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재밌고 창조적인 서사로 승부” 문학잡지 ‘에픽’ 탄생 배경

지난 14일 열린 계간 문예지 '에픽' 창간 기념 기자간담회. 왼쪽부터 문지혁 소설가, 차경희 고요서사 대표, 임현 소설가, 정지향 소설가. /사진=뉴스1

올 컬러로 디자인된 참고서 분량 크기의 독특한 문예지가 만들어졌다. 도서출판 다산북스가 내놓은 계간 문예지 ‘에픽’이다.

모든 콘텐츠는 글보다 영상으로 통하는 시대에, 그중에서도 글은 ‘온라인’으로 더 먹히는 시대에 역발상처럼 다가온 문예지라서 ‘파격적’이다. 장문의 글은 여러 섹션에서 새로운 실험과 주제로 감각된다.


때론 감동으로 다가왔다가 픽션 같은 재미를 안고 금세 사라진 뒤 현실 자각과 꿈 어디 사이에서 마침표를 찍기도 한다. 지금까지 나온 문예지 중 가장 많은 공과 돈을 들인 듯한 흔적도 역력했다.

소설가 문지혁, 임현, 정지향과 차경희 고요서사 서점 대표가 참가한 편집 위원 4명의 면면은 젊고 역동적이고 시대를 앞선다.

최근 창간 기자간담회에서 이들은 “문예지가 많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상황에서 발견하지 못한 하나의 자리가 ‘서사’였다”며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잡지의 기틀을 잡았고 허구와 진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 대해 공부했다”고 말했다.


‘에픽’(epiic)은 그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는 서사 중심의 새로운 문학잡지가 그 정체성인 셈. 서사를 워낙 강조하다 보니, 에픽(epic)이라는 기존 서사의 뜻에 ‘i’를 추가해 나(i)와 다른 나(i)의 만남이 서사라는 좀 더 분명한 뜻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이 잡지가 내세우는 서사는 한마디로 ‘내러티브’처럼 살아있는 형식을 좇되, 논픽션을 더 ‘재미있게’ 다듬는 구조로서의 이야기다.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서사 구조로 긴 호흡에도 독자의 마음을 쉽게 빼앗은 것처럼, 이 잡지의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논픽션’이라는 구조로 이야기의 창조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기존 순문학 잡지의 근엄성에서 벗어나 논픽션과 픽션 사이, 순수문학과 장르문학 사이의 장벽을 허물어 르포르타주, 메모어, 구슬록 같은 세부 장르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핵심이다.

창간호 제호는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다. 18세기 프랑스 소설가 드니 디드로의 소설 제목에서 따왔는데, 그 배경은 영국의 소설가 J.G.밸러드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거대한 소설 속에서 살고 있다. 특히 작가에게서 소설의 허구적 내용을 만들어내는 것은 점점 더 불필요해졌다. 소설은 이미 거기에 있다. 작가의 임무는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허구보다 더 허구 같은 진실의 드라마가 현실에 있는데 작가가 외면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애써 머리 써서 무엇을 만들지 말고, 있는 현실을 더 극적으로 재미있게 잘 짜보라는 시대적 주문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임혁 작가는 “문학을 전통적 문법으로 읽었던 독자들이 ‘논픽션 서사’를 문학으로 읽을 수 있을까가 고민이었다”며 “결국 독자들이 함께 참여하고 읽을 때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차경희 대표는 ‘서사의 백화점식 나열’ 우려에 대해 “하나의 글마다 완결성을 고민했고 서사가 거기에서 닫히는 것이 아니라 각 작품이 연결되는 지점을 고민하며 만들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