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참 별나다"…추석 때마다 핀잔 듣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밥상

비건 음식으로 차린 추석 제사상./사진=유튜브 채널 '비건먼지'

"이번 추석엔 고기 뺀 산적, 송편, 나물 등으로 '비건' 밥상을 차려볼까 해요"

고기와 생선, 달걀, 우유도 먹지 않는 채식주의 '비건' 2년 차 A씨(20)는 이번 추석엔 가족과 함께 나눌 비건 음식을 준비해보려 한다.


육식을 지양하고 채식을 지향하는 채식주의자들에겐 가족들과 함께 모여 고기가 주로 나오는 식사를 하는 추석이나 설과 같은 명절이 고통스러운 자리였지만 함께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고기 없는 산적과 잡채…계란 물 뺀 고구마전이면 '충분'

비건 잡채는 평소 만드는 잡채를 방식과 매우 유사하지만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다./사진=유튜브 채널 '비건먼지'

온 가족이 모여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 명절엔 고기를 사용한 음식들이 많다. 과거 고기가 귀했던 시절, 특별한 날 먹는 귀한 음식들을 대접하는 의미여서다. 추석에 주로 먹는 소갈비찜, 동그랑땡, 산적, 잡채, 소고기뭇국 등이 이에 해당한다.

A씨는 "재료 중 고기만 빼도 훌륭한 채식 식단이 된다"며 "필요 없는 육식을 줄이고 칼로리 걱정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A씨가 준비하는 비건 추석 음식은 계란 물을 입히지 않은 고구마전·버섯전·호박전·가지전 등이다.

비건 전문 유튜브 채널 '비건먼지'도 비건 추석 음식 레시피를 공유하며 이에 동참했다. 이들은 채수(채소육수)팩이나 쌀뜨물을 활용해 육수를 낸 탕국,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잡채와 산적, 나물, 두부로 만든 동그랑땡인 '두부랑땡' 등을 만들었다.


비건먼지 측은 "추석음식을 비건으로 만드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며 "비건인 가족이 있는 논비건 분들도 레시피를 알게 된다면 충분히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 준비를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비건 추석 음식 제작 과정을 영상으로 공개한 이유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비건이기 때문에 명절을 친척들과 보내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화기애애하고 행복한 비건들의 추석을 상상해보고 실현해보고 싶어 비건끼리 추석 상을 차려보고 맛있게 먹는 시간을 보내봤다"고 밝혔다.
고기 들어간 사실 숨기고…"거봐, 맛있잖아"

C씨가 지난해 추석 비건 친구와 함께한 비건 추석 상차림. 고기를 뺀 잡채와 나물, 전을 준비했다./사진제공=트위터 @dripping_bik

비건먼지 측의 말처럼 여전히 채식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귀향 자체를 꺼린다는 의견도 많았다. 채식 1년 차 B씨(22)는 "지난 설과 추석엔 시골에 내려가지 않고 채식주의자 친구들과 만나 간단히 식사했다"며 "친척들의 잔소리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B씨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가족을 포함한 친척으로부터 채식을 인정받지 못한다"며 "'그냥 이거 한 번만 먹어봐'라고 말하는 건 물론이고, 고기가 들어간 사실을 숨기고 '거봐, 고기 들어갔는데 맛있지?'라고 말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비건먼지 측도 "채식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분들과 겸상하는 과정에선 늘 불편한 일이 발생한다"며 "가족과의 식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고 털어놨다.

채식주의를 실천 중인 C씨는 비건 추석 음식을 준비한 경험이 있다. 그는 "지난해 해외 유학생활 중이었는데 비건이었던 한국인 친구와 간단히 추석을 기념하고 싶어 비건 잡채와 나물, 전을 간단히 준비했다"며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맛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오히려 한식만의 담백한 맛을 잘 느낄 수 있었다. 명절 음식 특유의 기름지고 더부룩함이 없어 오히려 좋았다"고 전했다.

한국채식연합이 추정하는 국내 최식 인구는 2008년 10만명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150만명까지 급증했다. 패스트푸드 점에서도 고기를 사용하지 않는 대체육을 넣은 음식을 판매하고, 편의점에서도 비건 음식을 쉽게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채식 인구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A씨는 "채식이라고 해서 별나거나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고기를 아예 먹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반찬도 한두 가지 준비하면 다 같이 둘러 앉아 밥을 먹을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