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SK '배터리 소송전' 극적 합의 힘든 3가지 이유

"잘못의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 재발 방지 및 적절한 보상 방안을 내놔야 하지 않나요"(LG화학 관계자)

"구체적으로 어떤 영업비밀 침해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피해 규모가 얼마인지 따져보는 것이 우선입니다"(SK이노베이션 관계자)


추석 연휴 이후에도 LG화학 (373,000원 ▼8,500 -2.23%)과 SK이노베이션 (107,500원 ▼2,500 -2.27%)의 배터리 소송전을 둘러싼 이견은 좁혀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영업비밀 침해소송에 대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 판결이 10월5일에서 10월26일로 3주 늦춰졌지만 양사의 첨예한 입장차는 '극적 합의'를 기대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1. '영업비밀 침해' 둘러싼 입장차 뚜렷


판결이 나오기 전 합의가 이처럼 쉽지 않은 이유는 이 갈등의 시초인 '영업비밀 침해'를 바라보는 양사의 시각차가 워낙 엇갈리기 때문이다.

LG화학은 △2017년부터 2년간 배터리 연구·생산 전분야에서 100여명의 핵심 인력이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한 점 △이들의 채용 과정에서 LG화학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 등을 기술토록 한 점 △SK이노베이션의 수주 규모가 단기간 급증한 점 등을 영업비밀 침해 근거로 들었다.

특히 ITC가 지난 2월 LG화학에 예비승소 판정을 내리면서 자신들의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은 영업비밀 침해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LG화학 직원들의 자발적 이직을 막을 명분은 없고, 경력직 채용시 통상의 역량 검증 과정을 충분히 거쳤다는 것이다.

글로벌 수주도 고객사의 자체 판단으로 이뤄진 것이고 포드는 직접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경쟁력을 뒷받침해주는 의견서를 ITC에 제출하기도 했다.

ITC 예비판결 역시 증거훼손 등 절차적 문제에만 집중해 내린 결론일 뿐 정작 어떤 영업비밀이 침해됐고, 이 침해를 통해 부당하게 확보한 매출 규모가 얼마인지 세세하게 따져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는 것이 SK이노베이션의 주장이다. 수 천억원이든, 수 조원이든 금액을 물어내려면 앞선 문제들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단 뜻이다.

◇2. 벼랑끝으로 달리는 양사…중재자가 없다

양사 갈등을 조정할 중재자가 마땅치 않다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9월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대표가 서울 모처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중재로 회동했지만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한 채 헤어졌다.

대표급에서 타협안을 계속 찾지 못한다면 양사의 대표 이상급 상대가 나서야 해결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나 양측 그룹은 "개별 기업의 일"이라거나 "계열사 일"이라며 개입에 선을 긋고 있다.

특히 LG화학은 "이번 소송의 본질은 세계시장에서 정당한 방법으로 경쟁하고 오랜 연구와 막대한 투자로 확보한 기술 지식재산권을 보호하는데 있다"며 정부나 제3자 개입을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 미래 생존 걸린 배터리…물러서면 죽는다?

무엇보다 이번 싸움이 양사 모두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전기차 배터리, 즉 미래 성장이 걸린 문제라는 점에서 더 양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LG화학은 올해 2분기 실적발표에서 전기차 배터리가 포함된 전지 부분의 사상최대 실적 기록을 밝혔다. 매출액 2조8230억원, 영업이익 1555억원이었다.

무엇보다 자동차 전지가 6개 분기만에 흑자를 달성했는데 이후 흑자 구도를 이어갈 것이란 점이 고무적이다.

실적에 기댄 LG화학은 내친 김에 지난 17일 이사회를 열어 전지사업부 물적분할을 결정했다. 향후 상장을 통한 투자자금 조달이 기대됐다. SK이노베이션과의 소송도 신설법인으로 이전되면서 LG에너지솔루션(신설법인 가칭)으로서는 출범과 동시에 원만히 매듭지어야 할 숙제를 안은 셈이다.

SK이노베이션도 신사업 육성이 시급한 것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 기준 매출액 49조8765억원, 영업이익 1조2693억원을 올린 국내 굴지의 정유기업이지만 '탈석유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현재와 같은 매출 규모나 수익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수 조원을 들여 미국, 헝가리, 중국 등에 공장을 짓고 있는 이유다.

재계 한 관계자는 "오랜 시간 다툼으로 양사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며 "ITC 판결 이전에 극적 합의는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