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중 사고로 공황장애 악화돼 극단적 선택…업무상 재해?

임종철 디자이너 /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평소 공황장애를 앓던 회사원 A씨가 있다. 그는 어느날 퇴근을 위해 탄 회사 엘리베이터에 갇히고 말았다. 이후 공황장애가 더 심해진 A씨는 끝내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이 경우 법적으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법원은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지난 9월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는 2016년 9월부터 한 회사에서 온라인 게임 배경 디자인 업무를 담당했다. 입사 후 한 달이 지난 시점에 A씨는 퇴근 중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사고를 당한다. 당시 구급활동 일지에 따르면 A씨는 공황장애 증상을 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고 이후 A씨는 병원에서 장기간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심각한 공황장애를 앓았고 2017년 2월부터는 출근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사태가 악화했다. A씨는 결국 2017년 4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족들은 A씨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신청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거절했다. A씨의 공황장애 악화와 사망은 업무상 요인보다 가정 내 불화에 의한 개인적 원인이 더 주요하게 작용했다는 이유다.

이는 A씨가 고등학교 졸업 후 준비하던 일본 유학이 부모님의 반대로 좌절됐을 때 우울감, 무기력감, 불면 증세를 겪었고 지하철에서도 두근거림, 어지러움, 불안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병원에 진술한 점이 근거가 된 것으로 보인다. A씨는 엘리베이터 사고 발생 1년 전에도 비행기 고장으로 2시간 동안 갇혔을 때 답답한 느낌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A씨가 사건 이전부터 공황장애 소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치료를 받지 않더라도 정상적인 회사생활에 지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A씨는 사건 이후부터 증상이 본격적으로 발현돼 사건 직후에는 한 달이 넘게 입원해 치료를 받았고 사망 직전까지 기존과 같은 회사생활을 지속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A씨는 (회사가 개발한) 게임이 실패하는 것에 대해 큰 두려움을 느끼는 등 게임의 성공 여부에 대해 상당한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았으리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며 "법원 감정의는 이 사건 사고와 게임의 실패, 원고의 퇴사 등 업무상 스트레스가 A씨의 공황장애 악화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상당히 있을 수 있다고 보았다"고 밝혔다.

근로복지공단이 주장한 가정불화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A씨가 공황장애 진단 초기에 부친과 불화에 대해 언급했던 사실이 인정되지만 이후 A씨는 부친이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언급한 후 가정불화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사망 직전까지 이 사건 게임의 실패와 그로 인한 퇴사 관련 스트레스를 언급하고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A씨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사망했다고 해도 A씨는 업무상 재해인 이 사건 (엘리베이터) 사고와 업무상 스트레스로 A씨에게 내재한 공황장애의 소인이 급격히 악화했다"며 "A씨는 공황장애 및 이에 수반된 우울감으로 행위선택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극단적인 선택에 이른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