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판] 국선변호인도 포기한 '경비원 갑질' A씨…재판 속개 불가?

/사진=뉴시스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던 고(故) 최희석씨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진 A씨의 국선 변호인이 최근 사임했습니다. A씨 측이 직접 선임한 변호인에 이어 국선 변호인마저 사건을 맡기를 거부한 건데요.

고 최희석씨는 주차 시비를 이유로 한 입주민 A씨의 갑질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A씨는 폭언, 폭행은 물론 형사처벌, 금전 배상 등을 내세워 A씨를 압박했는데요. A씨는 특히 최씨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에도 전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A씨 사건을 맡은 변호인들도 거듭 어려움을 표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4일 열린 첫 공판에서 A측이 선임한 변호인이 갑작스럽게 사임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어 지난 3일에는 배정된 국선변호인까지 사의를 표했습니다. 사실상 A씨 변호를 거부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결국 A씨 재판은 변호인 선임 어려움으로 인해 진행 자체가 난관에 봉착한 상황입니다.

A씨는 1차 공판 당시 변호인이 사임 의사를 전한 후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답하며 국선변호인 지정 의사를 묻는 질문에 답변을 보류했습니다. A씨는 이후 일주일이 지나도록 변호인 선임에 대한 의견을 전하지 않았고 재판부는 결국 국선변호인을 지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A씨의 다음 재판은 오는 21일로 예정돼 있는데요. 국선변호인마저 포기한 이 재판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까요?

◇변호인없인 재판 '불가'

재판이 속개되려면 사임하지 않는 변호인이 나와야 합니다. 변호인이 거듭 사건 수임을 거부할 경우, 법원은 계속해서 다시 국선변호인을 지정해야 합니다. 법에 따라 변호인 없이 A씨 혼자서 재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인데요.

우리 국민은 누구든지 체포나 구속을 당했다면 변호인의 법적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집니다. 이는 헌법에 규정된 기본권입니다. (헌법 제12조)

피고인이 △구속됐을 때 △미성년자인 때 △70세 이상인 때 △농아자인 때 △심신장애의 의심이 있는 때구속되어 있는 경우 △사형, 무기 또는 단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기소된 때 변호인이 없다면 법원은 직권으로 피고인에게 변호인을 붙여줘야 합니다. (형사소송법 제282조) 흔히 말하는 국선변호인 선임의 경우입니다.

변호인이 없으면 아예 재판을 진행하지 못합니다. 이처럼 변호인없이 형사재판을 진행할 수 없는 것을 필요적 변호라고 합니다. 예외적으로 법원이 심리는 모두 마치고 판결 선고만 남겨두고 있을 때는 변호인이 없어도 됩니다.

검찰은 A씨에게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위반(보복감금·상해·보복폭행)을 비롯해 무고, 강요미수, 협박, 상해 등 총 7개의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습니다. 형법상 상해죄만 해도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규정돼 있습니다.

결국 새로 지정된 국선변호인이 또다시 재판 전에 사임한다면 법원은 계속해서 다른 국선변호인을 선정해야 합니다. 그동안 재판 일정은 거듭 미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피고 측에 설 변호사가 등장할 때까지 재판은 미뤄집니다.

◇국선변호인도 맡기 싫은 사건이 있다

법원이 직권으로 지정했다고 해서 변호사가 이에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질병 또는 장기여행을 이유로 변호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피고인으로부터 폭행, 협박 또는 모욕을 당한 경우 △피고인으로부터 부정한 행위를 할 것을 종용받은 경우 △그 밖에 국선변호인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어렵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국선변호사는 법원이나 판사의 허가를 얻어 사건에서 물러날 수 있습니다. (형사소송규칙 제20조)

다만 자신이 변호해야 할 피고인이 흉악범죄를 저질렀다거나 단순히 변호하기 싫다는 이유로 선임을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해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불을 지르고 흉기를 휘둘러 주민 5명을 사망하게 하고 16명에게 상해를 입힌 안인득의 국선변호인이 재판 중 '변호하기 싫다'는 뜻을 밝힌 적이 있는데요.

해당 변호인은 형사소송법의 필요적 변호사건의 개념을 언급하며 "저도 인간이다. 이런 살인마를 변호하는 게 맞는 걸까 고민했지만 세상에 단 한 명은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누굴 위해 변호하느냐, 변호인이 그 역할을 모른다”면서 항의한 안인득에게 "저도 (변호)하기 싫다"며 소리쳤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그런 의사만으로 선임을 거부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보통 법원은 특정 사건에 대한 국선변호인을 지정할 때 법원이 보유한 명부에 있는 변호사들에게 무작위로 연락을 하면서 일정을 조율합니다. 이후 일정이 맞는 변호사를 국선변호사로 선임하게 되는데요.

A씨의 변호를 담당했던 첫 국선변호인은 일단 사건을 맡기로 했었다가 추후 사임을 했습니다. 이미 일정은 맞췄다는 뜻이므로 국선변호인으로서의 직무 수행에 어려움을 느낄 만한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예상됩니다. 단순히 A씨를 변호하기 싫다는 이유뿐이었다면 법원도 사임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겁니다.

글: 법률N미디어 정영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