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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에 썩어가던, '멜론' 1200개를 땄다[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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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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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 피해 극심한 경기 이천 과수원서 '자원봉사'…새벽부터 달려온 마음들, '함께'라 가능했다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안 보였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수해에 뿌리는 썩었고, 멜론은 위태롭게 달려 있었다. 과수원 주인은 일손이 없어 애간장이 탔다. 꼼짝없이 갇힌 멜론을 구하러 갔다. 한 손에 한 덩이씩 든, 땀흘리는 남기자./사진=경기도 자원봉사센터 관계자
수해에 뿌리는 썩었고, 멜론은 위태롭게 달려 있었다. 과수원 주인은 일손이 없어 애간장이 탔다. 꼼짝없이 갇힌 멜론을 구하러 갔다. 한 손에 한 덩이씩 든, 땀흘리는 남기자./사진=경기도 자원봉사센터 관계자

수해에 썩어가던, '멜론' 1200개를 땄다[남기자의 체헐리즘]
싯누런 이파리
가 전부 축 늘어져 있었다. 땅바닥엔 물이 가득 들어차 장화가 푹푹 잠겼다. 동그랗고 큰 멜론은 줄기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에 식물 뿌리는 잔뜩 썩었고, 꽤 많은 멜론이 이미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농사의 농(農)자도 모름에도, 빨리 따야겠단 것쯤은 알았다.

한숨 쉴 새도 없이 작업이 진행됐다. 과수원 주인 노부부가 가위를 들었다. "멜론은 아무나 딸 수 없어요"하며 꼭지가 중요하단다. 엉망이 되었지만 어떻게든 지키고픈 맘이 느껴졌다.

노부부가 앞장섰고, 자원봉사자들이 줄지어 들어갔다. 죽어가는 멜론을 구하려는 행렬은 어쩐지 장엄했다. 난 앞에서 두 번째에 섰다. 잠시 뒤 첫 번째 멜론을 받아들었다. 묵직하고 익숙한 감촉이었다. 그걸 다시, 왼쪽에 서 있던 이에게 전달했다.

멜론은 그리 하나씩, 손에서 손으로 조심스레 옮겨졌다. 마침내 비닐하우스를 탈출하더니 초록색 플라스틱 상자 안에 고이 담겼다.
경기도 자원봉사센터 소속 청년봉사단. 원래 34살까지만 들어갈 수 있는데(본인은 38살), 특별히 오늘 하루만 껴줬다. 일을 잘했더니 &quot;기자님 안 왔으면 큰일날 뻔했다&quot;고 칭찬해줬다(으쓱)./사진=남형도 기자<br />
경기도 자원봉사센터 소속 청년봉사단. 원래 34살까지만 들어갈 수 있는데(본인은 38살), 특별히 오늘 하루만 껴줬다. 일을 잘했더니 "기자님 안 왔으면 큰일날 뻔했다"고 칭찬해줬다(으쓱)./사진=남형도 기자

물벼락 맞은 멜론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모인 24명이었다. 경기도 자원봉사센터 소속 청년 봉사단이라 했다. 얼굴도, 나이도, 사는 곳도, 다 달랐다. 친구가 소개해줘 온 이도, 봉사 시간 때문에 찾은 이도 있었다.

그러나 새벽 일찍 일어나 이곳, 경기도 이천을 찾은 이유는 같았다. 수해 피해를 크게 입은 이들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고픈 마음. 비가 주룩주룩 왔건만 장화를 신고, 우비를 입었다. 처음 보는 이들끼리 서로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봉사 장소로 이동했다.

수해 현장을 직접 보고 싶었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팠던 나도 청년 봉사단에 껴서 하루 자원봉사를 했다.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를 통해 연계가 됐다.



물에 잠긴, 멜론 1200개


물에 잠겨 죽어가는 멜론 과수원. 주인 노부부의 마음처럼, 왠지 울부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사진=남형도 기자
물에 잠겨 죽어가는 멜론 과수원. 주인 노부부의 마음처럼, 왠지 울부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사진=남형도 기자
"이런 비는 정말 처음이지요."

과수원 주인 노부부는 한숨을 쉬며 그리 토로했다.

멜론 농사를 지은 건 올해 1월부터라 했다. 이미 추운 겨울부터 씨를 뿌린 거였다. 거름과 물을 주고, 애지중지 정성껏 키웠다. 무럭무럭 자라 다디단 열매를 맺으라고 바랐으리라.

그러나 이 지역에도 여지없이 폭우가 쏟아졌고, 과수원은 금세 물에 잠겼다. "이제 수확할 때가 되었는데…." 뿌리부터 썩으니, 과일이 남아날지 걱정이었다.
멜론 과수원 입구에서 바라본 전경. 참 오래 정성을 들였을텐데, 안타까웠다./사진=남형도 기자
멜론 과수원 입구에서 바라본 전경. 참 오래 정성을 들였을텐데, 안타까웠다./사진=남형도 기자

비닐하우스는 총 3개, 멜론은 1200개. 노부부는 속절없이 발만 동동 굴렀다. 도저히 둘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녔기에.



하우스는 '찜통', 젖은 마스크에 숨 막혔다


보람 있었던 마음과는 달리, 무척 고된 일이었다. 시작한지 얼마 안 돼 절실히 느꼈다./사진=경기도 자원봉사센터 관계자
보람 있었던 마음과는 달리, 무척 고된 일이었다. 시작한지 얼마 안 돼 절실히 느꼈다./사진=경기도 자원봉사센터 관계자

생전 처음이라, 과일 따는 걸 너무 만만하게 봤다.

가뜩이나 따뜻한 비닐하우스 안은 습하니 더 '찜통'이었다. 가만히 있는 것도 고역인데, 몸을 계속 움직이니 땀이 모든 땀구멍에서 비 오듯 줄줄 흘렀다. 마스크는 젖었고, 콧구멍을 턱턱 막았다. 숨이 막혀 고역이었다.

멜론을 받아 옆에 전해줘야 하는데, 사람이 부족해 간격이 꽤 벌어졌다. 할 수 없이 몇 발자국씩 걸어야 했다. 바닥은 이미 진흙탕이라, 한 걸음을 떼는 것조차 보통 일이 아녔다. 멜론까지 품에 안고 움직이려니, 무게 중심이 좌우로 계속 흔들렸다.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새 받아야 할 멜론은 쌓였고, 조바심이 났다. 멜론을 한 번에 세 덩이씩 품고 휘청거리며 가다가, 결국 땅바닥에 넘어졌다. 바지는 흙범벅이 됐지만, 멜론은 무사했다. 봉사단에서 "그냥 버릴 옷을 입고 오라"며 몇 번씩 일렀던 이유가 다 있었다.



조금이나마 덜 오라고, 한 발자국 더


일을 마치고, 미끄러지지 않게 봉사자 손을 붙들어주는 한 봉사자. 어쩐지 따뜻해서, 계속 바라보게 됐다./사진=남형도 기자
일을 마치고, 미끄러지지 않게 봉사자 손을 붙들어주는 한 봉사자. 어쩐지 따뜻해서, 계속 바라보게 됐다./사진=남형도 기자

혼자가 아니었기에, 그 고됨을 다 이길 수 있었다.

서로 마주 보며 한 발자국씩 다가오니, 두 걸음이 좁혀졌다. 멜론을 들고 조금이라도 더 가려 했다. 그래야 옆 사람이 덜 고생한단 걸 알기에, 나 또한 그러려 했다. 찰나의 순간에도 그 맘이 느껴졌다.

묵묵히 땀만 흘리느라 여전히 어색했지만, 마음에서 먼저 튀어나오는 말들도 있었다. 한 여성 자원봉사자 장화가 진흙에 빠져 넘어졌을 때, 양옆에서 "괜찮아요?"라며 앞다퉈 물었다. 그 목소리엔 걱정이 깊이 배어 있었고, 그걸 듣는 것만으로도 힘이 났다.

"이제 거의 다 했어요", "조금만 더 힘내요", "맛있는 도시락이 온대요"라고, 중간중간 소소히 들리는 말들도 따스한 기운을 가득 품고 있었다.
장화가 땅바닥에 묻혀 넘어질 뻔한 봉사자. 그에게 &quot;괜찮느냐&quot;고 물었다. 그런 말 한 마디가 큰 힘이 됐다./사진=남형도 기자
장화가 땅바닥에 묻혀 넘어질 뻔한 봉사자. 그에게 "괜찮느냐"고 물었다. 그런 말 한 마디가 큰 힘이 됐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리하여 마침내 정오가 다 되었을 때, 비닐하우스 한 곳의 멜론을 다 구할 수 있었다. 약 400개 정도.

지친 기색이 역력한 이들이 과수원에서 올라오려 할 때, 미끄러지지 않게 손을 내미는 이가 있었다. 터키 교민이라는 남성 봉사자였다. 그는 비를 맞으면서, 가파른 경사에 양발을 버티고 서 있었다. 양손이 만나는 광경을, 나도 모르게 계속해 보고 있었다.



"배고프겠다"고, 도시락을 가져온 사람들


도시락이 남았던데, 하나 더 먹을 걸 그랬다. 정말 꿀맛이었다./사진=후회막심한 남기자<br />
도시락이 남았던데, 하나 더 먹을 걸 그랬다. 정말 꿀맛이었다./사진=후회막심한 남기자

15분 정도 걸어 다시 마을회관으로 돌아왔을 땐, 따끈따끈한 도시락이 와 있었다.

봉사자들을 돕겠다고, 빗속을 뚫고 온 또 다른 봉사자들이 마련한 거였다. 이천 자원봉사센터에서 왔단다. "아이고, 정말 고생했어요", "많이 배고프겠어요"하는 격려가 들어오는 내내 귓가에 살포시 닿았다. 피로를 씻어내는 다정한 말들이었다. 경기도 자원봉사센터 관계자는 "기자님, 도시락 두 개 드세요"라고 했다. 듣기만 해도 배부른, 정(情)스러운 마음들.

허겁지겁 비웠다. 몇 달 새 먹은 밥 중에 가장 맛있었다. 떡갈비, 돈가스, 새우튀김에 제육볶음도 있었다. 하나 더 먹을까 심각하게 고민하다, '형도야, 여기까지 와서 이러지 말자' 하는 내면의 말들이 들렸다. 애써 참았다.
농민 분들이 마련해준 장호원 복숭아. 수해 피해를 입어 떨어진 것들이다./사진=남형도 기자
농민 분들이 마련해준 장호원 복숭아. 수해 피해를 입어 떨어진 것들이다./사진=남형도 기자
배가 부르니 나른한 기운이 밀려왔다. 복숭아가 가득 담긴 상자가 눈에 띄기에, 뭐냐 물으니 이곳 주민들이 준비했다고 했다. 장호원 복숭아가 유명하단다. 그런데 곳곳에 상처가 있었다. 수해에 떨어진 복숭아라 했다. 그러고 보니, 오가는 길에 복숭아가 잔뜩 떨어져 있었던 게 생각났다. 첫 수확도 아직 못했는데,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걸 보는 농민 마음은 어떨지.

복숭아는 첫맛부터 그리 달진 않았다. 햇빛을 봐야 달콤해지는데, 비가 연일 계속된 탓이란다. 오물오물 입에 넣고 있으니 숨은 단맛이 혓바닥에 배어 들어왔다. 갖은 고생 끝에 제 역할을 다한 것인데, 아무렴 어떠랴.



한 상자에 1만원, '반값'이라도 판다고


손에서 다른 이의 손으로, 멜론이 그렇게 세상 바깥으로 나왔다./사진=남형도 기자<br />
손에서 다른 이의 손으로, 멜론이 그렇게 세상 바깥으로 나왔다./사진=남형도 기자

오후 1시부터 다시 멜론을 따고 옮기는 작업이 시작됐다. 밥을 먹은 덕분에 다시 기운이 났다.

오후엔 멜론 상자를 트럭에 싣고 내리는 작업을 주로 했다. 힘쓰는 남성 봉사자가 부족하니, 그쪽으로 와 달라고 했다. 한 상자에 담긴 멜론이 4~5개, 그리 모이니 꽤 무거웠다. 한 명은 트럭 위에서, 나머지 세 명은 트럭 밑에서 멜론 상자를 전달하며 옮겼다.

트럭 하나에 멜론 상자 50개를 차곡차곡 다 쌓았다. 허리가 욱신거리고, 회색 티셔츠는 빗줄기와 땀으로 범벅돼 축축했다. 그래도 다 실은 멜론 상자들을 보니 마음이 좋았다. 사장님에게 "이 멜론들을 팔 수 있냐" 물으니, "상태가 좋진 않지만, 싸게 팔 수는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멜론 상자를 옮겨 트럭에 싣는, 막바지 작업을 하는 남기자./사진=경기도 자원봉사센터 관계자<br />
멜론 상자를 옮겨 트럭에 싣는, 막바지 작업을 하는 남기자./사진=경기도 자원봉사센터 관계자
트럭 몇 번을 타고, 또 다른 곳에 가서 멜론 상자들을 내렸다. 천막 같은 걸 치고, 그곳에서 납품도 하고 동네 주민들에게도 판매하는 모양이었다. 가격이 적힌 걸 보니 한 상자에 1만원. 원래는 1만7000원짜린데, 거의 반값에 팔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트럭 창문을 활짝 열었다. 적당히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얼굴을 두드렸다. 이마에 맺혀 있던 땀방울이 공기에 쓸려 시원스레 느껴졌다. 일하는 참맛이란 이런 거였다.



처음 본, 사장님의 희미한 웃음


마지막 멜론을 실을 때까지도 비는 멈추지 않았다./사진=경기도 자원봉사센터
마지막 멜론을 실을 때까지도 비는 멈추지 않았다./사진=경기도 자원봉사센터

그리 부지런히 움직인 끝에, 오후 3시쯤엔 작업이 다 마무리되었다. 끝났단 생각에 긴장이 탁 풀리며 몸이 축 늘어졌다.

과수원을 잠기게 한 빗물은, 아침보다 훨씬 더 불었다. 장화 발목 부분까지 잠겨 첨벙거렸다. 너무 늦기 전에 수확했단 것에 안도했다. 맘을 무겁게 한 멜론들은 제자리로 다 찾아갔고, 울상이 된 식물들만 남았다.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비는 여전히 퍼부었으나, 우비는 아예 벗은 참이었다. 땀에 절어 입고 있는 게 더 더웠다. 눈을 감고, 하늘로 고개를 든 채, 빗줄기를 맞으며 시원스레 갔다. 봉사자 중 누군가 "아, 이거 샤워도 필요 없겠어요"라고 했다. 그 말에 다들 개운한 웃음을 지었다.
여러 봉사자들 덕분에, 힘겹게 쌓인 멜론들. 한 박스에 1만원, 수해로 인해 반값 정도만 받는 가격이다./사진=남형도 기자
여러 봉사자들 덕분에, 힘겹게 쌓인 멜론들. 한 박스에 1만원, 수해로 인해 반값 정도만 받는 가격이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리고 그날 받은 '일당'은, 내겐 이런 거였다.

과수원 주인 노부부가 비로소 희미하게 웃는 걸 봤다. 내 입꼬리도 그를 따라 슬며시 올라갔다. 시름이 깊어 입을 굳게 닫은 채 일만 하던 이들이었다. "그래도 와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오늘 일이 이렇게 잘 끝났네요. 멀리 와서 도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 말이 최고의 보상이었다.



차마 못 본 곳이, 또 얼마나 많을지


무량사 앞 마당의 전경. 산사태로 쌓인 토사가 이렇게 많았다. /사진=남형도 기자
무량사 앞 마당의 전경. 산사태로 쌓인 토사가 이렇게 많았다. /사진=남형도 기자
수해 현장 한 곳을 더 찾아서 직접 보았다.

아직 오후가 한창이었으므로, 더 일할만한 곳이 있는지 자원봉사센터 관계자에게 물었다. 체력은 바닥으로 향했으나, 마음이 이를 지탱해 괜찮았다. 인근 사찰인 무량사가 산사태로 수해 피해가 심각하다고 했다.

부리나케 달려갔더니, 사찰 앞마당에 폐기물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이미 한바탕 비워낸 모양이었다.

이천 자원봉사센터 관계자는 "산사태로 토사가 덮치고 빗물은 가슴까지 차올라, 사찰 건물 안에 있는 걸 다 끄집어냈다"고 했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니 깨끗했고, 마무리 물청소 중이었다.

그는 이어 "이렇게 비가 많이 온 건 2013년 이후 처음"이라 했다. 통상 한 지역에만 수해 피해가 있어, 인근 지역서 와서 도와주는데 이번엔 전국적 피해라 그러지 못한다고 했다. 차마 돌아보지 못한 곳은 얼마나 많을까 싶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었으므로


무량사 건물 내부도 막바지 물청소 작업 중이었다. 엉망이었던 내부는, 함께해준 이들 덕분에 이렇게 깨끗해졌다./사진=남형도 기자
무량사 건물 내부도 막바지 물청소 작업 중이었다. 엉망이었던 내부는, 함께해준 이들 덕분에 이렇게 깨끗해졌다./사진=남형도 기자
무량사 정자 밑엔 봉사자들이 땀을 닦으며 세수를 하고 있었다. 비 온 뒤 무지개가 뜬 것처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이날 하루에만 70여명이 모였다고 했다. 땀을 닦던 장하민 국민건강보험공단 주임은 "처음엔 이걸 언제 다 치울까 싶어 막막했다. 진짜 처참했다"고 표현했다. 토사가 너무 많아 다 뺐고, 얼룩을 지우는 작업도 했단다. 십시일반, 여러 힘이 모이니 작업을 빨리 마칠 수 있었다.

같은 경험을 했기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아침엔 '대체 멜론 1200개를 언제 다 따나' 했었다. 멜론을 홀로 따서 나왔다면, 며칠씩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몇 걸음만 딛고, 손에서 손으로 전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 만에 결국 다 해냈다.
나란히 놓인, 봉사자들의 흙묻은 장화들./사진=남형도 기자
나란히 놓인, 봉사자들의 흙묻은 장화들./사진=남형도 기자

끝도 없이 내리는 비에 세상이 잠기는 걸 봤다. 그걸 보며, 대자연 앞에 사람이 참 약하다 여겼다. 하늘을 찌를 듯 건물을 짓고, 입이 떡 벌어지는 첨단 기술이 넘쳐남에도,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여전히 이렇게나 많으니.

그러나 수해를 보고 누군가는 어쩌지 못하고 왔다. 그렇게 여럿이 모였다. 이들은 묵묵히 일하며 그리 외치고 있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그러니 땀흘려 애정을 쏟은 그 삶을, 부디 멈추지 말아 달라고." 그러니 약했지만 더는 약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에서 이들과 함께 있으니, 참으로 든든했다. 비를 맞는 것조차, 꽤 오랫동안 잊을 만큼.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에필로그(epilogue).

멜론 상자를 다 실을 무렵, 과수원 주인 어머님이 고마워 어쩔 줄 몰라 하며 이리 말했다.

"올해 11월에 꼭 딸기 먹으러 와요. 우리 딸기 농사도 짓는데, 참 맛있어. 멜론 봉사했던 사람들이라고 와서 얘기해줘요. 그럼 딸기 맘껏 먹게 해줄게. 어? 정말이야, 농담 아니에요."

아무렴, 우린 반드시 올 거라고 웃으며 약속했고, 3개월 뒤 빨갛게 익어 있을 다디단 딸기를 상상했다.

추운 겨울처럼 보였던 이가, 마지막엔 그래도 같은 이야기를 해줬다는 것. 그걸 다른 말로는 '희망'이라 부른다는 것.

사실은 그가 약속한 딸기보다도, 그 말 한마디가 참 좋았다.



  • 남형도
    남형도 human@mt.co.kr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시선에서 소외된 곳을 크게 떠들어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면서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 간직하려 노력합니다. 좋은 제보 언제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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