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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내차례 인가” 두렵지만 멈출 수 없는 택배기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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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산(충남)=이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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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2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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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기획]택배死, 더 이상 안된다①

22일 오후 7시쯤 충남 서산시 모처에서 배송 업무를 하고 있는 택배기사 박모씨(35)./사진=이강준 기자
22일 오후 7시쯤 충남 서산시 모처에서 배송 업무를 하고 있는 택배기사 박모씨(35)./사진=이강준 기자

"2,700,000,000(27억)"

지난해 택배기사들이 배송한 택배 건수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 1인당 연 택배이용횟수는 53.8회에 달한다.

택배기사의 초인적인 발품이 있었기에 가능한 수치였다. 올해에만 기사 13명이 과로로 숨졌다. 기사들은 과로를 유발하는 환경이 변하지 않는 한 '죽음의 행렬'이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택배기사 박모씨(35)도 동료들의 과로사를 보고 '다음엔 내 차례인가?'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고 한다. 충청남도 서산 모처에서 택배기사로 5년째 주6일 하루 14시간씩 일하고 있는 그는 최근 알 수 없는 가슴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22일 오전 7시 서산의 한 서브 터미널(택배 분류장)에서 만난 박씨는 "끼니 챙길 시간도 없는데 병원을 다녀오는 건 사치"라고 털어놨다. 갓 100일을 넘긴 첫째 아이가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그의 몸은 나빠지고 있었다.



오전 6시 40분에 일과 시작…6시간 넘는 분류작업에 체력은 이미 바닥


“다음엔 내차례 인가” 두렵지만 멈출 수 없는 택배기사들

박씨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6시에 기상해 6시 40분에 서브 터미널에 도착한다. 오전 7시 출근이지만 요즘 같이 기온이 떨어지는 날에는 '휠소터(Wheel Sorter·택배 자동 분류기)'를 예열시켜주지 않으면 고장이 잦은 탓이다.

아침 7시에 곤지암, 옥천 등 허브 터미널에서 택배 물량들이 도착하면 80여명의 택배기사들이 힘들기로 악명높은 분류작업을 시작한다. 박씨는 "하루 10의 체력을 쓴다고하면 6 이상을 분류작업에 쓴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국회사진기자단 = 21일 서울 서초구 CJ대한통운 강남2지사 터미널 택배분류 작업장에서 택배기사들이 택배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2020.10.21.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국회사진기자단 = 21일 서울 서초구 CJ대한통운 강남2지사 터미널 택배분류 작업장에서 택배기사들이 택배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2020.10.21. photo@newsis.com

분류작업은 택배기사 과로의 주 원인으로 꼽힌다. 휠소터가 각 기사들의 택배차가 주차돼있는 도크(Dock) 앞으로 물건을 보내주기는 하지만, 이를 배송순서대로 '최적화'해서 차로 옮기는 건 전부 택배기사들 몫이다. 이 작업만 6시간 넘게 서서 진행해야 한다.

휠소터의 '오분류'도 문제다. 기기가 배송지를 인식하지 못하면 해당 물건을 레일 끝으로 보내는데, 레일을 역으로 돌려서 기사들이 눈으로 보고 수작업으로 다시 분류해야 한다. 기사들은 이를 '백작업'이라 부르는데 한 번 할 때마다 1시간 이상 소요된다.

분류작업은 보통 오후 2시까지 이어진다. 게다가 박씨의 경우 물량에 비해 도크의 적재공간이 모자라 다른 기사와 공유해서 쓰고 있어 분류작업과 배송을 두 번 나가는 '2회전' 근무를 선다. 한 번에 할 걸 나눠서 해야하니 체력이 두 배로 든다.



엘리베이터가 있어도 '주민 눈총' 피하기 위해…"계단에서 뛴다"


박씨는 이날 오전 9시 30분에 첫 배송을 나갔다. 오전 시간대가 가장 '마음이 불편한' 시간대라고 한다. 젊은 부부들이 모여사는 아파트 단지가 박씨 담당인데, 아이들 등원 시간대와 겹쳐 여러층을 거치며 엘리베이터 이용시 부모님들의 '따가운 눈총'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박씨는 독특한 방법을 고안해냈다. 엘리베이터 이동 속도에 맞춰 계단으로 뛰며 배송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4층부터 10층까지 배송지가 있으면 14층에서부터 미리 택배를 들고 나와서 10층까지 계단으로 뛰어 내려가면서 배송하는 방식이다.

차라리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지역은 페이스를 조절해가며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어 마음은 편하다. 박씨는 "주민분들한테 죄송해서 최대한 엘리베이터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박씨는 배송 중에는 절대 걷지 않는다. 걷는 시간도 아까워 무조건 뛰어다닌다. 점심식사도 편의점 김밥 한 줄로 운전 중에 해결한다. 배송도 해가 떠있을 때 최대한 많이 해놔야한다. 저녁에는 길이 어두워 이동속도도 느려지고 택배상자위 송장을 읽는데도 빛이 없어 시간이 낭비되기 때문이다.

화장실도 정해진 시간에만 간다. 명절 기간엔 아예 못가는 날도 많다. 소변을 너무 참아 신장 치료 약을 복용한 적도 있다. 그는 "그나마 오늘은 물량이 매우 적은 편"이라며 "저녁을 일찍 먹을 수 있어 좋다"며 웃었다.

박씨가 속한 CJ대한통운의 대표이사가 이날 오후 '대국민 사과'를 할 때도 그는 빌라 계단을 뛰고 있었다. 기자가 관련 소식을 알려도 그는 "그래요?"라며 "진심일까요"라는 냉소적인 반응이었다.

이렇게해서 많은 배송물량을 감당해도 그에게 남는 돈은 얼마되지 않는다. 대리점 수수료에 차 보험료, 기름값 등 매달 150만원이 고정적으로 나가고 거기에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종합소득세와 10% 부가가치세까지 내야한다. 시급으로 따지면 1만원 수준이다.

박씨가 바라는 건 다치지 않는 것이다. 그가 갖고 있는 유일한 재산이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아프다고 마음대로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다"며 "가족 하나 보고 버티면서 살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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