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장마→태풍→코로나…'우울감' 넘어 '분노'로 퍼진다

(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10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지하철 광화문역에서 승객들이 내리고 있다. 서울시는 이날 오전부터 호우경보 해제시까지 출·퇴근 시간대와 막차시간을 30분씩 연장해 지하철과 버스를 증편 운행한다. 2020.8.10/뉴스1

"이제는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분당 거주 30대 직장인 박모씨)

박씨는 최근 모든 상황이 답답하다. 운동을 좋아해 헬스장과 주짓수 도장을 자주 찾았지만 '거리두기 2.5'가 시행된다는 소식에 집에서 운동하는 '링피트' 게임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친구들과 찾던 술집도 이제는 못간다. 지하철 출퇴근길은 더 짜증이 난다. 계속됐던 태풍과 장마, 소나기에 바지 젖는 건 이미 일상이다. 덥고 습한데 답답한 마스크까지 끼면서 불쾌지수가 오른다.


장마와 태풍 등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재발하면서 시민들의 정신건강이 악화되고 있다. 코로나로부터 시작된 우울함이 장마·태풍·코로나에 따라 분노로 번지고 있다.

다시 찾아온 먹구름과 코로나30일 기상청에 따르면 제9호 태풍 '마이삭'은 부산 인근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된다.

2일 오전 3시 서귀포 남쪽 약 440㎞ 부근 해상에, 3일 오전 3시쯤에는 부산 북서쪽 약 20㎞ 부근 육상을 지날 전망이다. 이후 태풍은 울산·경주·포항 부근을 지나 강원도 동해안으로 빠져나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5일 제8호 태풍 바비가 접근한지 약 일주일 만에 더 강한 태풍이 상륙하는 셈이다. 이미 역대 최장기 장마로 먹구름만 가득찼던 일상에 다시금 비바람이 몰아치게 됐다.

코로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한동안 잠잠했던 확진자 수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급증하고 있다. 이날 0시 기준으로 신규 확진자만 299명 늘면서 누적 1만 9699명을 기록했다. 5일 만에 300명 아래로 떨어졌지만 좀처럼 세자리수 이하로 줄지 않고 있다.

결국 정부는 추가 확진을 막기 위해 거리두기 2.5단계 시행 결단을 내린 상황이다. 실내운동시설을 비롯해 카페, 식당에 대한 특단의 조치가 위해지면서 안 그래도 위축된 시민들의 활동은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코로나 블루? 설마했는데…"

중부지역 장마가 49일째 지속되며 역대 최장기간 기록을 세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 전망대대를 찾은 시민들이 높아진 한강 수위를 바라보고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대책을 세우기도 어려운 재해가 연이어 찾아오면서 시민들은 무력감을 느낀다.

서울에 거주하는 50대 직장인 박모씨는 "말만 '코로나 블루'인줄 알았는데 코로나 사태가 점점 길어지니까 나도 모르게 우울하다"면서 "행동이 제한되는 건 당연하고 앞으로도 경제가 안좋아질텐데 미래가 막혔다는 느낌마저 드니까 희망도 없어진다"고 말했다.

박씨는 최근 모든 논란에 대해 싫증을 느낀다고 호소한다. 오를대로 오른 부동산, 의사 집단휴진 논란, 코로나로 억제된 활동 등 모든 사안이 이제는 피곤하다는 설명이다.

여의도에서 직장을 다니는 하모씨도 답답하다. 올해 초 취직한 뒤 여가를 즐기기 위해 큰 맘 먹고 자전거를 구매했지만 아직도 새 것이다.

하씨는 "태풍 코로나 장마로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면서 "코로나 걱정에 어디 놀러가지도 못하는데 자꾸 어디 게스트하우스나 놀이동산 이런데서 감염 소식이 들리면 화가 난다"고 밝혔다.

"코로나 종식 기대했지만 좌절·실망 느껴…우울·분노로 표출"
전문가들은 코로나 종식에 대한 기대감이 좌절되면서 우울과 분노라는 감정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이동귀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코로나가 끝날 거라고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것이 반복되면 무력해진다"면서 "무력감을 내적으로 받아들이면 우울증이 외적으로 표출하면 분노로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결국 과도한 기대감을 접고, 건설적인 해결책을 찾으라는 조언이 나온다. 이 교수는 "코로나가 곧 종식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앞으로 백신도 나오고 상황은 더 좋아지겠다는 것을 믿되 현실적인 기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갈 곳 없는 분노는 결국 탓할 사람들을 찾게 되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초점을 두기보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건설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