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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의사가 끝까지 지켜야 할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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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일학 연세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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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1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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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학 연세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 사진제공=연세의대
이일학 연세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 사진제공=연세의대
일터를 버리고 낯선 광장으로 나서는 심사를 다 짐작할 수는 없다. 젊은 의사들에게 기대할 만한 미래가 약속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로 그들의 자랑스러운 일터가 헐려 나가고 있다는 인식이 이들의 등을 떠밀었을 것이다. 이들의 동기를 이해할 수 있다. 한두 가지로 보건의료에 내재된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고 선언하는 정치에 대한 혐오를 넘어 문제를 직시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해결에 동참하겠다는 책임감을 존중해야 마땅하다 생각한다.

전공의들의 투쟁을 생각하다 ‘완력의 사용’(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변용란 지음, 2008년)이 기억났다. 작가이자 의사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는 가정의사로 환자 곁에 있으며 시와 단편소설을 쓴 영향력 있는 작가다.

‘완력의 사용’은 이런 이야기다. 주인공 의사는 왕진 부탁을 받아 방문한 집에서 열두살 된 여자아이를 진찰한다. 당시만 해도 아이들의 생명을 무자비하게 앗아가던 병 ‘성홍열’을 의심하고 인후두를 진찰하려 하지만 아이가 도무지 입을 벌리려 하지 않는다. 열두살 아이의 고집을 누르려 가족과 의사는 온갖 방법을 시도한다. 아이가 말을 들을 리 없지만 아이를 살리기 위해, 꼭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주인공은 말, 압설자, 쇠숟가락까지 사용해 아이의 입을 벌린다. 그리고 원하는 정보를 얻는데 성공했다. 아이는 예상대로 성홍열이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주인공 의사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 그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아이의 입을 갈가리 찢어놓고도 즐길 수 있을’ 만한 심리상태가 된다.

지금 우리 전공의들이 이런 심리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어떤 집단이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증명하는 방법으로 집단행동을 취할 때 생각할 것들이 있을 것이다. 집단행동은 자신의 힘을 증명한다는 점에서 가장 정치적인 행동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영향도 결국 정치적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벗어나 의사가 없는 환경을 보여주는 정치적’ 행위를 취할 때 기획한 것은 무엇인가. 전공의들이 심지어 중환자실과 응급실도 비우겠다고 말할 때, 그렇게 목소리를 높일 때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완력은 협상장에서 유용할 것이다. 하지만 의사들은 완력보다 지식을 무기로 삼는다. 또 많은 경우 지혜는 지식보다 우선한다. 광장으로 나선 젊은 의사들은 지식이 무시당하는 현실에 좌절해서 완력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의료인의 양성이라는 장기적인 문제는 너무 시급한 문제라서 더이상 미룰 수 없고 전문성이 무시당하는 지금의 현실은 의사들의 힘과 능력을 증명해 보이도록 만들었나 보다.

완력을 사용하기로 결정했으면 그 힘을 제약할 지혜도 사용해야 한다. 예컨대 효과적인 것이 항상 적합한 것은 아니고 할 수 있는 것을 무조건 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경험, 또 효과적인 대화를 위해서라도 때로 힘의 행사는 제한되어야 한다는 지혜 같은 것 말이다.

완력을 사용하기로 했다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하는 자리, 즉 의사의 도움을 가장 필요로 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 같은 자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 자리는 우리를 강제로 밀어낼 때까지 그 자리에 있겠다고 주장해야 하는 자리다. 그곳을 지키는 데서 우리의 ‘완력’이 비롯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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