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생 사망 '디지털 교도소', 법조계 생각은 달랐다

디지털 교도소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디지털 교도소는 올해 3월부터 'n번방' 운영자 등 성범죄자의 신상을 민간 차원에서 공개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사이트다. 신분을 감춘 운영진들이 특정 성범죄 용의자 신상을 제보받은 뒤 일정한 검증 과정을 거쳐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며 러시아 도메인으로 등록돼 있다.


디지털 교도소는 사이트 운영 초기 부터 비판과 지지가 엇갈려 이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최근 이 사이트에 신상이 공개된 대학생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적법성 논란이 가열될 전망이다.

디지털 교도소에 신상공개된 대학생..."억울하다" 호소 후 숨져 6일 경찰 등에 따르면 디지털 교도소는 지난 7월 A씨가 '지인능욕'을 요청했다며 그의 얼굴 사진과 학교, 전공, 학번, 전화번호 등의 신상정보를 게시했다. 지인능욕이란 지인의 사진을 음란물에 합성시키는 성범죄를 말한다. 디지털 교도소는 A씨가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신저 내용과 음성 녹음 파일도 공개했다.

신상이 공개된 A씨는 억울하다며 적극 해명했다. A씨는 대학교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디지털 교도소에 올라온 정보는 내 것이 맞다"면서도 "범죄사실 내용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모르는 사이트에 가입됐다는 문자가 와서 링크를 누른 적이 있는데 그때 핸드폰 번호가 해킹당한 것 같다"고 적었다.

하지만 A씨의 해명 이후에도 디지털 교도소는 그의 신상을 계속 공개했고 A씨는 이달 3일 집에서 숨진 채 가족에게 발견됐다. 경찰은 5일 A씨 부검 결과 범죄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며 단순 변사 사건으로 처리했다고 밝혔다.


디지털 교도소 "피해자가 직접 확인 거쳐"..."검증도 없이 신상 공개하지 않아"사건이 발생하자 디지털 교도소는 5일 사이트 내 공지사항을 통해 "피해자에게 직접 확인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디지털 교도소는 "사건이 발생한 직후 피해자 여성분께 SNS를 통해 연락을 취했고 A씨의 목소리 파일을 들었던 피해자분께서 A씨가 확실하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학 커뮤니티에 올라왔던 글에서도 같은 과 동기조차 실제 A씨의 목소리와 비슷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며 "디지털 교도소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알아낼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

디지털 교도소는 "A씨에게 사설 디지털 포렌식 센터를 찾아 텔레그램 설치내역, 삭제내역, 인증문자내역, 텔레그램 대화내역을 인증하라고 요구했으나 A씨는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단순히 억울하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면서 "정말로 억울하고 해킹을 당한 게 맞다면 몇개월이나 되는 시간동안 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을까. 증거를 제시하면 게시글을 바로 내려주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디지털 교도소 홈페이지에는 아직까지 A씨의 정보가 게시된 상태다.

또다시 불거진 범죄자 신상공개 위법 논란네티즌들 사이에선 이번 사건을 두고 디지털 교도소의 취지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법의 테두리를 넘어선 부분에 대해선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가 사법기관의 판단이 끝나기도 전 신상이 공개되는 것은 개인의 방어권을 무력화시킨다는 지적도 나왔다.

디지털 교도소에는 성범죄자들의 신상만 게시된 것이 아니라 판사들의 신상정보 또한 게시돼 있다. 지난 7월 아동 성착취 동영상 공유 사이트 운영자인 손정우씨의 미국 송환을 불허한 판사들이다. 현재 대구경찰서 사이버수사대는 디지털 교도소 운영진 중 일부를 특정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은 해외에 거주 중인 운영진들에 대해서도 국제 공조를 통해 수사할 계획이다.

디지털 교도소가 있기 전 강남패치라는 사이트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2016년 유흥업계 종사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강남패치는 일반인 남녀 100명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했다.

강남패치는 유흥업소에서 쉽게 돈을 벌며 성공한 것처럼 꾸미는 이들을 밝히겠다며 정의를 표방했지만 무차별 신상털이를 진행한 끝에 운영자 정모씨가 재판에 넘겨졌고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정씨는 2심에서 피해자들과 합의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받았다.

강남패치 이후 한남패치라는 사이트가 인기를 끌었는데 디지털 교도소와 비슷하게 성매매·성폭력을 저지른 남성 고발을 표방하며 불특정 다수의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그러나 게시물들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을 근거로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법조계에서는 디지털 교도소 또한 위법 소지가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범죄 조사와 형사 처벌은 국가 사법기관의 영역인데 이를 민간에서 진행할 경우 또다른 피해자가 생겨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판결 확정 전 디지털 교도소에 신상이 공개될 경우 유죄라는 인식이 생겨나 헌법상 보장되는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반한다고 우려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디지털 교도소의 경우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면서 "대부분 명예훼손 혐의는 공익 목적 등을 이유로 깨지는데 디지털 교도소의 경우 공익 목적이라기 보단 특정 인물을 비난·비방하려는 목적이 더 강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죄지은 사람이 밉다 해도 그 죄에 대한 판단과 처벌은 국가기관의 역할"이라며 "민간에 그 역할이 넘어가는 순간 큰 혼란이 야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