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거래허가 한달…"노후에 강남 살고싶어"도 될까?

강남·송파 일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지 한달이 됐지만 신규 주택을 취득할 수 있는 거주사유가 구청별로 제각각인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신규 주택을 취득할 경우, 거주 사유를 구체적·객관적으로 소명하라고 했지만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은데서 비롯된 문제다.


20일 강남구·송파구 등에 따르면 대치·잠실·삼성·청담동에서 토지거래허가제가 시행된 이래 지금까지 접수된 허가신청 건수는 54건이다. 강남구는 이 중 16건, 송파구는 10건에 대해 거래 허가를 내줬다. 아직 제도 시행 초반이라 불허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지역들은 지난달 23일부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였다. 내년 6월 22일까지 이 지역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주택·상가·토지를 거래할 때 시군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2년 간 실거주해야 한다.

구역 지정 발표 이후 국토부와 서울시는 '강남‧송파구 일원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관련 Q&A' 자료를 내고 기존 주택 보유자의 신규 주택 취득과 관련해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기존 주택 보유자도 신규주택 취득 허가를 신청할 수 있으나 기존 보유한 주택의 처리계획서(매매·임대 등)를 함께 제출해야 해야 하고 허가를 신청하면서 당해 지역에 거주해야 할 사유 또는 추가적으로 취득해야 하는 사유를 구체적·객관적으로 소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거주 사유'에 대해 명확한 매뉴얼이 없다는 점이다. 강남구와 송파구는 모두 국토부·서울시로부터 내려온 매뉴얼이나 가이드라인은 없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거주의 정당성을 판단하기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청 실무자들이 말하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사유를 판단하는 기준은 '제3자가 보기에도 사유가 성립해야 한다'는 정도다. 매뉴얼이 없으니 강남구와 송파구 간 입장 차이도 있다. 강남구는 기존 주택 처분 계획서를 제출한다면 대부분 허가를 내준다는 입장이지만 송파구에서는 취학, 통원 등의 사유만 가능하다.

강남구 관계자는 "은평구에 살다가 '노후를 강남에서 즐기고 싶다'고 이사오겠다 하면 그 사유가 정당하지 않다고 할 수 있나"라며 "은평구 집을 언제 팔건지 계획서를 제출하면 일단 허가를 해주고 계획대로 처분을 이행하는지 확인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송파구 담당자는 "거주 사유는 취학, 통원 등의 내용이어야 한다"며 "직장 같은 경우, 같은 서울 내에서는 어렵고 경기도에서 이사오는 경우만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사유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이 담당자는 "만약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사유 없이 주택을 취득하고 싶다면 기존 주택을 처분하고 무주택 신분으로 허가 신청을 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거주 사유를 소명하라는 것 자체가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과도한 규제라고 지적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현행 헌법에 명시된 '거주 이전의 자유'를 공공의 이익을 명분으로 제한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라며 "시장 경제를 채택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거주 사유를 소명하라는 것은 재산권 침해 문제로도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