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 직접 파악한다는 정부…불편한 벤처업계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8월 서울 강남구 팁스타운에서 열린 'K-유니콘 프로젝트 선정 기업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중소벤처기업부

정부가 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기업을 의미하는 '유니콘 기업' 기업목록을 새로 발표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부정확한 해외 민간통계의 정확성을 보완하기 위한 절차라는 설명이지만 '2020년까지 유니콘 30개 탄생'이라는 공약달성을 위한 통계 만들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중기부는 다음달 초 국내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을 인정받는 유니콘기업 숫자와 목록을 발표할 예정이다. 통상 정부의 유니콘기업 발표는 미국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트의 집계를 활용했다. 하지만 중기부는 이번 발표에서 CB인사이트 집계 대신 국내외 벤처캐피탈 투자현황 등을 직접 파악해 결과를 내놓기로 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해외 민간시장조사 기관이 반영하지 못하는 국내 기업 소식이 많고 조사기관마다 목록도 다르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 독일계 기업에 매각됐지만 CB인사이트는 최근까지 국적을 한국으로 표기했다. 투자현황과 집계된 기업가치 업데이트도 늦어 기업·투자자가 이를 직접 제보하는 경우도 발생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가 왜 거기서 나와…"정부발표, 국제표준 아냐"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가 유니콘 기업 현황을 정리하는 것이 과도한 시장개입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스타트업·벤처기업이 주식시장 기업공개(IPO) 대신 비상장 투자시장에 남아있는 이유 중 하나는 공시 등 정보공개 의무를 피하고 기업 성장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투자상황을 실시간으로 점검한다면 부담으로 된다는 지적이다.

벤처업계 한 관계자는 "유니콘 등재가 기업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민간조사업체에 자료를 제공해 유니콘 목록에 오를 수 있다"며 "하지만 기업가치 1조원을 넘어서고도 추가 투자유치 어려움 등으로 스스로 유니콘 등재를 꺼리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업계는 국내에서도 이미 기업가치 1조원을 넘어선 기업이 3곳가량 탄생했지만 모두 유니콘 등재에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면서 "유니콘 기업의 숫자를 정부가 집계해 통계로 발표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라며 "정부가 국내 유니콘 기업 통계를 발표하더라도 해외 투자자들은 민간조사기관의 통계를 더 신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통계가 국제표준이 아닐 것이라는 지적이다.

"민주당 공약 달성 위한 발표냐"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지난1월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20총선 2호 공약발표 행사에서 '2022년까지 유니콘기업 30개 이상 육성'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달성을 위한 통계발표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1대 총선에서 2호 공약으로 '2022년까지 유니콘 기업 30개 육성'을 내걸었다. 2년 안에 유니콘기업을 20여개 추가 육성하겠다는 공약이다. 2018년 3개, 지난해 5개 등 유니콘 기업 탄생 속도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내건 공약이었지만 코로나19로 벤처시장이 주춤하면서 공약 달성에도 비상이 걸렸다. 올해는 9월까지 민간조사업체에서 인정한 신규 유니콘 기업이 단 1곳도 탄생하지 못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숫자에 집착하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숫자는 달성했지만 오히려 국민들은 성과를 체감하기 어려운 역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환경이 조성된다면 정부의 발표 없이도 정부·민간 모두 누구나 벤처강국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