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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표준 등재 기쁨도 잠시…어느새 등 뒤에 선 中 "비켜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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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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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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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크 그래핀' 특성평가법 세계 첫 표준 선점한 기초과학지원연 이하진 서울서부센터장(책임연구원)·성균관대 에너지과학과 정문석 부교수 인터뷰

(왼쪽부터)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이하진 서울서부센터장(책임연구원), 성균관대학교 에너지과학과 정문석 부교수/사진=이기범 기자
(왼쪽부터)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이하진 서울서부센터장(책임연구원), 성균관대학교 에너지과학과 정문석 부교수/사진=이기범 기자

'표준의 힘’, 기술 생존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가공할 위력을 지닌다. ‘블루레이냐, HD DVD냐’. 30년 전 VHS 표준 전쟁을 방불케 한 차세대 DVD 표준을 놓고 소니 진영(블루레이)과 도시바 진영(HD DVD)이 격돌했다. HD DVD는 블루레이보다 저장 용량은 적지만, 기존 DVD 플레이어와 호환 가능하고 가격도 저렴한 데다 기존 DVD 생산 설비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이점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표준 전쟁에서 밀린 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때의 교훈들은 오늘날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코로나19(COVID-19), 미·중간 무역 갈등으로 전 세계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가중된 ‘위기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최근 낭보가 전해졌다. 중국 등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제안한 ‘플레이크(분말형) 그래핀 특성평가법’이 세계 최초로 국제표준에 채택된 것.

‘꿈의 신소재’, ‘기적의 물질’로 불리는 그래핀은 벌집 모양의 평면구조로 결합한 탄소(C)로 이뤄진 나노물질이다. 강철보다 200배 강하고, 열 전도도는 다이아몬드의 2배 이상, 전기전도도는 구리보다 약 100배 이상 높다. 축구장 전체를 덮으려면 3.2g의 그래핀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같은 특성 덕에 화려한 수식어구가 따라붙는다. 특히 플레이크 그래핀은 실리콘, 구리 등을 대체해 배터리 전극 코팅, 수처리필터, 방열재료, 초경량 복합소재 등에 활용할 수 있어 가장 ‘핫’한 고부가가치 소재로 통한다. 그동안 산업적 활용을 지원하기 위한 표준화된 측정법이 개발되지 못해 관련 업계가 시장진출에 어려움을 겪어 왔지만, 이번 세계 표준 제정으로 활로를 찾게 됐다는 평가다.

이번 표준 제정을 이끈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이하진 서울서부센터장(책임연구원, 이하 이), 성균관대학교 에너지과학과 정문석 부교수(이하 정)를 기초과학지원연 서울서부센터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소부장 사태를 단지 일본 기술력에 비해 떨어지는 일부 품목을 국산화하는 데에 머무를게 아니라, 우리가 더 잘 하는 미래 첨단 소재 분야에 적극 투자해 초격차를 이룰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표준에 등재된 기술은 무엇인가.
이=플레이크 그래핀의 전기적 특성 평가법으로 5년여 노력 끝에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에서 국제표준으로 최종 결정됐다. 시료준비 과정부터 측정방법, 표준화된 데이터 처리법까지 소재의 특성평가에 필요한 모든 단계를 표준화한 것이다. 산업적 활용을 보다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플레이크 그래핀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2010년 그래핀 발견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이후 국내에서도 그래핀 관련 연구과제가 부쩍 늘었다. 삼성도 CVD(Chemical Vapor Depositon, 화학기상증착법)으로 성장시킨 합성 그래핀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고 투자도 해왔다. 문제는 CVD 그래핀이 전자소재 쪽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대량생산에 한계를 보였다는 거다 . 반면 플레이크 그래핀은 복합소재에 첨가제로 쓸 수 있다. 강도와 탄성, 인장강도 등의 기계적 물성 향상 뿐만 아니라 열전도율, 전기 전도율도 향상 가능해 업계에선 스마트소재로 통한다.

정=플레이크 그래핀은 원하는 면적으로 합성할 수 있고 대량생산도 가능해 활용범위가 넓다. 예컨대 깃털처럼 가벼운 비행기, 잠깐의 충전으로 1000km를 달리는 전기차, 한번 충전으로 3~4일 쓰는 스마트폰 배터리, 바닷물을 식수로 정화할 수 있는 필터 등을 들 수 있다. 또 최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정화할 필터를 그래핀으로 제작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들었다.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과도 연관돼 있다. 이를테면 풍력발전기 대형 날개를 플레이크 그래핀으로 만들면 훨씬 가벼워져 적은 바람으로 더 많은 친환경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이하진 서울서부센터장(책임연구원)/사진=이기범 기자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이하진 서울서부센터장(책임연구원)/사진=이기범 기자
-표준안 채택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이=전기전도도에서 필름 형태인 CVD 그래핀은 측정 표준이 이미 많이 나왔지만, 분말 형태인 플레이크 그래핀은 이번 표준안이 제안된 2015년 이래 본격화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CVD 그래핀만큼의 정확도와 신뢰성 가진 측정값 데이터를 쌓아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경쟁국에선 활용 장비의 세부 스펙과 세팅법 하나하나를 끊임없이 걸고 넘어지며 우리가 만든 장비로 얻은 측정값을 믿을 수 없다고 견제했다.

-그 정도로 치열한가.
정=기술 표준을 제안할 때 어떤 나라에선 변호사를 대동할 정도다. 표준으로 규제를 높여버리면 특정 기업만 만들 수 있게 된다. 어떤 나라든 마찬가지겠지만 표준은 자국에 매우 유리하게 만들지 않나. 2015년에 중국 학회를 갔는데 중국 과학자들이 우리와 표준 연구를 함께 하고 싶다고 제안해 왔다. 그러면서 제게 60개의 표준안을 보여준 적 있다. 중국은 정부의 거대한 투자를 등에 업고 지금 유럽 등 서양과 손을 맞잡으며 세력권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그러면 많은 투표수를 확보하게 돼 중국 기술이 곧 표준인 세상이 올 수 있다. 중국이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에 제시한 표준안만 보더라도 전체의 30~40% 가량 된다. 우리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투자가 절실하다.

이=그래핀 국제표준화가 막 시작됐던 2014년에는 우리나라가 가장 먼저 4종의 그래핀 평가 관련 국제표준안을 제안하고 국제표준화를 추진하면서 그래핀 국제표준화를 선도했는데 지금은 중국에 맹추격을 당하고 있다. 중국은 특히 그래핀을 만들 지하 광물자원이 풍부하다 보니 더 유리한 측면이 있다.

-중국을 따돌리기 위해 남북간 협력을 강조하셨다.
정=플레이크 그래핀의 경우 원소재는 비늘 모양의 은회색을 갖는 인상흑연이다. 우리나라에선 토상흑연이 난다. 결정성이 낮고 품질이 낮아 갈탄으로 밖에 쓸 수 없다. 중국엔 인상흑연이 풍부하고 우리도 수입해 쓴다. 만약 일본처럼 수출규제하면 또한번 일본 소부장 사태의 시련을 겪어야 할 것이다. 해결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북한에 인상흑연이 풍부하다. 북한 정촌 흑연광산에만 인상흑연 광석 625만 톤(t)이 매장돼 있고 이중 순수 인상흑연은 34만6000톤으로 추정된다. 만약 중국에서 규제를 걸면 북한 자원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이미 플레이크 그래핀을 만들어 중국에 팔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북한과 협력하면 굉장한 시너지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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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에너지과학과 정문석 부교수/사진=이기범
성균관대학교 에너지과학과 정문석 부교수/사진=이기범
일부에서 그래핀은 오래 했는데 아직 성과가 안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정=기초과학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성과가 하나둘 나오고 있다. 배터리 분야에서 응용연구가 활발하다. 탄소 소재 가운데 탄소섬유와 탄소나노튜브는 일본이 가장 앞서나가고 있고, 우리가 선도할 수 있는 건 그래핀 밖에 없다. 그래핀 성질에 대한 연구로 세계적 권위를 갖고 있는 김필립 하버드대 교수가 노벨상 문턱까지 갔었고, 그래핀 표준안으로 접수한 1~3호 등 상위권 제안은 대부분 국내 과학자들이 한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지속적 투자가 있었기에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제 축적된 기초기술을 기반으로 상업화라는 새로운 페이지로 넘어가야 할 때다. 이미 유럽연합(EU) 17개국 60여 개 기관은 향후 10년간 그래핀 상용화에 10억유로(약 1조3400억원)를 투입하는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현재 그래핀 연구 비중은 플레이크 그래핀이 7, CVD 그래핀이 3 정도다. 한국은 플레이크 분야 ‘리딩그룹’에 속한다. 일례로 국내 대표기업으로 꼽히는 ㈜스탠다드그래핀은 세계 기업들과 어깨를 견줄 정도다.

-상업화를 위한 선결 과제는.
정=2017년 그래핀 정의에 대한 표준이 나오기 전에 가짜 그래핀이 많았다. 정부가 중견·중소기업의 의뢰를 받아 그래핀을 분석해 신뢰성을 인증해주는 이른바 ‘나노소재분석인증기관’을 새롭게 마련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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