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대 멜 은행이 없다"…표류하는 키코 자율배상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피해 기업과 은행간 분쟁을 자율적으로 조정하겠다며 지난 6월 출범한 은행협의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10개 은행 중 간사 은행이 없는 데다 어느 한 곳도 목소리를 내고 내서는 곳이 없어서다.

애초에 피해 보상 의지가 없던 만큼 시한을 채운 뒤 이달 말 자연스럽게 해산하지 않겠냐는 회의론이 팽배하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협의체 소속 은행들이 이달 말까지 배상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시한을 잡아놨지만 논의는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시한 내에 결정을 내려달라고 각 은행들에 요청했지만 요지부동이다.

협의체는 △신한 △우리 △하나 △KB국민 △NH농협 △대구 △씨티 △SC제일 △HSBC △IBK기업은행 등 10곳으로 구성됐다. 은행들은 145개 기업에 약 2000억원을 배상할 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은행당 평균 200억원 안팎이다.

협의체 소속 한 은행 관계자는 "협의체를 출범할 당시 간사 은행을 선출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느 은행도 협의체를 주도하려 들지 않는다"며 "잘못 총대를 맺다가는 전면에 나서 기업들과 금감원을 상대해야 하고 분위기에 따라 배상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협의체는 지난해 12월 논의가 시작된 이후 6월 말 구성원이 정해진 뒤 정식 출범했다. 자율 협약이라지만 협의체는 애초부터 금감원이 주도했다. 지난해 12월12일 6개 은행이 손실액의 15~41%, 255억원을 배상하라는 분쟁조정위원회 결과가 나오자마자다.

논의가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불똥은 은행연합회로 튀고 있다. 연합회가 주도적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다. 은행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연합회가 이들의 난처한 사정을 외면하고 있다는 불만이다. 연합회 역할을 기대했던 금감원도 마찬가지다.

금감원 관계자는 "연합회가 은행업계의 입법창구나 대외창구, 때론 불편을 대신해주는 기능을 해야 하는데 뒤로 빠진 모양새"라고 말했다.

연합회는 난감해 하고 있다. 연합회 관계자는 "은행들마다 보상 여부나 보상액 규모 등 이해 관계가 판이한 데 자칫 특정 회원사 편을 들거나 배척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권에서는 우리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 모두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며 시한을 채우는 식으로 보상을 거부할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6개 은행 중 우리은행을 뺀 나머지 모두 분조위 권고를 거절한 전력 때문이다. 분조위 결정을 배격하고 이번 보상을 단행하는 건 모순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단독으로 배상을 결정할 은행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은행권 시각이다. 이번에도 분조위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배임' 명분이 작용할 거라고 본다.

익명의 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분조위 권고를 불수용할 때 자율보상은 이미 결론 난 것"이라며 "시한이 지난 이후에도 당국이 기한을 또 다시 연장하는 식으로 은행들을 압박하지나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