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명분 독감백신 폐기 가능성…'제2 마스크 대란' 오나

독감백신조달 업체의 유통과정 문제로 국가 예방접종 사업이 잠정 중단된 가운데 22일 경기 수원 한국건강관리협회에 접종 중단 안내문구가 붙어있다. / 사진=수원(경기)=김휘선 기자 hwijpg@

국가예방접종용 독감백신이 유통업체의 운송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되는 사고가 발생하자 무료접종 대상자임에도 민간 의료기관에서 유료접종을 하는 시민이 늘고 있다. 코로나19(COVID-19)와 독감이 동시 유행하는 ‘트윈데믹’ 우려가 큰 상황에서 무료접종 백신에 대한 불신까지 겹치면서 ‘돈을 내고라도 미리 맞자’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문제가 된 백신의 상당수가 폐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일반인의 접종이 크게 늘면서 최악의 경우 ‘백신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 국내 백신물량 6분의1 폐기 가능성24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해 공급되는 전체 백신은 국가예방접종용 공공물량 1844만도스(dose·1도스는 1회 접종량)와 민간 의료기관에 유료로 공급되는 1120만도스 등 총 2964만도스다. 정부가 목표로 하는 전국민의 57%, 약 2950만명에 대한 접종분량이다.

유통문제가 불거진 백신은 공공물량 중 약 500만도스로 전체 17% 정도다. 앞서 방역당국은 올해 처음 조달업체로 선정된 신성제약을 통해 공공물량 1259만도스를 공급하기로 했지만 일부가 지역 운송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되면서 무료접종이 전면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정부는 2주간 품질검증을 통해 문제가 된 백신의 폐기·유통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미 ‘불량백신’ 우려가 커진 상황이라 정부가 유통을 결정하더라도 해당 백신을 맞으려는 사람이 없어 사실상 500만도스는 용도폐기가 불가피할 것이란 분석이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독감백신은 상온 25도에서 3~6개월 노출돼도 이상이 없다”며 “하지만 워낙 이슈가 되다 보니 품질에 문제가 없어도 유통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포=뉴스1) 정진욱 기자 = 국가접종용 독감 백신이 유통 과정 중 상온에 노출돼 접종 일정이 전면 중단됐다. 백신 유통을 맡은 신성약품 김진문 회장은 백신 중단 사태에 대해 사과했다. 사진은 23일 오전 경기 김포시 고촌읍에 위치한 신성약품의 모습.2020.9.23/뉴스1

◇“불량백신 어떻게 맞느냐” 유료백신 접종↑실제로 면역력이 약한 소아·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나 임산부들은 무료접종 대상임에도 ‘정부의 조사결과를 마냥 기다릴 수 없다’며 직접 비용을 지불하고 유료 백신을 맞고 있다. 일반인들도 몰리면서 병원 앞은 연일 북새통을 이룬다. 여기에는 불신감도 크게 작용했다. 정부가 “이상 없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 백신을 맞을 수 있겠느냐는 얘기다. 정치권에서도 “결과에 상관없이 전량 폐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올해 백신 수급은 여러모로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현재로선 백신의 추가 생산·수입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무료접종 물량이 부족해지면 유료 물량 1120만도스와 지방자치단체 확보 물량 60만도스, 군인 접종 물량 57만도스에서 끌어와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가 취약계층 105만명에 대한 무료접종 추가지원을 위해 민간물량을 끌어다 쓰는 것도 공공물량은 더 이상 여유분이 없기 때문이다. 전날 정부는 4차 추가경정예산에서 확보한 관련 예산 315억원을 사후정산 방식으로 집행하기로 했다. 취약계층이 민간 의료기관에서 유료 백신을 맞으면 정부가 해당 예산으로 지불하는 식이다.

미 국립보건원은 코로나19 백신 후보약품을 45명에게 시험 투여했다고 밝혔다. 약 6주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일반인 접종까지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것이라고 전망했다. / 사진=ap뉴시스

◇'코로나+독감' 트윈데믹도 변수…“접종 우선순위 재조정해야”일각에선 지난해 공공물량 접종률이 대상별로 50~80% 수준이었고 민간물량도 어느 정도 남았기 때문에 올해도 일부 유통문제는 있었지만 ‘백신대란’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변수를 감안해야 한다. 방역당국이 독감과 코로나19의 동시 유행을 막기 위해 무료접종 대상자를 500만명 추가한데다 백신 접종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매우 높아진 상황이다.

전문가들도 독감백신 접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감염병으로부터 안전을 지키려면 백신 접종이 필수”라며 “백신을 맞으면 열이 날 때 코로나19 검사만 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두 질병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백신 수급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고위험군이 아닌 올해 새로 추가된 500만명을 제외하는 등 우선순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증도 분류를 통해 코로나19 치명률을 낮췄듯 독감백신도 최악의 상황을 막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