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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구에서 산 '장미꽃 카드'…사장님께 드렸다[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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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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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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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게는, 정말 오래오래 남아야 합니다"…고단히 버티는 이들 위해 소비하며 '응원'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안 보였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성북동의 오래된 문방구. 코로나19로 인해 아이들이 찾지 못해 힘든 시간을 겪고 있다고 했다. 그를 위해, 문방구에서 산 장미꽃 카드에 응원을 적어 건넸다./사진=남형도 기자
성북동의 오래된 문방구. 코로나19로 인해 아이들이 찾지 못해 힘든 시간을 겪고 있다고 했다. 그를 위해, 문방구에서 산 장미꽃 카드에 응원을 적어 건넸다./사진=남형도 기자
문방구에서 산 '장미꽃 카드'…사장님께 드렸다[남기자의 체헐리즘]
"사장님, 여기서 어떤 카드가 제일 예쁜 것 같으세요? 하나만 골라주세요."


"어른에게 주는 거죠? 어디 보자…"

뜬금없는 요청에 문방구 사장님은 자신의 가게에 진열된 카드들을 물끄러미 봤다. 거기엔 생일 케이크도, 초록빛 화분도, 칵테일도 그려져 있었다. 카드가 꽂힌 빛바랜 비닐과 좁다란 문방구 특유의 내음. 그게 이 공간이 익어온 세월을 짐작하게 했다.

골똘히 고민하던 사장님은 장미꽃이 그려진 카드를 내밀었다. 그게 제일 예쁘다며. 그걸 손에 쥐고, 카드 11장을 더 골랐다. 스티커도 함께 샀다. 오려져 있는 건 없냐고 찾으니, 사장님은 "잘라서 쓰는 게 요즘 스타일이야, 세대 차이 나지요?"라 했다. "정말 그렇다"며 함께 웃었다.

계산하며 근황을 조심스레 물었다. 긴 한숨으로 이야기가 시작됐다. 아이들이 학교에 안 오니, 하루 열 몇 명 정도밖에 안 온단다. 조금 나아졌다 싶을 때 광화문 집회 감염이 터졌다고. 그러면서 이어진 정치와 역사 얘기가, 중국과 티베트의 국제 이슈까지 번졌다. 손님이 없어 시간이 많으니, 괜한 관심만 늘었단다.

1시간이 흐르는 동안 빈 문방구를 지켰고, 이야기가 끝날 무렵 한 초등학생 손님이 들어왔다.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다며, 얘길 들어줘 고맙다는 사장님과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바깥에 나와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문방구에 대한 기억을 들려달라고. 그리고는 아까 사장님이 골라준 장미꽃 카드에 손편지를 이렇게 썼다.
동네 아이들이 기억하는 문방구의 모습을, 손편지에 담았다./사진=남형도 기자
동네 아이들이 기억하는 문방구의 모습을, 손편지에 담았다./사진=남형도 기자
"오랜만에 옛 추억이 돋아납니다. 어린 시절 갖고 싶었던 것들이 가득 있어서요. 지나가던 초등학생 손님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엄청 친절하시고, 불량 식품이랑 아이스크림을 그냥 더 주셨다고, 응원을 어떻게 할진 모르지만 감사하다고요. 언젠가 다시 봄이 오고, 추억할 날이 오리라 희망해봅니다. 또 찾아뵙겠습니다."

다시 문방구에 들어가, 사장님에게 건네니 "이게 뭐냐"며 의아해했다. 응원이라고 답한 뒤, 카드를 꺼내려는 그의 모습을 등진 채 후다닥 뒤돌아 나왔다.
남대문시장 한 분식집 테이블 벽에 붙어 있던 문구.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까./사진=남형도 기자
남대문시장 한 분식집 테이블 벽에 붙어 있던 문구.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까./사진=남형도 기자
그리 아날로그식 응원을 하고 있었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자영업자들에게.

폐업하는 이를 취재하려 요청했다가, 돌아온 어느 사장님의 짧은 대답에 숨이 턱 막혔었다. "힘들어서 안 하고 싶어요." 그 말이 너무 묵직하고 쓰렸다.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영업자가 힘들단 기사의 홍수 속에서, 어떤 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고민하는 시간이 계속됐다.

작은 보탬이 될 소비응원 밖엔 생각이 안 났다. 죽을 듯 버티는 이들에게, 찰나의 힘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 그래서 손님으로 찾아가, 피드백과 함께 그 가게를 기억하는 이들의 말을 전하기로 했다. 그걸 '손편지'에 담았던 건 아마도 길어질 힘듦에, 단 몇 번이라도 더 힘이 되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마스크를 항상 쓰고, 손을 수시로 씻으며 가장 중요한 방역 수칙을 잘 지켰다.



속이 꽉 찬 김밥집에 "마음 채우고 갑니다"


속이 꽉 찬 성북동 김밥집./사진=남형도 기자
속이 꽉 찬 성북동 김밥집./사진=남형도 기자
성북동 김밥집에 들어가 허기를 달랠 참이었다. 매장 테이블에 사장님이 홀로 앉아 있다가, 인사하며 반갑게 맞았다. "안녕하세요"하고, 목소리에 더 힘을 주어 답인사를 건넸다.

기본 김밥과 라면을 하나씩 시켰다. 라면은 특이하게 선택할 수 있었다. 그래서 메뉴 이름도 '골라면'이었다. '이건 참 좋다'고 생각했다. 진O면 매운맛과 너구O을 고민하다가, 진O면을 골랐다. 사장님은 "맵게 해줄까요? 고춧가루 좀 풀어주려고요"하며 자세히 물었다. 얼큰한 게 당겨서, 맵게 해달라고 했다.

음식을 기다리며 방역명부를 썼다. 하루 손님이 그리 많진 않아 보였다. 장사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올해 4월에 시작했단다. 그게 익숙해서인지, 사장님은 "그러려니 하지요"라며 덤덤히 근황을 전했다.

라면과 김밥은 때깔만 봐도 정성이 느껴졌다. 라면엔 파와 큼직한 양파가 아낌없이 들어갔고, 구수하고 아름다운 빛깔은 '빨리 먹어달라'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주관이 다소 개입). 김밥엔 아낌없이 깨를 뿌렸고, 매끄럽게 발라진 기름이 고소한 윤기를 냈다. 김밥 속은 큼직한 재료들로 가득 찼다. 한입에 넣으니, 신선한 식감이 아삭아삭 씹혀, 입안에서 조화롭게 다채로운 맛을 냈다.

흥분해 흡입하느라 김밥 속이 터졌는데, 섬세한 사장님이 그걸 놓치지 않았다. "김밥이 잘 안 잘렸나 봐요. 다시 해줄까요?"라며 주방으로 가려 하기에, 정말 괜찮다고 한사코 말렸다. 오히려 "입안에 들어가면 다 똑같다"고 너스레를 떠니, 사장님과 직원분이 모처럼 크게 웃었다. 그게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발그레한 꽃다발이 그려진 카드에 이렇게 남겼다. 김밥집을 기억하는 손님들 응원이었다.
조금이나마 기운이 되기를 바라며, 가게를 기억하는 손님들 이야기를 손편지에 꾹꾹 눌러 담았다./사진=남형도 기자
조금이나마 기운이 되기를 바라며, 가게를 기억하는 손님들 이야기를 손편지에 꾹꾹 눌러 담았다./사진=남형도 기자
"라면을 선택할 수 있다니, 이런 가게는 오래오래 남아야지요." "너무 친절하셔서, 밥 먹으러 가서 마음을 채우고 옵니다." "동네에 이런 가게가 있다니, 없어지면 안 됩니다." "어릴 때 소풍 가서 먹던 김밥 맛 그대로예요." 다정한 마음들이었다.



남대문 시장 C동 커피, "20년 장사했지만, 정말 힘드네요"


가성비가 좋았던, 2000원짜리 남대문시장 아메리카노./사진=남형도 기자
가성비가 좋았던, 2000원짜리 남대문시장 아메리카노./사진=남형도 기자
오후엔 남대문 시장에 갔다. 관광객이 없어 죽어라 하는데, 코로나19 확진자까지 나와 엎친 데 덮쳤다. '버티기 내공'으론 최고라 자부하는 이곳 상인들도, 이구동성으로 최악이라 했다.

시장 내부는 대체로 한산했다. 늘 북적이던 곳인데 눈에 띄게 사람이 줄었다. 서너 가게 걸러 하나씩 문 닫은 게 보였다. "저긴 30년 세월을 견뎠는데"하며 어느 사장님이 가리킨 가게 앞엔, 의자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간판 위 낡은 시계만 느릿느릿 가고 있었다. 많은 가게 사장님들은 멍한 눈으로 행인들을 바라봤다. 몇몇은 아예 꾸벅꾸벅 졸고 있기도 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가격 2000원, '역시 남대문 시장이구나' 싶어 마른 목을 축이려 C동 커피집에 들렀다. 다른 가게 사장님이 텅 빈 주문대 앞을 지키다, 날 보곤 "아이고 주문하시려는데 막았나 봐요"하며 황급히 자릴 떴다. 아마 손님 없어 절박한 사장님 마음을, 같은 사장님이 가장 잘 알았으리라.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리는 동안, 대화를 나눴다. 20년 장사했단 사장님의 첫 마디는 "다 망했어요, 완전 폭망이에요"였다. 이렇게 무서운 일이 생길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정말 힘들단 얘기였다. 희망도 희미해 보였다. 여전히 겁이 난단다. "빌 게이츠 오빠가 그랬잖아요. 내년 연말이나 돼야 괜찮아진다고. 진짜 이건 유령 도시에요. 그 상실감이 얼마나 큰지…."

그와 함께 한숨을 쉬다, 잘 마시겠다며 커피를 받아 들었다. 남대문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한 모금이 다 들어가기도 전에, 청량한 원두 향이 입안에 가득 머금어졌다. 아직 더운 가을 날씨라 금세 벌컥벌컥 다 비웠다. 가성비가 좋은 '착한 커피'였다.
/사진=남형도 기자
/사진=남형도 기자
문 닫은 상가 앞 돌계단에 앉아 카드를 꾹꾹 눌러썼다. "제가 커피를 좀 마셔본 사람인데 맛있습니다. 가성비가 정말 좋아요. 또 마시러 올 때까지 부디 잘 지켜주세요." 다시 사장님에게 가서, 커피 한 잔을 더 주문하며 카드를 전달했다.

카드 앞면엔 개나리처럼 노란 커피잔이 그려져 있었고, 그 위로는 초록빛 네 잎 클로버가 가득 자라나 있었다.



아몬드와 김 팔던 가게 "그냥 팔아야지, 갖고 있음 뭐 해요"


관광객이 주로 사가는 게 아몬드와 김인데, 이들이 찾지 않으며 급격히 어려워졌다고. 돌김과 아몬드를 1만5000원에 구입했다./사진=남형도 기자
관광객이 주로 사가는 게 아몬드와 김인데, 이들이 찾지 않으며 급격히 어려워졌다고. 돌김과 아몬드를 1만5000원에 구입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시장 안에서도 타격이 더 큰 가게들이 있다고 했다. 주로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하던 곳들이었다.

허니 버터 아몬드와 김을 한가득 쌓아둔 곳이 보였다.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기념품이라 들었다. 가게 앞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사장님이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김 맛있어요. 사세요"라고 말했다. 목소리엔 기운이 없었다. 그 사정이야 말해 뭐할까, 굳이 들어보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김은 1만5000원, 허니 버터 아몬드는 5000원인데, 두 개 합쳐서 1만5000원에 가져가란다. "그냥 팔아야지, 갖고 있으면 뭐 해요. 빨리 없애야지요." 그 묵직한 말에 말문이 막혔다. 외국 손님도 '단골 장사'로 할 만큼 자부심 있던 가게였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완전히 무너졌단다.

싸게 산 것도 미안한데, 작은 아몬드 두 봉지를 검은 비닐봉지에 쑤셔 넣는 게 아닌가. 가는 길에 먹으라면서. "사장님, 제발 이러지 말라"며 한사코 만류하니, 억지로 밀어 넣으며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요, 서로 힘을 내야지." 그 정스런 고집에, 더는 거절할 수 없었다.

가을 단풍잎과 책이 그려진 카드를 꺼내어 손편지를 이렇게 썼다.
아몬드와 김, 너무 맛있었어요. 잘 먹었습니다 사장님. 또 사러 가려고요./사진=남형도 기자
아몬드와 김, 너무 맛있었어요. 잘 먹었습니다 사장님. 또 사러 가려고요./사진=남형도 기자
"사장님, 김하고 아몬드는 한국 사람들도 너무 맛있어요. 외국인 단골 분이 왜 많으신지 알 것 같아요. 기억할 수밖에 없는 가게이니, 비행기가 다시 뜨면 북적거릴 거예요. 오후 간식으로 잘 먹었습니다. 또 올게요."

가게로 다시 돌아가, 시원한 비타민 음료와 함께 사장님께 건넸다. 고맙다며 미소 짓는 그에게, "파이팅!"하고 쑥스럽지만 크게 외쳤다.



군복 파는 가게 "하루 매상이 2~3만원"



군복을 파는 남대문 시장의 거리. 한산해도 너무 한산했다./사진=남형도 기자
군복을 파는 남대문 시장의 거리. 한산해도 너무 한산했다./사진=남형도 기자
다시 시장을 돌다가, 생전 해본 적 없는 소비를 했다.

남대문 시장 내에 '군복'을 파는 좁다란 골목이 있었다. 이른바 '군복 거리'라 했다. 가게 6~7곳이 연달아 이어지는데, 유독 더 썰렁했다. 중간중간 문을 닫은 가게도 꽤 있었다.

한 번 지나가며 마음이 쓰였으나, 군복은 입을 일이 없을 것 같아 지나쳤다. 그런데 다시 그 거릴 지나가니, "아까 왔던 손님이지요? 옷 한 번 봐요"하며 기억하는 게 아닌가. 그 절박한 기억력에, 발걸음이 그만 멈춰버렸다.

마음은 여러 가게에 다 머물렀으나 어쩔 수 없이 한 곳에 멈췄다. 반소매 티셔츠를 보고 있자니, 사장님이 하나하나 친절히 설명해줬다. 미군이 입는 군복이라고, 이건 육군이고 이건 공군이라고. 실은 그건 그리 중요치 않았지만, 애써 귀 기울여 듣다 육군 옷이라는 베이지색 티셔츠를 골랐다.

하루 매출이 요즘 2~3만원이라는 말을 들으며 계산을 했다. 거기에 1만3000원을 보탠 게 자그마한 위안이 되었다. 입어보고 피드백을 해야 했기에, 뒤늦게나마 기사로 손편지를 전하고 싶다.
썩 잘 어울리지 말입니다./사진=미군 군복 처음 구입한 남형도 기자
썩 잘 어울리지 말입니다./사진=미군 군복 처음 구입한 남형도 기자
"사장님, 어제 이 옷 입고 아내에게 '멋있다'고 칭찬받았어요. 살에 닿는 느낌이 부들부들하고, 천이 쫀쫀해서 정말 좋더라고요. 이걸 이렇게 저렴하게 사다니 횡재했어요. 다음엔 겨울용 공군 군복 사러 갈 테니, 그때까지 몸 건강히, 맘 건강히 잘 지내고 계세요."



아내에게 건넨 '5000원짜리 귀걸이 선물'



아내에게 귀걸이 선물을 했더니, 마음에 들어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에게 귀걸이 선물을 했더니, 마음에 들어했다./사진=남형도 기자
꽤 오랜만에, 아내에게 귀걸이 선물도 했다. 시장 안엔 어찌나 예쁜 액세서리도 많던지.

주얼리 상가 안에 들어갔더니, 오가는 사람이 너무 적었다. 그에 비해 가게 하나에 최소 1~2명씩, 생사를 함께한 이들이 있었다. 손님이 있든 없든, 이들은 묵묵히 반지와 귀걸이, 목걸이를 만들고 있었다. 한시라도 한눈팔면 어그러질 듯, 온 신경을 집중해야 가능한 섬세한 작업 같았다.

가게 한 곳에 들어가 귀걸이를 골랐다. 저렴한 건 2000원, 비싸도 5000원 남짓이었다. 만드는 이의 정성이 가득 담긴 탓인지, 색색으로 빛나서인지, 받을 이를 생각해서인지, 내 마음도 일순간 무척 반짝거렸다. 아내가 애용하는 진주 귀걸이가 망가진 걸 봤기에, 비슷해 보이는 제품으로 하나 샀다.

집에 오니, 진주는 비슷한데 모양은 좀 달랐다. 취향 저격은 실패했으나 아내는 "이게 5000원밖에 안 하냐"며 착용하고 거울을 보더니 좋아했다. 마침 필요했는데 잘 되었다며. 그래서 이렇게 전하고 싶다.

"아내가 귀걸이 예쁘다고 마음에 든다고 하네요, 사장님. 진주 옆에 별 모양 디자인을 보고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고 하긴 했지만, 그건 제 불찰인 거고요. 예쁜 액세서리 덕분에, 고단한 밤이 조금이나마 빛났달까요. 다음엔 에펠탑 모양 귀걸이 사러 갈게요. 파리는 못 가니, 대신 아내 귀나 봐야지요."



음료 다 마시니, '얼음물' 건네준 이대 앞 카페


무럭무럭 자라, 스벅만큼 클 거라 적혀 있던 이대 인근 아늑한 카페./사진=남형도 기자
무럭무럭 자라, 스벅만큼 클 거라 적혀 있던 이대 인근 아늑한 카페./사진=남형도 기자
저녁 무렵이 다 된 뒤에야 남대문 시장을 벗어났다. 마지막으로 이화여대 인근을 둘러보기로 했다. 이곳 상권이 말이 아니라기에.

사람들 눈에 잘 안 띄는, 좀 더 안쪽에 있는 카페를 찾았다. 이름도 마침 '아늑'이었다. 보는 것만으로 어쩐지 편안해졌다. 들어가 헤이즐넛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계산대 왼편엔, 손님들의 쿠폰 카드가 잔뜩 걸려 있었다. 여기가 좋아 다시 오겠다는 다정한 약속들.

목이 말라 커피를 5초 만에 다 들이마셨다. 사장님과 마주 보는 테이블에 앉았는데, 어쩐지 좀 민망해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빈 음료 컵을 본 사장님이 다가와 "얼음물 좀 드릴까요?"라고 친절히 물었다. 그러더니 얼음이 가득 담긴 넉넉한 물을 내려놓았다. 여전히 갈증이 났던 터라 감사하다고, 잘 마시겠다고 했다.

그리고 물컵마저 다 비운 뒤, 손편지에 이렇게 쓰고 나왔다.
물은 시원했고, 마음은 따뜻했다./사진=남형도 기자
물은 시원했고, 마음은 따뜻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음료를 다 마셨다고, 먼저 알아채고 얼음물을 주는 카페는 처음이에요. 더운 날 하루 내내 걷느라 지쳤었는데, 이곳에서 힐링하고 갑니다. 무럭무럭 자라서 스타벅스보다 더 크실 거라(가게에 쓰여있던 말) 믿고 응원할게요."



헬스장 사장님께 "가슴이 처져서…없어지면 안 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인해, 불 꺼진 헬스장./사진=남형도 기자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인해, 불 꺼진 헬스장./사진=남형도 기자
마지막으로 동네 헬스장에 들렀다. 반년 정도 다닌 곳인데,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때문에, 문을 닫았다. 그래서 운동을 못 간 지 오래였다. 홈 트레이닝은 숨쉬기만 하고 있어서, 돼지 지수가 올라가고 있었다.

이곳엔 트레이너가 세 분 정도 있는데, 누구에게 배워도 다 잘 가르쳐줬다. 가격 대비 효과가 아주 좋은 곳이었다. 특히 운동 기구를 좋은 걸 써서, 부위 별로 자극이 아주 잘 되었다. 만족스러운 곳이라, 문을 닫으면 안 되는데 싶어 마음이 조급했다.

오랜만에 헬스장에 가니,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어두 컴컴했다. 이 기간이, 얼마나 길고 답답하고 아득할까 싶어, 그 앞에 잠시 서 있었다. 문에, 미리 준비해둔 손편지를 끼어놓고 뒤돌아섰다. 내용은 이랬다.
동네 자영업자들이 문 닫으면 안 되는 이유는 너무나 많다./사진=남형도 기자
동네 자영업자들이 문 닫으면 안 되는 이유는 너무나 많다./사진=남형도 기자
"헬스장 다닐 때 이두근이 2cm, 대흉근이 2.5cm 성장했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못 나가니, 가슴이 쳐져서 울고 있어요. 동네에서 최고 좋은 운동 기구가 있고, 무료 PT 해주시는 곳도 처음이니 절대 없어지면 안 됩니다. 힘내세요, 다시 나갈게요!"



누구도 괜찮지 않은 밤


30년이 넘었다는 남대문시장 내 한 가게는, 결국 문을 닫았다고 했다. 누군가의 꿈이었을 이곳 앞엔 의자만 가득 쌓여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30년이 넘었다는 남대문시장 내 한 가게는, 결국 문을 닫았다고 했다. 누군가의 꿈이었을 이곳 앞엔 의자만 가득 쌓여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렇게 자영업자들을 향한 '손편지 응원 프로젝트'가 끝났다.

구석구석 다니며 살펴보니, 생각한 것보다 상황이 더 나빴다. 폐업한 가게 옆에, 또 폐업한 가게가 있었다. 그런 사례가 허다했다. 거리는 애써 자세히 보지 않아도 대부분 너무 휑했다. 버티고 버틴 이들은 광화문 집회 이야길 많이 했다. 버티고 버티다 이제 좀 살아나나 싶었는데, 또 이렇게 되니 이젠 자신이 없다면서.

그러나 누구를 원망할 힘마저 없어 보였다. 올해 3~4월에 취재 다닐 때만 해도 "힘들지만 버텨야지요"했는데, 지금은 "이게 끝나긴 하겠어요"라며 무기력한 반응이었다. 사람이 없으니 텅 빈 가게에 앉아 스마트폰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멍을 때렸고, 저녁이 되기도 전에 문을 닫거나 아예 며칠씩 쉬는 곳도 많았다.

모두 다 손님이 필요하니, 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임대 문의'라 쓰여 있는 골목을 벗어나니, 또 다른 거리에 같은 문구가 쓰여 있었다. 파스타를 세 그릇 먹고, 옆 가게서 커피를 양손에 쥐고, 그 옆으로 가서 잘 알지도 못하는 여성 의류를 잔뜩 산 뒤, 건너편 가게서 양쪽 귀와 목에 액세서리를 걸치는 상상을 했다. 허탈하고 복잡한 마음이었다.
잇따라 폐업한 이대 인근의 두 가게./사진=남형도 기자
잇따라 폐업한 이대 인근의 두 가게./사진=남형도 기자

자영업자들에게 물었다. 어쩌겠냐고 하면서도 바람은 같았다. "가게를 살릴 만큼 정부가 지원해줄 게 아니면, 손님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어요. 그저 이 사태가 빨리 끝나길 바랄 수밖에요." 그러면서 이런 당부를 잊지 않았다. "제발, 한 분도 빠짐없이 마스크를 잘 쓰고 방역 잘 지켰으면 좋겠어요. 부탁입니다. 너무너무 힘듭니다."

그러니 마스크를 벗고 싶을 때 힘들어 할 이들을 떠올리는 것, 우연히 마주치면 힘내라는 응원 한 마디 더 건네는 것, 그게 이 시국을 끝낼 수 있는 단순하고 유일한 길이란 걸 알았다.
분식집 옆, 두부·생선 가게 사장님이 "분식집 음식 정말 맛있다"며 가보라고 홍보해줬다. 나오는 길에 "맛있었지요?"라 물으시기에, "정말 맛있었다"고 감사하다고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분식집 옆, 두부·생선 가게 사장님이 "분식집 음식 정말 맛있다"며 가보라고 홍보해줬다. 나오는 길에 "맛있었지요?"라 물으시기에, "정말 맛있었다"고 감사하다고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남대문 시장 구석구석을 다니다, '할머니 김밥 분식'이란 곳을 지나갈 무렵이었다.

분식집 사장님도 아닌, 그 옆 다른 가게 사장님이 내게 "여기 분식집 진짜 맛있어요. 한 번 먹어봐요"라고 홍보했다. 으레 내 가게로 와달라 하는 게 보통 아닌가. 두부와 생선 등을 파는 자신의 가게도 손님이 없는 건 마찬가지이면서, 그리 몇 번씩 설득했다.

그 말에 따스하게 이끌려 나도 모르게 분식집에 들어갔다. 점심을 이미 먹었음에도.

새우 볶음밥을 시킨 뒤 사장님에게 요즘 어떠시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나마 난 괜찮아요, 다른 가게들이 더 힘들어. 김하고 아몬드 파는 가게, 액세서리 가게, 이런 곳들 많이 찾아가서 팔아줘요. 관광객이 없어서 정말 너무 힘들어해." 본인 가게도 거의 텅 비었으면서, 그는 그리 걱정하고 있었다.

왜 다들 이런 식으로 말할까. 절벽 끝에 매달려 다른 이를 더 생각하는 건, 대체 어떤 마음일까.

새우가 적어 미안하다며, 계란 프라이까지 얹어준 맛난 밥에 목이 메어서인지, 사장님의 보드라운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 남형도
    남형도 human@mt.co.kr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시선에서 소외된 곳을 크게 떠들어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면서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 간직하려 노력합니다. 좋은 제보 언제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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