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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봄…엄마는 아이와 죽고 싶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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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0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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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집에 갇힌, 발달장애인 아이와 엄마의 나날들…"두 달새 5kg 빠지고 우울증, 사각지대 봐주세요"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안 보였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오랜 시간을 거쳐 어렵게 열린 세상이, 코로나19로 다시 닫혔다. 발달장애를 가진 13살 아이는, 그리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My sketch 앱으로 스케치.
오랜 시간을 거쳐 어렵게 열린 세상이, 코로나19로 다시 닫혔다. 발달장애를 가진 13살 아이는, 그리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My sketch 앱으로 스케치.
꽃피는 봄…엄마는 아이와 죽고 싶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좁다란 골목길 끝, 흰 담벼락 자그마한 집에 엄마와 아빠와 남자아이가 살았습니다. 아이는 귀가 크고, 눈이 까맣고 예뻤어요. 밝고 쾌활했지요. 바깥에 나가 노는 걸 좋아했어요.

아이는 남들과 조금 다르게 태어났어요. 친구들보다 말을 배우는 데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걷는 것도 살짝 느렸지요.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늦구나." 엄마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에야 엄마는 알았어요. 아이가 장애를 가졌다는 걸. 학교 복도를 다니며 "OO야, 나 여기 있어!"하며 큰 소리를 냈지요. 그렇지만 아이는 부끄러워하지 않았어요. 수업도 따라가기 힘들어했어요. 행동도, 태도도 조금씩 달랐어요.

애써 아이가 괜찮다고 했던 엄마는, 결국 받아들였어요. 그저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란 걸. 그걸 늦게 알아차린 게 속상했어요. 아이가, 그동안 다른 아이들 속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서요.
/사진=남형도 기자, My sketch 앱으로 스케치.
/사진=남형도 기자, My sketch 앱으로 스케치.

그러나 엄마는 강했어요. 실은 엄마도 남들과 조금은 다르게 태어났어요. 키가 다소 작았지요. 사람들은 그걸 장애라 했어요. 어렸을 땐 휠체어에 앉아 지냈어요. 치료를 받았고, 다행히 걸을 수 있게 됐어요. 엄마는 비장애인들과 어우러져 자랐어요. 직장을 다니며 돈을 벌었고요.

'아이도 장애가 있구나', 처음엔 힘들었지만 괜찮았어요. 아이가 9살이 되던 해 겨울, '장애인증'이란 걸 받게 됐어요. 그날 아빠는 엄마에게 나지막이 얘기했어요. "여보, 괜찮아. 우리 아이는 괜찮을 거야. 파이팅하자."

아이는 엄마와 떨어지는 게 두려웠어요. 엄마와 함께 학교에 갔어요. 엄마는 그곳에 머물다, 아이와 같이 집에 왔어요. 집에서도 아이는 엄마 곁에서 놀고, 먹고, 지냈어요. 엄마는 늘, 아이의 눈길 안에 머물러야 했어요. 그런 일상이었어요.
엄마의 재단 작업실. 떨어지는 걸 무서워하는 아이를 위해, 아예 집에서 일하기로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My sketch 앱으로 스케치.
엄마의 재단 작업실. 떨어지는 걸 무서워하는 아이를 위해, 아예 집에서 일하기로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My sketch 앱으로 스케치.

그래서 엄마는 아예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어요. 생계를 놓을 순 없었지요. 그렇게 옷감을 재단하는 일을 시작했어요. 재봉틀이 있는 자그마한 방에서, 엄마는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어요.

그렇다고 집에만 있을 순 없었어요. 발달이 느렸으니까요. 더 많은 세상을 보여줘야 했어요. 더 다양한 자극이 필요했어요. 계속 보고, 말하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크게 나아지길 바란 게 아니었어요. '아이가 세상에 살게끔만, 너무 뒤떨어지지만 않게 하자.' 그런 소박한 바람이었어요.

그래서 큰맘 먹고 차도 샀어요. 주말이면 쉬고팠지만, 엄마와 아빠는 아이와 무조건 바깥에 나갔어요. 캠핑도 가고, 마트도 가고, 봄엔 벚꽃도 보러 갔어요. 그러면서 치료도 받고, 아이를 도와줄 선생님도 오셨어요. 복지관에 가서 수영도, 미술도 배웠지요. 아이에겐 더없이 중요한 시간이었어요. 새로운 세상이었으니까요.
아이를 학교 앞까지 데려다주는 아빠./사진=남형도 기자, My sketch 앱으로 스케치.
아이를 학교 앞까지 데려다주는 아빠./사진=남형도 기자, My sketch 앱으로 스케치.

그러니 선생님이 절실했어요. 그러나 쉽지 않았지요. 한 달에 57시간,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라 했어요. 하지만 현실은 달랐어요. 많은 선생님들은, 시간이 짧다며 아이에게 오려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1년에 선생님이 네 번씩 바뀌기도 했어요. 낯가림이 심하고, 새로운 걸 무서워하던 아이였는데.

가족의 사랑은 세상의 풍파보다 훨씬 컸지요. 아이는 그리 자라났어요. 11살이 되던 때, 가족은 새집으로 이사를 갔어요. 엄마는 아이에게 말했어요. "학교와 집이 멀어져서 엄마가 함께 가기 힘들어, 괜찮아?" 아이는 이해했어요. 그날부터는 아빠가 오토바이를 타고 데려다줬지요. 돌아오는 길에도 씩씩하게 혼자 왔어요. 영상 통화로, 엄마 얼굴을 보긴 했지만요.
아이의 어린 시절 사진이, 냉장고 곳곳에 붙어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My sketch 앱으로 스케치.
아이의 어린 시절 사진이, 냉장고 곳곳에 붙어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My sketch 앱으로 스케치.

집에서도 조금씩 떨어졌어요. "엄마, 쓰레기 버리고 올게." 아이가 12살이었던 겨울부터는, 그걸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응, 엄마. 알겠어." 아이는 그리 대답했어요. 덩치는 커졌지만, 여전히 겁이 많은 아이에게 그건 당연한 게 아니었습니다.

엄마의 가장 큰 행복은, 아이가 그렇게나마 나아지는 모습을 보는 거였어요. 여느 아이에겐 평범하고 당연한 일일지라도, 엄마에겐 그 무엇보다 소중했어요. 항상, 많은 걸 바란 게 아니었어요. 기다릴게, 단 한 발자국만 나아가 다오, 아니 지금 그대로만이라도. 엄마는 그렇게 되뇌었어요.

새로운 봄이 다가왔습니다. 가족에게 시련이 닥쳐왔어요. 갑자기 심한 역병이 돌았지요. 사람들은 그걸 '코로나 19'라 불렀어요. 쉽게 전염이 된다고 했어요. 다들 집밖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아이도, 엄마도 집안에 갇혔어요. 복지관도, 학교도 문을 굳게 닫았어요. 일주일에 두 번 가던 언어 수업도, 미술 치료도, 모두 할 수 없게 되었어요. 언제 다시 열지 모른다고 했어요.
코로나19로 집에 갇힌 뒤, 아이는 불안한듯 자주 손톱을 물어 뜯었다./사진=남형도 기자, My sketch 앱으로 스케치.
코로나19로 집에 갇힌 뒤, 아이는 불안한듯 자주 손톱을 물어 뜯었다./사진=남형도 기자, My sketch 앱으로 스케치.

엄마는 애달프고, 조바심이 많이 났습니다. '우리 아이는,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데. 매일매일, 더 부지런히 세상을 보여줘도 너무나 부족한데.' 그리 속으로 수천 번씩 생각했어요. 어떻게 아이를 데리고 시간을 아껴가며 버텨왔는데, 순식간에 10년을 거꾸로 돌아가는 기분이었어요.

그러나 엄마는 강하다고 했지요. 처음엔 마음을 단단히 먹었습니다. '절대 아이를 예전으로 되돌아가게 하지 말자, 퇴행은 안 된다, 그건 내 몫이다.' 그렇게 매일 다짐했어요. 뭐라도 시키자, 문제 하나라도 풀게 해야지, 그렇게 잔소리를 했습니다.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엄마는 일도 해야 했으니까요.

벚꽃이 만개한 4월에, 강했던 엄마는 마침내 무너지기 시작했어요. 3월까진 겨울 방학이려니 하고 버텼었는데. 마음속에 그어둔 한 가닥 희망이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암담함, 어떤 것 하나도 쉬운 게 없는 아이, 그러거나 말거나 매일 다가오는 일, 그 사이에서 작디작은 엄마는 무겁게 짓눌렸어요.

아이의 하루를 지켜보니, 엄마의 그 마음이 이해가 갔어요. 너무나, 이해할 수밖에요.
/사진=남형도 기자, My sketch 앱으로 스케치.
/사진=남형도 기자, My sketch 앱으로 스케치.

아이는 먹는 것에 유독 집착이 심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 식사를 꼭 챙겨 먹었어요. 여기서 식사란, 밥과 반찬이 꼭 함께 있는 걸 뜻해요. 간식은 식사가 아니고요. 아침을 11시에 먹더라도 정오가 되면 다시 점심을 먹어야 했고요.

밥을 먹으면, 아이는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았어요. 선풍기를 틀고, 하얀 러닝셔츠 하나를 입고요. 장난감 바구니에서 파란색 자동차 장난감 하나를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컴퓨터를 켰어요.

아이가 좋아하는 건 유튜브 동영상이었어요. 꿈이 유튜버였거든요. 여러 가지 실험을 하는 유튜버를 가장 좋아한대요. 수백 번 돌려본 영상이지만, 질리지 않아요. 아이는 반복하는 걸 지루해하지 않거든요.

유튜버는 화면 속에서, 현란한 말솜씨를 뽐내요. 점핑 부츠를 신고 뛰더니, 무전기를 가지고 "여보세요, 여보세요"를 외치고요. 스피커에선 계속 "응답하라, 응답하라"하는 소리가 나오지만, 아이는 그저 조용히 볼 뿐이었어요. 몇 분이 지났고, 영상은 끝났고, 무심히 또 다른 영상으로 넘어갔고요.

무궁무진했어요, 유튜브란 공간 속 세계는. 이번엔 노란 지프차가 등장했어요. 유튜버는 지프차 뚜껑을 열고, 자랑하듯 보여줬어요. 아이는 눈을 떼지 못하고, 환호성을 질렀어요. "똬이히, 어흐, 뜨어!"
"어른이 되면, 이 지프를 꼭 사고 싶어요. 바퀴가 큰 게 마음에 들어요." 아이에겐 그런 꿈이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My sketch 앱으로 스케치.
"어른이 되면, 이 지프를 꼭 사고 싶어요. 바퀴가 큰 게 마음에 들어요." 아이에겐 그런 꿈이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My sketch 앱으로 스케치.

아이는 지프차를 무척 좋아했어요. 아빠랑 몇 년 전에 캠핑 갔을 때 봤다고 했어요. 왜 좋냐고 했더니, 이렇게 말했어요. "바퀴가 엄청 크잖아요. 돌이 엄청 많은 곳도, 슝슝 갈 수 있잖아요." 그러더니 아이는 장난감 바구니 안에서, 빨간 지프차 모형을 꺼냈어요. 어른이 되면, 그걸 꼭 사고 싶다고 했어요.

그렇게 아침 시간이 흘러갔어요. "엄마, 밥 줘." 아이는 밥을 달라고 했어요. 엄마는 밥을 줬어요. 아이는 밥을 먹고, 좋아하는 이온 음료를 들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또 다른 영상을 틀었어요. 아까 그 유튜버가 또 나왔어요, 이번엔 하얀색 강아지와 함께. 누군가에게 버려진 그 녀석을, 구조하는 내용이었어요. "여기가 강아지 고향이에요!" 아이는 흥분한 듯 외쳤어요.

그러더니 강아지가 성장한 모습도 보여준다고 했어요. 영상을 이리저리 찾지도 않고, 대번에 몇 분 몇 초인지 맞췄어요. 같은 영상을 얼마나 많이 본 것인지. 그러고 보니, 아직 영상에 안 나온 장면도 미리 말하고 있었어요. "강아지, 앞발!" 하는데, 5초 뒤에 앞발을 내밀더라고요. 아이는 다 외우고 있었어요. 분명 그랬어요.
어렸을 때부터 즐겨 마시던 이온 음료. 겉 포장지는 뜯어내는 습관이 있단다./사진=남형도 기자, My sketch 앱으로 스케치.
어렸을 때부터 즐겨 마시던 이온 음료. 겉 포장지는 뜯어내는 습관이 있단다./사진=남형도 기자, My sketch 앱으로 스케치.

영상은 또 다른 영상으로, 광고는 또 다른 광고로 넘어갔어요. 시간은 그만큼 흘렀지요. 오후 2시, 3시, 4시, 5시. 아이는 좋아하는 스파이더맨과 아이언맨 피규어 영상을 보다가, 하늘로 자동차를 날리는 게임 영상을 보다가, 혓바닥이 길게 나오는 개구리 게임 영상을 봤어요.

그 안에서, 시간은 멈춘 듯 흘러갔습니다. 어둑어둑한 바깥엔 비가 세차게 내리다, 다시 멈추더니, 이내 매미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어요. 여름이었고, 습하고 더운 집안은 무겁게 고요했습니다. 별수 없이 일하는 엄마의 재봉틀 소리, 아이가 보는 유튜브 영상 소리가 뒤섞여 날 뿐이었어요.

아이도 그걸 좋아하는 것 같진 않았어요. 영상을 보는 내내, 손톱을 계속해서 뜯었어요. 집안에 오래 있어야 하는 동안, 아이의 손톱은 점점 짧아졌어요. 피가 나고, 너무 아파서 입을 대기 어려운 지경이 된 뒤에야 잠시 멈췄어요. 그러고도 자꾸 입에 손을 가져갔어요. 아이는 그렇게, 나름대로 마음 표현을 한 것이지요.

긴 시간에 걸쳐 엄마와 겨우 떨어졌었던 아이는, 다시 엄마가 일하는 방에 들어갔어요. 좋아하는 장난감 몇 개를 가지고서. 엄마가 보이는 곳에 앉은 뒤에야,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어요. 자주 엄마를 찾았어요. 하루는 다섯 살 때 사진을 들고 가서 이렇게 말했어요. "엄마, 나 이때 엄청 귀여웠지. 나 손에 뭐 쥐고 있을까?"
어버이날에, 아이가 엄마에게 건넨 카네이션. 엄마의 재단 작업실에 고이 걸려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My sketch 앱으로 스케치.
어버이날에, 아이가 엄마에게 건넨 카네이션. 엄마의 재단 작업실에 고이 걸려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My sketch 앱으로 스케치.

그런 하루가 반복되자 엄마는 체념 상태가 됐어요. 아이가 눈에 띄게, 예전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게 보였거든요. 그걸 가장 가까이에서, 괴롭게 지켜봐야 했습니다.

집안에서 꼼짝 않고 영상만 보던 아이는 살이 쪘고, 엄마는 점점 메말라갔어요. 무언가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불과 두 달이란 시간 사이에, 5kg이 빠졌어요. 그게 우울증이란 걸, 뒤늦게 알게 되었어요.

엄마는 강했었어요. 밝고, 긍정적이고, 잘 웃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아이 앞에서, 빠르게 무너져갔어요. 주위에선 그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네가 그럴 정도면, 정말 힘들었구나." 엄마는 애써 대답했습니다. "나 정말, 힘들었어. 정말."

그렇지만 누구도 엄마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어요.

엄마는 그때, '사각지대'란 말이 떠올랐어요. 그 흔한 마스크 하나 주겠단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도, 동네 어르신도, 한부모 가정도, 다 챙겨주겠다고 오는데 엄마는 아이와 외딴 섬에 있었습니다. 홀로 견뎌야 했어요. 실은 엄마에게 필요한 건, 단지 마스크 한 장이 아니었습니다. 작은 '관심'이었어요.
겉으로 봐선 절대 드러나지 않는다. 이 골목길에, 그중 어느 집에, 어떤 힘듦이 숨어 있는지. 그 사각지대를 찾아달라고, 누군가는 애달프게 외치고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My sketch 앱으로 스케치.
겉으로 봐선 절대 드러나지 않는다. 이 골목길에, 그중 어느 집에, 어떤 힘듦이 숨어 있는지. 그 사각지대를 찾아달라고, 누군가는 애달프게 외치고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My sketch 앱으로 스케치.

쉰 살이 다 되도록, 장애인으로 살면서도 아쉬운 소리 한 번 안 했던 엄마는, 아이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습니다. 어느 날, 동네에서 통장을 붙잡고 얘기했어요. "저희 아이와 제가, 사각지대에 있습니다. 제발 좀 알아주세요."

그리고 동주민센터를 찾았던 날, 엄마는 기분이 땅 밑으로 꺼졌습니다. 그곳에 걸린 구청장님이 누군가와 자랑하듯 찍은 여러 사진들 속에서, 장애인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엄마는 같은 발달장애인 딸을 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나 왜 이렇게 기분이 힘들지?"

그리고 바닥을 치던 어느 날이었어요. 발달 장애 아이와 엄마가, 함께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엄마는 그때 처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게 너무 이해가 된다.'

아이의 긴 삶을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습니다. 안 좋은 생각은 점점 땅 밑으로 내려갔어요. '내가 젊을 땐, 그래도 보살펴줄 수 있지만, 갑자기 아프면, 나이가 들면 어떡하나. 내가 먼저 죽으면 어쩌나. 사각지대에 있는 우리 아이는, 누가 보살펴주나. 더 나이가 들기 전에, 함께 정리해야 하나.'

그도 그럴 것이,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이니까요. 중학교는 코앞인데, 장애인이 다닐 수 있는, '통합반'이 있는 남학교는 먼 지역에 가야 겨우 한 곳이 있고요. 그나마도 경쟁률이 엄청 치열하고요. 특수학교도 그 수가 적어서, 새벽에 일찍 나와 동네 몇 바퀴를 돌며 잔뜩 태운 뒤에야 갈 수 있다는, 무겁지만 그게 현실이라서요.

그리고 그리 졸업한 뒤에도, 성인이 된 뒤 갈 곳이 없다는 얘기도요. 월급 10만원짜리 단순 일자리와 1~2년짜리 복지관 등을 전전하다, 마지막엔 평생교육센터에서 5년을 더 버티다가, 결국은 주저앉게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요.
아이가 엄마에게 쓴 손편지. "엄마, 저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건강하게 자랄게요. 사랑해."/사진=남형도 기자
아이가 엄마에게 쓴 손편지. "엄마, 저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건강하게 자랄게요. 사랑해."/사진=남형도 기자

성인이 된 아이를 둔 한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지요.

"그래도 넌 아이가 학교 다니잖아. 아직 교육부 소속이라서 부럽다. 난 요즘 그냥 아이랑 남산에 다녀. 자전거 타면서 힘이나 좀 빼라고."

"아, 그런 다음에는 뭐 하냐고? 그냥 또 '뭐 할까', '뭐 해야 할까' 그러면서 지내. 맨날 그래."

저녁 6시 정각이 되자, 컴퓨터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아이가 엄마에게 또 물었습니다. "엄마, 저녁밥은 언제 먹어?"

그해 여름, 아이 집에는 코드에 꽂힌 선풍기만 부지런히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같은 범위 안에서만, 수백, 아니 수천 번씩 왔다 갔다 하면서.

그러나 더운 바람마저도 차마 닿지 못한 곳은, 금방이라도 찔 듯이 무더웠습니다.



기자의 말


/사진=남형도 기자, My sketch 앱으로 스케치.
/사진=남형도 기자, My sketch 앱으로 스케치.

제주에서 발달장애인 엄마와 아들이 숨졌다고 했습니다. 이어 광주에서도 같은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코로나19로 외면당한 많은 현장을 갔었습니다. 취약계층 아이들, 길거리 노숙인, 확진자가 다녀간 가게, 할머니 홀로 돌보는 다섯 명의 아이들까지.

그러나 발달장애인 가족들을 차마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뒤통수를 맞은 듯 아팠습니다. 뒤늦게나마 그들의 하루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깊이 들여다봤습니다.

지체 장애를 가진 어머니와,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 그리고 아버지까지, 세 가족에게 갔습니다.

가만히 앉은 자리에서, 장장 여섯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무릎이 저렸지만, 차마 일어날 수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어머니가 제게 들려준 이야기는 절박했습니다.

그걸 이렇게 동화 형식으로 풀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 주제가 가능한 많은 이들에게, 최대한 쉽게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어떻게든 새롭고 다르게 써야 한다고, 그래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볼 거라고. 그간 썼던 발달장애인 기사에 대한 무관심, 그 경험에서 깨달은 절박하고 두려운 마음도 녹아 있습니다.

그해 봄과 여름이, 특히 어느 가족에겐 이리 지독했다는 걸, 깊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돌아오는 가을과 겨울이, 너무 춥고 힘들진 않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들은 이미 많이 지쳐 있으니까요.
꽃피는 봄…엄마는 아이와 죽고 싶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에필로그(epilogue).

슬픈 동화는 이렇게 끝이 났다. 나의 결말은 보다시피 비관적이었다.

그리 집에 돌아가려 할 때, 난 우연히 컴퓨터 책상에 놓여 있던 편지 하나를 봤다. 아이가 엄마에게 쓴 거였다. 거기엔 이런 글과 함께, 귀여운 새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아기새는 어른새가 되었어요."
"어른이 된 아기새는 행복했어요."

아무 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 마음에 콧등이 시큰해졌다. '그래, 동화 결말은 역시 이래야지' 싶어서.



  • 남형도
    남형도 human@mt.co.kr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시선에서 소외된 곳을 크게 떠들어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면서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 간직하려 노력합니다. 좋은 제보 언제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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