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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입찰의 덫[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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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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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제약업계는 ‘1원 낙찰’ 관행으로 몸살을 앓았다. 제약사와 도매상들이 병원의 의약품 입찰을 따내기 위해 경쟁적으로 입찰가 1원을 써내는 과열양상이 벌어졌다. 보험약가가 한 알에 2만5000원 넘는 약을 1원에 납품하는 경우도 있었다.

비정상적 입찰경쟁이 벌어진 것은 병원 중심의 의약품 시장구조 때문이다. 의약품 처방시장은 병원이 입원환자에게 처방하는 ‘원내처방’과 외래환자에게 처방하는 ‘원외처방’으로 나뉜다. 시장규모는 원외처방이 14조7488억원(2019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기준)으로 원내처방(6조7997억)보다 2배 이상 크다.

제약사와 도매상들이 원외처방 시장에서 약을 팔기 위해서는 병원에 약을 납품해야 한다. 병원이 원내·원외처방 시 동일한 품목코드를 사용해서다. 그만큼 입찰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부분의 병원은 단순히 가장 낮은 입찰가를 제시한 업체를 선정하는 ‘최저가 낙찰제’를 운영했다. 제약사와 도매상들은 병원에 약을 사실상 공짜로 내주는 대신 원외처방 시장에서 외래환자들에게 상한선에 파는 식으로 수지를 맞췄다.

여기에 당시 정부가 보험약가 인하를 위해 도입한 시장형 실거래가제도는 초저가 입찰경쟁에 불을 질렀다. 병원이 보험약가보다 약을 싸게 구매할 경우 차액의 70%를 인센티브로 돌려주는 제도다. 약을 싸게 구매할수록 인센티브가 커지는 구조로 병원의 단가 후려치기를 부추기는 요인이 됐다.

시장을 뒤흔든 이 제도는 도입 3년여 만에 폐지됐지만 후유증이 컸다. 실질적인 가격경쟁은 사라지고 유통질서가 무너지면서 결국 외래환자들의 약값 부담만 키우는 부작용을 양산했다. 지금은 적격심사제 도입 확대 등 업계의 자정 노력으로 ‘1원 낙찰’ 관행은 거의 사라졌지만 아직도 저가입찰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벌어진 사상 초유의 독감백신 예방접종 중단 사태도 정부의 저가입찰이 부른 예견된 사태였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올해 독감백신을 3가보다 비싼 4가 백신으로 바꾸고 대상자도 크게 늘리는 과정에서 기존처럼 저가입찰을 고집한 게 단초가 됐다는 것이다.

현재 국가 백신 입찰은 정부가 제시한 조달가격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유통사에 우선순위를 주는 경쟁입찰 방식이다. 지나친 가격경쟁을 막기 위해 낙찰하한율(약 80%)을 뒀지만 애초 정부의 조달가격이 터무니없이 낮았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실제 질병관리청과 조달청이 이번 4가 백신 입찰에서 제시한 조달가격은 1도스(1도스는 1회 접종분)당 8790원이다. 제약사가 일선 병원에 판매하는 4가 백신 가격이 1만6000~1만7000원임을 감안하면 절반 수준이다. 정부의 백신 조달가격이 시장가의 절반 수준에 정해지면서 입찰은 4차례나 유찰됐고 결국 접종을 한 달 앞둔 지난 8월에야 백신 조달·유통 경험이 전무한 신성약품이 낙찰받았다.

한 백신업계 관계자는 “오랫동안 백신시장을 봐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백신 유통사가 입찰을 따내려면 제약사와 협의해 계약물량을 확보해야 하는데 가격이 너무 낮다 보니 물량확보에 실패하면서 지연된 것”이라고 했다. 저가입찰과 이에 따른 유찰반복, 초보업체 선정, 촉박한 일정, 사후관리 미흡 등이 겹치면서 유통과정에서 백신이 상온에 노출되는 어이없는 사고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정부의 부실한 관리·감독도 사태를 키우는데 한몫했다. 질병청은 지난 22일 백신 예방접종 중단을 발표하면서 “문제가 된 백신 접종자는 없다”고 했지만 3000명 넘는 사람이 접종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접종을 중단한 후에도 접종자가 계속 나타났지만 질병청은 이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해 불신을 키웠다.

대기업의 단가 후려치기 못지않게 공공조달시장의 저가입찰 문제도 근본적으로 고칠 필요가 있다. 국민 혈세인 만큼 퍼주기가 돼선 안 되지만 무조건 쥐어짜는 방식도 지양해야 한다. 특히 의약품 등 국민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는 보건의료는 예산절감보다 안전과 안정에 중점을 두고 조달방안을 세워야 한다. 그렇게 세금이 조금 더 들어간다고 해서 뭐라고 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저가입찰의 덫[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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