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차별·혐오표현 금지시켜…다양성 인정하는 사회로 한걸음 더

김승현 변호사(왼쪽)와 박성철 변호사/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다양성의 기치 아래 여러 신념이 부딪힌다.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를 가진 대한민국에선 아직까지 다양성이라는 단어가 쉽게 통용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헌법재판소가 인권이라는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서 자유를 일정 수준 제약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려 주목받았다.

사건은 서울시 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에 차별·혐오표현을 금지하는 조항을 넣으면서 시작됐다. 학생들이 교내에서 차별과 혐오표현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위반할 경우 징계권고까지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일부 교사들과 학부모들은 해당 조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서울시 교육청의 도움 요청을 받고 사건을 맡은 박성철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흔히 헌법소원심판의 경우 청구인 측이 변화를 원하고 피청구인 측이 현상을 유지하려는 입장인데, 이 사건에선 피청구인을 대리하면서도 우리 사회를 진일보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청구인들은 헌법상 자유와 행복추구권 등을 들고 나왔다. 청구인들은 서울시 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가 양심에 따른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학문과 교육의 자유,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례는 법령에 근거해야 하는데 자유를 제한하는 법령은 없어 서울시 교육청이 법률유보원칙을 위반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박 변호사와 함께 소송에 참여했던 김승현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법률유보원칙을 위반했다는 논리를 깨기가 힘들었다"면서 "헌재가 국제협약을 조례 작성의 근거로 인정해준 것이 이번 결정이 갖는 큰 의의"라고 소감을 밝혔다.


헌재는 법률유보원칙을 위반했다는 청구인 측 주장을 살피며 해당 조례가 대한민국에서 1991년 12월부터 발효된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 따라 작성 및 제출됐다고 인정했다. 대한민국 사법부가 국제협약의 효력을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인정하지 않던 모습과는 달랐던 것이다. 김 변호사는 "큰 산을 넘은 느낌"이라고 했다.

박 변호사와 김 변호사는 표현의 자유 침해 논리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인권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전세계적인 기준에서 차별과 혐오표현에는 어느 정도 규제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교육의 목표에 비춰 성인이 되기 전인 학생들에게 건전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는 취지다.

김 변호사는 "세계 여러나라에서 차별과 혐오표현을 금지하는 규제를 만들고 있다"면서 "독일의 경우 2006년 일반평등대우법을 제정해 법률로써 혐오표현을 일반적으로 금지하고 일정한 경우 형사처벌한다"고 했다. 이어 "일본의 경우에도 2016년 헤이트스피치 억제법을 제정해 차별 및 혐오표현을 규제한다"고 덧붙였다.

박 변호사와 김 변호사가 받아낸 헌재 결정은 차별과 혐오표현 금지 문제를 더 큰 무대로 이끌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 등 10명이 지난 6월29일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인종, 국적, 피부색 등을 이유로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예방하도록 하는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것이다.

박 변호사는 "최근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이 논의되고 있는데 이제는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면서 "이번 헌재 결정은 비록 선언적 효력과 교내 학생인권기구 설치 근거를 마련했을 뿐이지만 사회적 큰 흐름에 일조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건은 서울시 교육청의 완승으로 끝났다. 헌재는 지난해 11월28일 재판관 전원 일치된 의견으로 청구인 측 심판청구를 기각했다. 박 변호사와 김 변호사는 2020년 대한민국 법무대상 공익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