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의 아포리아] 대통령과 사회통합

어느 국가나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많겠지만 대통령의 임무를 크게 나눈다면 첫째 경제, 둘째 안보, 셋째 사회통합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가운데 경제는 세계적 경기 흐름에 영향받고 안보는 지정학적 위치에 따라 규정받는다. 반면 사회통합은 대통령의 정치력이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는 정치 본연의 영역이다. 사회통합의 수준은 경제와 안보역량에 영향을 미치고 궁극적으로 민주주의 실현에 주요 변수가 된다. 물론 사회통합도 경제 및 안보분야의 성과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에 따로 떼어내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은 적어도 1300여만명의 서로 다른 이해를 갖는 시민의 지지가 모여 결정된다. 그것이 재산세가 됐든, 특목고 문제가 됐든 또는 자유의 회복이 됐든 어떤 공약에 자신의 이익을 계산한 시민들의 거대한 이해가 집적돼 선출되는 것이다. 이 과정이 국가가 갖는 이익집단의 집합적 총체로서 성격을 보여준다면 동시에 국가는 동료 시민의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위해 재분배의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윤리적 공동체라는 성격도 갖고 있다. 그러니까 사회통합은 적어도 국가가 갖는 이러한 2가지 성격을 함께 고려하면서 추구돼야 한다.
　
국가가 갖는 첫 번째 성격에서 중요한 사회통합 요소는 시민들이 이익을 다투는 과정에 모든 참가자가 승복할 수 있는 공정한 경쟁의 규칙을 제공하는 것이다. 국가의 두 번째 성격에서 중요한 사회통합 요소는 모두가 동의할 만한 가치와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시민들이 공동체에 소속감을 느끼는 하나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컨대 노력과 능력에 비례한 차등분배를 선호하는 한국인들에게 자신의 노력과 능력을 공정하게 평가해주는 것이 중요한 첫 번째 사회통합의 요소라면 천부적인 재능과 타고난 환경이라는 운의 요소를 사회적 제도를 통해 통제함으로써 모두에게 평등한 출발의 기회를 보장하는 것은 두 번째 사회통합의 요소다.
　
사실상 시장 중심의 분배와 개인의 책임을 전제하는 능력에 비례한 차등분배 주장은 곧 세습된 자원을 동원한 불공정 경쟁의 현실과 만나게 된다. 따라서 두 번째 사회통합 요소인 국가에 의한 재분배와 사회적 연대가 여전히 중요하고 대통령은 시민들이 그들 사이의 이념적 입장과 경제적 이해의 차이를 뛰어넘어 연대할 수 있는 공동의 정체성을 만들어내야 한다. 시민들이 공유하는 공공재로서 정체성이라는 상징적 허구를 만들어내는 가장 정치적인 작업은 역설적이게도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을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선거와 투표를 둘러싼 절차적 민주화가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실질적 민주화로 진전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쉽게 포퓰리즘 유혹에 빠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한다.
　
좋은 삶에 대한 규정은 시대와 개인에 따라 다르다. 공적인 생활에서 행복을 느끼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시민, 공적 생활보다 사적 영역에서의 덕을 곧 행복이라고 생각한 스토아적 시민, 반대로 공적 생활보다 사적 영역의 쾌락을 행복이라고 주장한 에피쿠로스적 시민 등 좋은 삶의 모습은 개인의 가치와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좋은 정치란 시민들이 선택한 좋은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개인들이 꿈꾸는 평등한 삶의 기회를 보장하는 정치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공성을 고양하는 공정한 절차와 무임승차를 배제하는 제도적 장치는 국가 운영의 토대인 사회통합을 가능하게 만든다. 즉 사회통합은 대통령이 좋은 정치를 위해 해야 할 다른 어떤 임무보다 중요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