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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위험한 때리기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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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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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바우돌리노’에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1세)가 이탈리아 원정 도중 실제 개최했던 제국회의 장면이 나온다. 황제가 볼로냐의 이름 높은 법학자 4 명을 초대해 황제의 권리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3 명은 프리드리히가 원하는 대답인 “황제의 권리는 로마의 법률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답했지만 마르티누스라는 학자만 다른 의견을 밝혔다.

황제의 심기를 거스르는 발언을 한 학자는 과거 다른 로마 황제 때였다면 ‘눈이 뽑히는’ 형벌을 받아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프리드리히는 학문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법률을 공포했고, 마르티누스의 머리카락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다. 만약 머리카락 하나라도 건드린다면 학자는 더이상 독립돼 있지 않으며, 그들의 의견은 아무런 가치도 없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읽은지 오래 돼 줄거리마저 가물가물하지만 이 장면에서 받은 감동만큼은 생생하다. 교보문고를 들러 그 대목을 다시 펼친 것은 최근 이재명 경기지사가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 결과를 원색적으로 비난한 게 계기였다.

조세연은 문제의 보고서에서 지역화폐가 국가간 무역장벽이나 보호무역 조치와 유사한 성격을 내포하고 있어 소비자 후생을 감소시키고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해친다고 지적했다. 모든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경우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는 사라지고 발행비용, 소비자 후생 손실, 보조금 지급에 따른 예산낭비 등의 부작용만 남게 된다.

사회 전체의 후생을 고려해야 하는 중앙정부의 관점에서 지역화폐 발행으로 소비 지출을 특정 지역에 가두는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소상공인을 보호하는 효과가 목적이라면 다른 지자체에 피해를 주지 않는 온누리상품권이 대안이라고 했다. 후생경제학과 게임이론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수긍할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이다.

이재명 지사는 이같은 보고서가 나오자 SNS에 ‘얼빠졌다’라는 표현을 반복해 써 가며 비난했다. 근거로 △지역화폐 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공약이자 현 정부의 핵심주요정책이고 △연구 내용은 현재의 지역화폐 시행시기와 동떨어지고 △지역화폐는 지역경제와 지방경제의 활성화, 소득증가뿐 아니라 매출 및 생산 증가유발이라는 목적에 부합하고 △다른 국책연구기관의 연구결과와 상반된다는 점을 제시했다.

글을 거듭 올려 △지역화폐는 저축을 할 수 없고 반드시 소비해야 하므로 승수효과가 크고 △지역화폐는 불법할인(깡) 가능성도 없고, 재충전이 가능해 발행 비용도 반복적으로 들지 않는다고도 했다.

지역화폐는 이재명 지사가 경기 성남시장이던 시절 성남에서 시작한 정책이다. 자신의 대표적인 정책의 효과를 부인하는 보고서에 기분이 좋을 리 없을 것이다. 소상공인을 보호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이 지사의 대의명분도 문제삼을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소비자 후생과 국가 재정을 걱정해야 하고, 부분이 아닌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 대의명분과 실리를 조화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조세연 보고서는 그런 관점에 충실한 연구자료이며, 이 지사는 소비자 후생과 정책비용(보조금 지급 등에 따른)에 대한 반박은 허술하다. 유통대기업의 골목상권 잠식을 막는 게 지상목표라면 국책연구기관으로서 제시할 수 있는 더 나은 대안은 전통시장 상품권 활성화다.

이 지사는 그냥 이런저런 정치인이 아니라 차기 대통령 후보 여론조사 1위를 기록하기도 하는 유력 대권주자다. 그의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이 지사는 “청산해야 할 적폐”라고 했는데, 이 지사의 한 마디가 학문과 연구의 독립에 독이 될 수 있다.

이 지사가 밝힌 대로 문재인 정부는 지역화폐정책을 지원하고 있다. 보고서가 그걸 비판하는 연구결과물이라면 오히려 ‘학자적인 양심’에 충실하다고 볼 것이다.

소설 얘기로 돌아가자면, 황제가 자신을 비판하는 학자의 눈을 뽑았다면, 머리카락 하나라도 건드렸다면, 영웅이 아닌 찬탈자로 악명이 남았을 것이라고, 에코는 주인공의 목소리를 빌려 얘기했다. 학자를 때려서 당장의 권위는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마음을 얻을 수는 없다. 역사적 사실을 다뤘지만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고 넘길 일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거나 분노를 야기하는 방법은 문학과 현실이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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