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핀' 없는 집단소송제…기업들 '꾼' 먹잇감 되나

집단소송법 비교/김현정 디자인 기자.

맥도날드 햄버거가 비만이나 심장병을 일으킨다고 맥도날드를 상대로 소송을 하는 미국 사례처럼 한국에서도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다양한 분야에서 소송이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24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오는 28일 법무부가 입법 예고하는 집단소송법 제정안이 소송당사자인 '대표소송인'의 자격을 대폭 완화해 사실상 누구든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다. 특히 이 법은 소송을 본업으로 삼는 소송대리인들의 소송 남발 방지책을 삭제해 앞으로 입법화되면 집단소송이 남발될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다.


원래 집단소송은 증권 분야에 한정해 '증권관련집단소송법'을 통해 시행해왔다. 그러나 이번에 국회 통과가 유력시되는 집단소송법 제정안은 사회 전 분야로 이 집단소송을 확대했다.

특히 이 집단소송은 사실상 누구나 제기할 수 있다. 기존 증권집단소송법 제11조 1항(대표 당사자 및 소송대리인의 요건)에는 '대표당사자는 구성원 중 해당 증권관련 집단소송으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 가장 큰 자 등 총원의 이익을 공정하고 적절하게 대표할 수 있는 구성원이어야 한다'고 규정했지만 새로 제정되는 집단소송법에는 이런 제한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소송 시 이익이 크거나 해당 문제로 피해가 가장 큰 당사자가 대표를 맡아 소송해야 한다는 조항 자체를 삭제한 것이다.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본부장은 "소송을 할 수 있는 대표성이 있어야 한다는 조항을 삭제함으로써 누구든지 작은 이해만 걸려 있더라도 모두 소송할 수 있게 됐다"며 "이 때문에 심각한 기업활동의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증권집단소송법 제11조 3항에 있던 남소 방지조항도 삭제됐다. 이 조항에는 '최근 3년간 3건 이상의 증권관련 집단소송에 대표당사자 또는 대표당사자의 소송대리인으로 관여하였던 자는 증권관련집단소송의 대표당사자 또는 원고측 소송대리인이 될 수 없다'고 명시돼 있지만 새 집단소송법에는 이런 규정도 찾아볼 수 없다.

독일의 경우 단체가 소송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하자 이를 악용해 법률대리인이 가족을 동원해 단체를 설립하고, 이 단체 명의로 집단소송을 해 이익을 벌어들이는 행위가 빈번했다. 독일은 결국 적격 소비자단체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법을 수정했다.

그러나 한국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특히 기획소송을 하는 변호사들은 물론 어떤 단체나 집단소송을 할 수 있게 해 '전문 집단소송꾼'으로 인한 집단소송이 급증할 우려가 높다.

집단소송법 제정안은 소송을 제기하는 쪽이 소송을 쉽고, 유리하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집단소송법 제42조에는 '소송 전 증거조사 절차'를 규정하고 있는데 기존 증권집단 소송에서는 없었던 제도다. 바로 원고 측이 문제를 제기하면 그와 관련된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피고 측에서 입증하도록 한 것이다. 피고가 문제를 제기한 부분의 해명자료는 원고가 모두 제출토록 의무화했다.

개인의 이익을 중시하는 미국에서 도입한 이 제도는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법과는 완전히 다른 제도다.

집단소송법에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한 것도 기업들의 걱정을 높인다. 가뜩이나 반기업 정서가 강한 한국의 실정상 집단소송이 국민참여재판으로 공개되고 사회적 관심을 받는다면 자칫 여론몰이로 흐를 수 있어서다. 이렇게 되면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집단과 기업 간 소송에서 집단의 목소리가 한결 높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실장은 "한국에서 집단소송법은 과징금과 형벌에 이어 형벌성 민사소송까지 적극 도입한다는 의미"라며 "이 법이 시행되면 기업들은 연일 소송 준비로 날을 샐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