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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봉급쟁이다 [MT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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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29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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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봉급쟁이다 [MT시평]
가을이다. 달포 넘게 장마가 괴롭히더니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뭉실뭉실한 전형적인 가을이다. 이런 날엔 운동하기도 좋고 놀기도 좋고 공부하기도 좋다. 그러나 무엇보다 책 읽기에 안성맞춤이다. 책 읽는 계절이 따로 있으랴 만은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그냥 생긴 건 아닌 듯싶다.
 
중국 동진 시대 유명한 시인 도연명은 ‘개권유득’(開卷有得)이라 하여 “책을 펼쳐 읽음으로서 얻는 게 많다”고 했다. 그런 천하의 도연명도 먹고사는 문제는 그리 녹록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이 마흔에 느지막이 말단 벼슬을 겨우 얻었는데, 자기보다 나이 어린 향리가 시찰을 나오자 “내 어찌 다섯 말의 쌀(五斗米) 때문에 허리를 꺾고 살겠는가”라며 사직했다. 하지만 ‘귀거래사’처럼 자연으로 돌아가길 꿈꾸는 도연명이라면 몰라도 녹봉을 포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직장인을 ‘봉급쟁이’라고 부른다. 급여를 소득으로 생활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봉급(俸給)의 역사는 인류와 같이 해왔다. 누군가에게 노동 등 용역을 제공한 후 대가로 받는 것이 봉급이다. 봉(俸)은 녹봉(祿俸)을 의미한다. 그럼 녹(祿)은 무엇인가. 원래는 ‘제사에 쓰이는 고기’(祭肉)라는 뜻이다. 즉 ‘제사를 지내는 봉사를 하여 신(神)이 나에게 내려주신 선물’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녹은 선물, 행복, 복을 내린다는 뜻이었는데 이후 신이 아니라 나라님으로 바뀌었고 고기가 아닌 쌀, 돈 등으로 녹봉을 주게 되었다.
 
나는 봉급쟁이이다. 아무리 직함이 사장이라도 주군(主君)에게 충성하고 그 대가로 녹봉을 받는 봉급쟁이인 것이다. 그럼 기업의 주인은 누구일까. 당연히 주주(Share holder·셰어홀더)가 법적 주인이며 과거엔 주주가치를 높이는 경영이 지상 최대 목표였다. 그러나 이제는 주주뿐 아니라 기업활동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는 채권자, 고객, 정부, 민간단체 등과 같은 이해관계자(Stake holder·스테이크홀더)까지 모두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되었다. 사실상 주주가치 우선주의에서 스테이크홀더 경영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래서 지속가능경영을 위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경영이나 SRI(사회적 책임투자)에 대한 관심과 중요도가 더욱 커진 것이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투자이익만을 목적으로 단기투자(1~2년 이내)를 하는 주주의 비율이 크게 높아지면서 이들을 과연 책임 있는 주인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됐다. 실제 지난 9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주주제안’을 할 수 있는 주주들의 주식보유 요건을 현재 1년간 2000달러에서 2만5000달러로 10배 이상 강화하기도 했다.
 
봉급쟁이의 기본은 충성도(Royalty)다. 녹봉의 어원이 그렇듯이 자신의 주군이 누구인지 명확히 알고 충성해야 한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1인 대주주 혹은 그의 가족을 주인으로 모시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이익의 우선순위도 확실해야 한다. 특히 금융회사의 경우 고객 이익이 최우선이다. 다음이 회사 이익, 마지막이 본인 이익이다. 이 순서가 뒤바뀌는 것을 우리는 ‘모럴해저드’(Moral hazard)라고 한다. 그래서 봉급쟁이는 주군이 누군지 또는 이익의 우선순위가 헷갈린다면 녹봉을 받을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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