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南 민간인 총격…12년 전 '박왕자씨 사건' 반복?

안영호 합참작전본부장이 24일 오전 국방부에서 서해 최북단 소연평도에서 실종된 공무원과 관련한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안 본부장은 "다양한 첩보를 정밀 분석한 결과, 북한이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우리 국민에 대해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음을 확인하였다"라고 말했다. 2020.9.24/뉴스1 © News1 이원준 기자

(서울=뉴스1) 김정근 기자 =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됐던 민간인이 북한의 총을 맞고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이 남측의 민간인을 사살한 것은 지난 2008년 금강산 관광 중 발생한 '박왕자 사건' 이후 12년 만이다.

국방부는 지난 21일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어업지도 공무원 A씨가 자진월북을 시도한 뒤 북한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24일 밝혔다.

또한 북측이 A씨의 진술을 들은 후 상부의 지시로 해상에서 원거리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 2008년 발생한 박왕자씨 피격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금강산 관광 중이었던 박씨는 산책 도중 착오로 민간인 출입금지 지역에 진입한 뒤 북측 초병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당시 북한은 "박씨가 관광객 통제구역을 지나 군 경계 지역에 진입하자 초병이 정지를 요구했고 박씨가 그에 불응한 채 도주하자 발포했다"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두 사건 모두 초병의 경계 조치에 의한 남측 민간인 사살이라는 점에선 같지만 사건 발생 상황과 후속 처리 등 세부 사항에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

12년 전 박씨의 사건은 금강산 관광이라는 남북 합의에 따른 교류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렇기에 남측은 홍양호 전 통일부 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관계부처 합동 대책반을 구성해 직접 진상조사에 나설 수 있었다.

어업지도 공무원 A씨(47)의 실종·관측 지점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그와 달리 이번 사건은 월북 추정자의 단독 행동을 북한이 자체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특이한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도 12년 전과 차이가 있다.

당국은 북한이 코로나19 유입을 막기 위해 사살 조치를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지난 7월 개성을 통해 귀향한 월북자가 코로나19 의심 증세를 보이자 국가비상체계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며 접경지 방역 지침을 강화한 바 있다. 또 월북자의 월경이 이뤄진 것에 대해 군 당국을 문책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북한이 이번 사건을 사살과 화장이라는 극단적 방식으로 대응한 것은 이 같은 사건이 나온 뒤 관련 상황에 대한 조치가 강화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북한군의 입장에서는 경계 태세와 코로나19 상황을 모두 고려해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의 오래된 관례에 따라 북한이 A씨를 해상으로 인도한 뒤 격리, 이후 우리 측과의 송환 협의에 나섰어야 할 사안을 사살과 화장이라는 과도한 조치로 대응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의 여론이 일고 있다. 국방부 역시 북한의 행위에 대해 '만행'이라는 표현을 쓰며 강도 높게 규탄하고 있다.

아울러 남측이 직접 조사를 진행하거나 북한과 공종조사를 요청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점도 과거와 다른 부분이다. 지난 6월 북한이 '대적 사업'을 진행하며 남북 간 연락선을 차단하고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함에 따라 현재 남북 대화는 단절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박왕자씨 사건 이후 우리 정부는 금강산 관광은 잠정 중단했지만 사건에 대한 자체 조사는 계속 이어갔다. 다만 현재는 코로나19와 남북 관계 단절 등으로 인해 북한과의 접촉이 막혀있는 상황이기에 북한의 적절한 대응을 이끌어 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관건은 북한이 이번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힐지 여부다. 북한 역시 이번 사건 처리에 대한 국제적 비난 여론은 충분히 인지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아울러 박왕자씨 사건의 사례처럼 남북관계에 미칠 파장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선제적으로 '유감'을 표명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다만 북한은 이번 사건에 대한 경위 파악에 나선 정부의 연락에 이날 오전까지는 아무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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