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100℃] '강철비2: 정상회담'에 더해 본 '현실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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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 포스터.© 뉴스1

(서울=뉴스1) 이설 기자 = "대통령님, 쿠데탑니다!"

남북미 정상이 북한의 핵잠수함에 납치된다니. 황당하면서도 결말이 궁금한 상상이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 이야기다.

나도 핵잠수함으로 납치까지는 아니더라도 남북미 정상을 한 장소에 붙들어 놓고 싶었던 적이 여러 번이다. 하노이 '노딜' 이후 멈춘 핵 담판을 다시 하길 바라서다. 세 번의 남북, 두 번의 북미 정상회담을 취재한 경험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모든 게 잘 흘러가는 것 같더라도 토씨하나에 결렬되는 게 회담이다. 남북미 정상이 판문점에서 깜짝 회동을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모든 대화 판이 깨져있다. 세 정상을 핵잠수함에 납치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을까. 영화의 상상력에 '현실 고민'을 얹어봤다.

이 글은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를 다수 포함하고 있다.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 스틸컷.© 뉴스1

꽉 닫힌 해피엔딩인데 왜 찝찝하지?

남북미 정상은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북한 원산의 한 호텔에 모인다. 한미 안보라인이 쿠데타 징후도 파악하지 못하고 회담을 강행했을까하는 의문이 들긴 하지만 세 정상을 납치하기 위해(?) 필요한 설정이었을 테다.

다만 협상이 결렬되는 장면만큼은 디테일이 아쉽다. "핵무기를 나에게 주면 멋지게 쇼를 해주겠다"는 미 대통령(앵거스 맥페이든 분)의 말에, 북 위원장(유연석 분)은 "그 종이쪼가리(평화협정)에 이름만 쓰면 우리 인민들이 30년 동안 썩어지게 고생해서 만든 핵무기를 전부 넘기는 겁니다!"라고 소리친다. 마치 북 위원장이 핵무기를 전부 포기하겠다고 하는데도 미국이 일방적으로 도발하며 협상이 깨진 것 같다.

북미 협상 장면은 디테일을 조금만 살렸어도 영화의 긴장감을 높여놨을 것이다. 실제 북미 비핵화협상은 핵 반출 순서와 방법, 시기 등 디테일한 차이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제안-거절-역제안'으로 이어지는 대사 하나 없이 일방적으로 도발하는 미 대통령과 분노하는 북 위원장의 모습은 너무 단편적이다.

무엇보다 영화에선 현실과 다르게 협정이 체결되는 해피엔딩인데도 영 찝찝하다. 이전까지 협상을 가로막던 장애요소들이 모두 해결됐는지 알 수 없는 탓이다. 그저 단 두 명만 탈 수 있는 구명정의 자리를 북미 정상에게 양보하고, "꼭 평화협정을 체결해 달라"고 부탁한 한국 대통령의 부탁을 들어준 결과로 묘사된다.

단순히 재미를 위해 생략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북미 정상은 핵잠수함에 갇혀 있는 동안 미국의 역사뿐만 아니라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갈등 등 각종 시사 이슈에 대해 이야기한다. 차라리 그 때 북미 정상이 핵을 두고 이견을 좁혀가는 대화가 나눴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화려한 외모(?) 속 감춰진 한국 대통령의 역할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 스틸컷.© 뉴스1

한국 대통령과 북 위원장의 수려한 외모는 이 영화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실제 인물과는 최대한 다른 외모와 나이의 인물을 등장시켜 정치적 논란을 줄이려는 감독의 의도가 있었을 것도 같다. 물론 너무 멋지게 미화했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감독이 미화를 의도했다면 나는 오히려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한국 대통령은 평화를 위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북미 정상에 경호 순서를 양보하더니 아무 조건 없이 핵잠수함 탈출 기회까지 넘겨준다. 혼자 핵잠수함에 남아 쿠데타 세력들과 맞서 싸우기까지 한다. 현명한 희생이라기보다 다소 미련해 보이기까지 하다.

감독은 양보하며 인내하는 대통령을 통해 오히려 진정한 강함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만약 그랬다면 한국 대통령이 인내하는 심리를 더 면밀하게 묘사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쪽 팔에 부상을 입은 채 핵잠수함에서 탈출한 한국 대통령은 북미가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날 함께 사진을 찍는다. 그럼에도 찝찝함이 남는 건 한국 대통령이 그 판을 주도했다는 느낌이 적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감독은 영화에서 휴전협정에 우리가 사인할 공간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그렇기에 나는 영화에서 만큼은 한국 대통령이 영리하게 판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수 있다.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 스틸컷.© 뉴스1

이 영화를 보고 '통일'에 답할 수 있을까

영화 말미 서울을 방문한 북 위원장과 나란히 연단에 선 대통령이 연설을 시작한다. 통일은 대통령 혼자 할 수 없고 오랜 세월이 걸리는 문제라는 게 메시지의 핵심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동안 수도 없이 들었던 질문을 역으로 해보겠다며 이렇게 말한다. "국민 여러분, 통일, 할 겁니까?"

답이 바로 나오진 않는다. 명쾌한 해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게 첫 번째 이유겠지만, 질문이 너무 갑작스럽다는 게 더 큰 이유다. 일단 영화 속에서 평화협정이 어떻게 체결되게 된 것인지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다. 핵잠수함에서 탈출한 사건을 제외하면 북미 정상이 마음을 바꾼 이유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평화'라는 결말에는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 하지만 통일은 평화협정 이후 또 수 없이 많은 단계를 밟고 이어가야 한다. 꽉 닫힌 해피엔딩은 언제나 유쾌하지만, 영화 말미 묵직한 질문을 던질 의도였다면 조금은 현실의 모습을 보여줬어도 좋았을 것 같다.

비핵화 대화가 올 스톱된 지금, 남북미 정상을 한 자리에 붙들어 놓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대리만족을 했다.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현실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나는 묻고 싶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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