 활성화가 필요하단 입장이지만 정작 퇴직금 현실화를 해결할 ‘키’를 쥔 기획재정부는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국책금융기관 노조는 15일 성명서를 내고 금융공공기관 희망퇴직 논의에 기재부의 조속한 참여를 촉구했다.

노조는 “공공부문 임금피크제는 기획부터 허술해 임금수준과 직군별 차이를 반영하지 않아 생계 때문에 경제활동을 포기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울며 겨자 먹기’ 정책이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의미의 폭력적인 제도”라며 “본연의 업무, 중요 업무에서 배제된 고경력·고능력 직원들은 잉여 인력 취급을 받으며 노동자의 자존과 존엄을 훼손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차라리 하루빨리 사회에 연착륙시킴으로써 인생 제2막을 준비하도록 하는 것이 개인적,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며 “그들에게 희망퇴직은 명예퇴직이며 존엄퇴직”이라고 덧붙였다.


노조가 성명서를 발표한 건 금융공공기관 임금피크 적용 대상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업은행의 내년 말 임금피크 적용 예상 직원수는 984명에 달한다. 1990년대 초·중반 대거 입사한 50대 후반 직원들이 차례로 임금피크에 진입해서다.

다른 국책은행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기재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임금피크제 직원 비중은 산업은행 18.2%, 수출입은행 7.0%(이상 2016년 정원 기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임금피크 적용 대상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금융공공기관에서 희망퇴직제도는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다. 실제로 수출입은행은 2010년, 산업은행은 2014년, 기업은행은 2015년을 마지막으로 희망퇴직자가 없다.

시중은행과 달리 희망퇴직자가 없는 건 임금피크 진입 대신 퇴직을 선택했을 때 손에 쥐게 될 퇴직금이 적어서다. 현재 국책금융기관 희망퇴직자에게 주어지는 퇴직금은 ‘임금피크제 이후 임금의 45%’로 제한돼 있어 대부분의 임금피크 대상 직원들은 억지로 정년을 채우고 있다. 희망퇴직 신청 시 받을 돈이 정년을 모두 채웠을 때의 절반 가량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에 노조뿐 아니라 사측도 인력 운용의 효율화를 위해 정부의 전향적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윤종원 기업은행장은 취임 전 노조와 ‘희망퇴직 문제를 조기 해결한다’는 노사선언문에 서명했다.

방문규 수출입은행장도 지난 2월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임금피크 대상자 한 명이 퇴직하면 청년 2~3명을 채용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부에서도 충분히 고려해 볼만 한 일”이라고 했다.

금융당국도 기본적으로 금융공공기관 희망퇴직 활성화에 공감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항아리형 인력구조 개선과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취지에서다. 노조 역시 희망퇴직이 청년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노조는 “공공기관 희망퇴직은 곧바로 대한민국 청년이 가장 선망하는 일자리의 창출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예산권을 쥔 기재부의 벽을 넘기는 쉽지 않다. 기재부는 국민정서와 다른 공공기관과의 형평성 문제를 들어 퇴직 때 받을 돈을 높여줄 수 없단 입장이다. 기재부는 지난달 열린 3차 노사정 간담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어려운 현재 경제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직업안정성을 보장받는 금융공공기관의 퇴직금을 급격히 늘리는데 기재부가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며 “금융공공기관의 퇴직금 현실화는 유연함만 발휘하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