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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상법개정안 공정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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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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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06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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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상법개정안 공정하지 못하다
필자의 연구실적 목록에는 모스크바에서 출간된 러시아어 공저서가 한 권 있다. 오래전 러시아 정부가 국제연구팀에 러시아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방안의 연구를 의뢰한 용역보고서다. 연구팀은 필자 외에 모두 미국과 유럽 교수였다. 당시 러시아 정부가 보기에 기업지배구조 선진국들이다. 코리아 출신인 필자가 포함된 이유는 연구팀 생각에 한국이 기업지배구조 측면에서 짧은 시간에 많은 제도개선을 이룬 나라였기 때문이다.
 
지금 국회에 또 하나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안이 올라가 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다중주주대표소송제를 포함한다. 재계와 경제단체들은 상법이 개정되면 해외 투기자본에 우리 기업들을 다 내주게 된다고 반대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투기자본이 우리 기업을 다 집어삼킬 것”이라는 식의 우려는 이제 고장 난 녹음기 같다. ‘기업 사냥꾼’으로 불린 투기자본은 멸종되다시피 했고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주인공인 시대다. 행동주의 펀드는 유수 기관투자자들의 지지를 받고 행보를 같이한다. 이제 경영능력이 되고 주주들의 신뢰를 받으면 지분이 적어도 그들이 나를 공격하지 못하지만 능력이 안 되면 아무리 지분이 많아도 당해내지 못한다. 제도는 기업을 힘들게 해서도 안 되지만 실력 없이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게 해서도 안 된다.
 
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개정법이 발효되면 시가총액 30대 기업 이사회 중 29곳에 ‘글로벌 기관투자자연합’이 감사위원을 진출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글로벌 기관투자자연합’이라는 것은 실체 없는 가상이다. 기관 모두가 헤지펀드에 동조하고 해당 기업 모두 대주주 전횡으로 실적이 부진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기관들이 주식을 팔고 떠나지 않은 채 수고스럽게 지배구조에 개입한다는 시나리오다. 기관 모두 그 지경이 될 때까지 경영진과 소통도 못 했다는 비현실적 설정이기도 하다.
 
감사위원 선임에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한다는 개정안에 대해서는 투기자본의 위험성을 강조하기 보다 사유재산 보호가 헌법의 원칙이고 주식평등의 원칙이 상법의 대원칙인 나라에서 첫째, 기업의 성패에 가장 큰 이해관계를 가지고, 둘째, 가장 많은 재산적 위험을 부담하면서, 셋째, 회사의 자본적 기초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대주주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배구조에 대한 비례적 이익을 제한받는 것이 공정한지를 물어야 한다. 보편성이 핵심인 공정성 이념은 누구에게도 예외없이 적용돼야 한다. 그런 취지로 필자는 개정안의 대주주 의결권 제한에 반대한다.
 
감사위원회는 감사제도에서 출발한다. 서구에는 없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감사가 제 기능을 못해 위원회인 감사위원회로 진화했다. 즉, 감사위원은 종래의 감사와 같은 권한을 가진다. 지금까지 그 위력을 실감하지 못한 이유는 감사위원도 사외이사이기 때문에 주로 대주주가 선임해서다. 개정안대로 소수주주가 감사위원을 선출한다는 것은 소수주주가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새 제도가 한국에 도입된다는 의미다. 감사 선임에 적용되는 3% 기준이 별도 실증적 근거 없이 사외이사 선임에 적용된다. 차라리 자본시장법의 주요주주 기준인 10%가 더 설득력 있었을 것이다.

결과는 소수주주 보호가 아니라 일부 소수주주의 권력화일 것이다. 기업지배구조의 정치화도 촉진할 것이다. 한국이 아무리 기업지배구조 관련 첨단제도를 다 선보여 러시아가 한 수 배우기까지 했지만 개정안은 공정하지 못하다. 상법의 목표는 첨단 지배구조제도의 완비가 아니라 현실에서 가장 성공하고 윤리적인 기업의 탄생을 지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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