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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라면 먹지 말고…'어린이 식당'에 오렴[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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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24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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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밥 먹는 동네 아이들에게 저녁 식사, 놀이까지…"혼자 먹는 것보다 더 맛있어요, 기대돼요!"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안 보였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아이들에게 맛있는 밥을 주겠다며, '어린이 식당'에 사람들이 모였다. 동네 어르신, 대학생, 복지관 선생님까지. 이곳이 궁금해 찾은 기자가 밥을 푸고 있다./사진=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부산종합사회복지관
아이들에게 맛있는 밥을 주겠다며, '어린이 식당'에 사람들이 모였다. 동네 어르신, 대학생, 복지관 선생님까지. 이곳이 궁금해 찾은 기자가 밥을 푸고 있다./사진=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부산종합사회복지관
혼자 라면 먹지 말고…'어린이 식당'에 오렴[남기자의 체헐리즘]
"너 왜 집에 안 들어가고 밖에 서 있어?"


책가방을 문 앞에 두고 다리를 배배 꼬던 아이. 그걸 본 동네 어른들은 으레 그리 물었었다.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 우리 집은 그 초입이었다. 어렸던 난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잠깐 나가셨나 봐요. 금방 오실 거예요. 괜찮아요." 걱정하며 바라보는 표정에 대답은 늘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도무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서 있으면 힘들잖아. 안에 들어와 있어라." 겨우 들여보내도 10분 뒤 또 나와 저만치서 크게 소리쳤다. "우리 집에 들어와 있으라니까. 엄마 언제 올 줄 알고 그래. 다리 아프잖아, 아줌마 마음 불편해."

그럼 못 이기는 척 들어갔었다. 우리 집 현관문엔 작은 쪽지가 붙었다. '형도 제가 데리고 있어요. 508호.' 내겐 아늑함이 찾아왔다. 더운 여름엔 선풍기 바람에 땀이 식었고, 추운 겨울엔 얼얼한 손이 아랫목에 녹았다. 그리고 떡이며 빵이며 과자며 뭐라도 갖다 주다, 식사 시간이 되면 자리 하나를 내어주었다.

30년도 더 된 그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부산에서 만난 '어린이 식당' 덕분에.



아이들 혼자 밥 먹지 말라고…


지난해 처음 시작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부산종합사회복지관 내 어린이 식당. 동네 아이들 밥을 챙기잔 취지이며, 실은 지역사회에서 돌봄 사각지대를 없애잔 의미가 더 크다./사진=남형도 기자
지난해 처음 시작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부산종합사회복지관 내 어린이 식당. 동네 아이들 밥을 챙기잔 취지이며, 실은 지역사회에서 돌봄 사각지대를 없애잔 의미가 더 크다./사진=남형도 기자
엄마·아빠가 부재해 홀로 저녁 먹어야 했던 아이들. 일본에선 이미 예전부터 그런 아이들을 데려다 끼니를 챙기기 시작했다. 밥과 반찬을 하는 김에 조금씩 더했다. 그리고 초대해 함께 먹었다. 그런 어린이 식당이 지금은 일본 전역에 4000곳으로 늘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이를 지원하고 위생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고 있다.

국내도 사정은 비슷하다. 결식 우려가 있는 아동이 31만7234명(보건복지부, 2017년 기준). 맞벌이 부모라서, 빈곤해서, 혹은 여러 이유로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여 아이들은 끼니를 잘 챙기지 못하고 있다. 집에서 홀로 먹거나, 편의점에서 빵과 라면, 과자 같은 걸로 부실하게 때우곤 한다. 영양 상태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부산종합사회복지관은 이들을 위해 지난해 처음 어린이 식당을 만들었다. 그러나 빈곤한 가정 아이들만 챙기자는 의미는 아녔다. 그건 또 다른 '낙인'이었으므로. 아이들 누구나 찾아와 밥을 먹고, 친구들과 놀며 또래 관계도 만들고, 그런 모델이 지역마다 늘길 바라며 시작한 거였다.
어린이 식당에 나왔던 1인 1닭 메뉴. 평소 잘 못 먹는 정성스런 음식을 주니, 아이들도 매주 어린이 식당에 오는 이 하루를 기다린단다./사진=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부산종합사회복지관
어린이 식당에 나왔던 1인 1닭 메뉴. 평소 잘 못 먹는 정성스런 음식을 주니, 아이들도 매주 어린이 식당에 오는 이 하루를 기다린단다./사진=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부산종합사회복지관
"지난주엔 치킨도 한 마리씩 줬어요.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지요. 그러나 밥은 아이들을 초대하기 위한 매개일 뿐이에요." 어린이 식당을 만들고 꾸려온 조민정 부산종합사회복지관 팀장은 그리 설명했다.

여기선 대체 무슨 재밌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21일 아침, KTX를 타고 부산 동구로 향했다. 매주 수요일, 어린이 식당이 열린다 하기에 놓칠 수 없었다. 늘 취재에 도움을 주는 문선종 어린이재단 대리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브로콜리 감자 크림 수프'라니


맛있게 먹은 아이들이 남긴 메시지./사진=남형도 기자
맛있게 먹은 아이들이 남긴 메시지./사진=남형도 기자
"개되대요^^(기대돼요)"
"엄마가 동생 치료 때문에 집에 없었는데 어린이 식당 감사해요."
"어린이 식당 짱!♥"

그런 색색의 포스트잇이 어린이 식당 입구에 붙어 있었다. 아이들이 밥 먹고 남긴 소감들이었다. 삐뚤빼뚤한 글씨에, 하트와 웃는 그림도 그려놓았다. 꽤 맘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아빠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식당에선 고소하고 맛있는 내음이 코를 찔렀다. 이끌리듯 주방에 다가가니 어르신 세 분이 음식 준비에 한창이었다. 옆에 있던 조 팀장이 "희망 일자리로 오신 분들"이라고 귀띔해줬다. 위생모, 앞치마, 마스크, 위생장갑까지 단단히 무장한 이들과 인사를 나눴다. 특유의 부산 사투리로 반겨줬다.
오늘의 메뉴인 '브로콜리 감자 크림 수프'. 감자를 삶은 뒤 곱게 으깨어 크림 수프와 함께 저어서 만드는데, 정말 맛있었다./사진=또 먹고 싶은 남형도 기자
오늘의 메뉴인 '브로콜리 감자 크림 수프'. 감자를 삶은 뒤 곱게 으깨어 크림 수프와 함께 저어서 만드는데, 정말 맛있었다./사진=또 먹고 싶은 남형도 기자
오늘의 메뉴는 돈가스와 수프, 샐러드. 그런데 범상치 않았다. 커다란 그릇에 색깔이 옥수수 빛깔의 수프가 가득 담겨 있기에. 다가가니 반장 어르신이 "간이 맞는지 한 번 먹어봐 달라"고 했다. 그릇에 조금 덜어서 맛을 봤는데 한겨울 크리스마스가 떠오를 만큼 맛있었다. 순식간에 다 먹고 여운이 남아 입맛을 다셨다. 재차 "간이 괜찮느냐"는 물음을 들은 뒤에야 "적당하다"고 답할 수 있었다.

비결이 뭐냐 물으니 그는 "감자 15개를 삶아서 으깨어 넣었다"고 했다. 거기에 브로콜리까지 아이들 먹기 좋게 삭삭 뿌려 넣었다. 일명 '브로콜리 감자 크림 수프'였다. 나도 모르게 "이런 건 처음 먹어본다. 정말 맛있다"고 감탄했다(더 달라는 얘기). 알고 보니 반장 어르신은 한식, 중식, 양식 자격증에 복어까지 다룰 줄 아는 능력자란다.



돈가스 온도 체크, "75도가 돼야지"


수프를 식히기 위해 큰 냄비에 붓고 있는 남기자. 음식은 잘 못하는 대신 힘이라도 써야./사진=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조민정 팀장
수프를 식히기 위해 큰 냄비에 붓고 있는 남기자. 음식은 잘 못하는 대신 힘이라도 써야./사진=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조민정 팀장
주방은 열기가 뜨거웠다. 어르신들 이마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센스 있는 조 팀장이 "에어컨을 틀자"며 스위치를 찾았다. 나도 겉옷을 벗고 반소매 티셔츠만 입었다. 앞치마와 위생 장갑을 재빨리 장착했다. 그 틈에서 어떻게든 보탬이 되고 싶었다.

첫 임무는 색색의 양배추 샐러드를 도시락통에 담기. 원래는 칸막이까지 잘해둔 어린이 식당에서 먹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다소 나아질 때까지만 도시락을 만들어 나눠준다고 했다. 한 줌씩 가득 쥐어 통에 담았다. 그 나이 때 샐러드는 싫겠으나, 그래도 건강 하려면 많이 먹으란 마음을 듬뿍 담아서.

함께하는 이들 모두 그랬다. 만드는 건 음식이지만. 담는 건 마음이었다. 작은 것 하나까지 정성이 느껴졌다.

돈가스 온도까지 정확히 잰다. 75도가 돼야 다 익은 거라고. 아이들 배 앓이 하면 안 된다고, 동네 어르신들 맘이 그랬다./사진=다 익은 줄 알고 군침 돌았던 남기자
돈가스 온도까지 정확히 잰다. 75도가 돼야 다 익은 거라고. 아이들 배 앓이 하면 안 된다고, 동네 어르신들 맘이 그랬다./사진=다 익은 줄 알고 군침 돌았던 남기자
돈가스 하나를 튀긴 뒤 조금씩 잘라서 서로 한 조각씩 입에 넣었다. 속살이 하얗게 익은 듯 보였으나, 확실히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의견이 나뉘자 반장 어르신은 온도계로 돈가스를 찌르더니, "75도가 안 됐다"며 더 튀길 것을 명했다. 그러면서 "아이들 식중독 걸리면 큰일 나"라고 중얼거리는, 그의 혼잣말이 따뜻했다. 온도에 이를 때까지 더 노릇노릇 튀긴 뒤 다시 맛보았다. "이제 잘 익었다"며 만족해했다.

수프를 담을 때도 그랬다. 큰 용기에 절반쯤 담았다가, 또 다른 어르신이 "애들 주는 건데 적어 보이네. 맘이 좀 그런데"해서 좀 더 작은 용기로 바꿔 가득 채우기로 했다. 그제야 그의 표정이 편해 보였다. 수프를 넉넉히 넣느라 자꾸 용기 주변에 묻어났다. 옆에서 내가 닦는 역할을 맡았다. 처음엔 넉넉히 붓다가, 나중엔 조금씩 줄어들었다. 어르신은 "양 조절에 실패했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수프를 다 담은 뒤엔 양이 적은 걸 매의 눈으로 찾아 조금씩 더 넣었다.



색깔이 참 예뻤던, 48개의 도시락


막바지 포장 작업 중. 아이들이 먹는다 생각하면, 어느 손길 하나 허투루 할 수 없다./사진=남형도 기자
막바지 포장 작업 중. 아이들이 먹는다 생각하면, 어느 손길 하나 허투루 할 수 없다./사진=남형도 기자
오후 4시쯤, 도시락에 음식을 담는 게 거의 마무리 돼갔다. 난 주특기를 살려 밥을 퍼서 담고, 여섯 조각으로 자른 돈가스도 착착 넣었다. 샐러드엔 소스를 듬뿍 뿌렸다. 이제 뚜껑을 닫고 보온 백에 담으면 완성이었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아까보다 더 사람이 많았다. 어르신들, 부산종합사회복지관 선생님들, 대학생 봉사자들까지. 이름도, 나이도, 사는 곳도 다 달랐으나 맘은 같았다. '아이들이 맛있게 잘 먹었으면 좋겠다', 그 뿐이었다. 한창 잘 먹을 녀석들에게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오래 준비한 밥과 돈가스, 샐러드, 브로콜리 감자 크림 수프, 직접 끓인 돈가스 소스가 도시락통에 차곡차곡 담겼다. 이제야 숨을 돌리고 살피러 온 반장 어르신은 "색깔이 참 예쁘지요"하며 웃어 보였다. 끝나가는 와중에도 어느 도시락엔 샐러드 소스가 부족하다며, 여긴 밥을 더 담았으면 좋겠다며, 맘을 더 채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기분 좋은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이제 도시락을 보온 백에 하나씩 넣을 차례. 나란히 선 이들의 여러 손을 거쳐 작업이 한결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후식인 요거트까지 챙겨 넣었다. 보온 백 지퍼를 꾹꾹 눌러 닫는 순간엔, 좋아할 아이들 표정이 떠올랐다.
짠, 도시락 포장이 끝났다./사진=뿌듯한 남형도 기자
짠, 도시락 포장이 끝났다./사진=뿌듯한 남형도 기자
그리 48개의 도시락이 완성됐다. 이는 부산 동구에 있는 어린이 식당 네 곳에 전해질 터였다. 돈가스 기름이 튀어 미끌미끌한 바닥을 닦으며 서로 "고생 많았다"고 인사를 건넸다. 소감을 묻자 반장 어르신은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다고 생각하면 그냥 너무 좋다"고 했다. 맞벌이에 아들만 둘이라는 조 팀장은 "우리 동네에도 어린이 식당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할로윈 파티하자, 얘들아" "와~"


아이에게 마법사 옷을 입혀주는 기자. 사진을 찍어주니, 얌전하던 아이도 무척 좋아했다./사진=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부산종합사회복지관
아이에게 마법사 옷을 입혀주는 기자. 사진을 찍어주니, 얌전하던 아이도 무척 좋아했다./사진=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부산종합사회복지관
도시락을 다 싸두고 기다리는 맘이 설레었다. 이날은 복지관 5층 강당서 할로윈 파티가 열리는 날. 1시간 정도 아이들과 논 뒤, 도시락을 챙겨 집에 보내주는 일정이었다. 한창 뛰어놀면 배고프고, 그럼 밥도 더 맛있게 먹을 테니까.

오후 5시 30분이 되자 아이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준비해둔 마법사 옷이며 모자, 호박 가면, 도깨비 머리띠 등을 만져보더니, 머리에 쓰고 몸에 걸치기 시작했다. 어색해하는 녀석들에겐 다가가 "와, 진짜 멋진데? 사진 찍어줄까?"하고 말을 걸었다. 그러니 금세 신나서 거미줄과 유령과 호박 빛깔 나무 앞에서 장난스레 자세를 취했다.

그 와중에 엄마와 함께 온 한 남자아이가 얌전히 앉아 있기에, 살금살금 다가가 장난을 쳤다. 처음엔 가만히 있더니 이내 죽어라 날 쫓아오고, 나도 기를 쓰고 쫓아갔다. 아이는 가벼운데, 내 뱃살은 몹시 출렁여서 금세 땀범벅이 됐다. 그래도 밝아진 녀석을 보니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몸으로 뛰며 놀아주니 금세 여럿이 날 쫓아와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됐다.
간식을 담아주는 기자. 잠시나마 동심으로 돌아간듯 즐거웠다./사진=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부산종합사회복지관
간식을 담아주는 기자. 잠시나마 동심으로 돌아간듯 즐거웠다./사진=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부산종합사회복지관
이어 아이들과 색종이를 접어 '할로윈 모자'를 만들었다. 한 테이블에 가르쳐주러 앉았는데, 아이들이 더 잘해서 내가 배우고 있었다. 특히 한 남자아이는 정말 빠르게 잘 접었다. 내가 계속해서 물어보자 아이는 "선생님, 누가 선생님인지 모르겠어요!"하고 장난치며 내게 핀잔을 줬다. 같이 있던 아이들까지 함께 웃음이 터졌다.

다 만든 모자는 뒤집어 간식을 가득 담아줬다. 다른 한 손엔 오후 내내 준비해둔 도시락을 줬다. 아이들은 자그마한 양손을 가득 채워 왁자지껄 돌아갔다. 하루 내내, 기다리고 바랐던 모습이었다.



수아와 수빈이, "돈가스 너무 맛있어요"


어둑어둑한 골목길을 아이들과 함께. 집까지 안전히 가야지./사진=지나가는 차를 노려보는 남형도 기자
어둑어둑한 골목길을 아이들과 함께. 집까지 안전히 가야지./사진=지나가는 차를 노려보는 남형도 기자
저녁 7시, 복지관 바깥은 어느새 어두컴컴했다.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 수아(10, 가명)와 수빈이(5, 가명)네 집으로 향했다. 수빈이는 엄마와 차로 먼저 가고, 수아는 나와 조 팀장과 함께 나란히 걸었다. 아이는 씩씩하게 앞서 나가며 우릴 집까지 안내했다.

집에 도착하니 침대에 누워 계시던 수아 외할머니가 몸을 일으켜 인사를 건넸다. 편찮으시다고 했다. "누워 계시라"고 하니, 수아가 할머니 쉬라고 문을 꼭 닫았다. 집안을 둘러보았다. 거실에 걸린 가족사진엔 수아와 수빈이, 엄마, 외할머니까지 네 식구가 있었다. 다정한 가족이었다.

수아와 수빈이는 씻자마자 식탁에 앉았다. 열심히 놀아서인지 꽤 배고픈 모양이었다. 드디어 도시락을 먹을 시간. 밥과 돈가스, 소스, 수프, 샐러드까지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수아 엄마는 함께 먹을 어묵국을 내어왔다. 직접 만든 도시락을 먹는다 생각하니 어쩐지 두근두근.
아이들 혼자 먹기에도 충분히 많은 양의 도시락, 그럴 땐 엄마도 먹는다고 했다. 한끼 해결이다. 숟가락을 볼에 붙여 애교 부리는 5살 수빈이./사진=딸 낳고 싶은 남기자
아이들 혼자 먹기에도 충분히 많은 양의 도시락, 그럴 땐 엄마도 먹는다고 했다. 한끼 해결이다. 숟가락을 볼에 붙여 애교 부리는 5살 수빈이./사진=딸 낳고 싶은 남기자
돈가스를 한 입 먹은 수아에게 "어때, 맛있어?"하고 물어보니 "네, 너무 맛있어요!"라며 활짝 웃었다. 옆에 수빈이도 작은 입으로 열심히 오물오물. 수아 엄마는 "맛없으면 정말 안 먹는데, 맛있나 봐요"라고 거들었다. 수아는 말없이 열심히 먹더니, 수빈이 돈가스를 힐끔, 그리고는 "수빈아, 너 안 먹어?"라고 슬쩍 떠본다. 바로 엄마한테 딱 걸려서 계획이 무산됐다. 그 모습에 다 같이 웃었다.

엄마에겐 어린이 식당이 어떤 의미일까. 그는 "아이들이 도시락을 가져왔는데, 음식이 너무 정성스럽고 좋아서 놀랐다"고 했다. 그리 밥을 살뜰히 챙겨주니 너무 큰 도움이 된단다. 집에선 이렇게 만들어주기 쉽지 않기에. 홀로 두 아이를 돌보며 아픈 모친까지 챙기느라 더 그랬으리라. 그러니 일주일에 한 번이나마 숨통이 조금 트인다며 그저 감사한 마음이라 했다.



편의점이 키우는 아이들


혼자 라면 먹지 말고…'어린이 식당'에 오렴[남기자의 체헐리즘]
밤 9시쯤, 동네 편의점에 갔다가 학원 가방을 멘 아이를 봤다. 한쪽 구석에 서서 허겁지겁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저녁 먹어요?"라고 넌지시 물어봤더니 그렇단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배가 고파 들렀다고. 엄마는 늦게 와서 대충 때운다고 했다. 그게 익숙한 듯, 아이는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리 머무는 시간은 10분이 채 되지 않았다.

'딸랑'하는 소리와 함께 편의점 문을 나서던 아이. 그 뒷모습이 알 수 없이 무거워 맘에 걸렸었는데, 어린이 식당에 다녀온 뒤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밥을 잘 먹는다는 게 단지 배를 채우는 게 아녔다. 어렸을 때 놀이터에서 놀다 "밥 먹어라"하고 멀리서 외치는 엄마 목소리에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됐었다. 집에 가면 반겨줄 사람이 있다는 것, "옷이 더럽게 이게 뭐야"라며 핀잔을 줄지언정 하루 안부를 물어보고 바라봐주던 추억. 그러니 따뜻한 밥 한 끼는, 실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관심'이었다.

그러나 엄마, 아빠들이 사느라, 살아내느라 어쩔 수 없이 함께 돈을 번다. 대부분 원치 않아도 그리 살 수밖에 없게 됐다. 귀한 아이 잘 키우겠다며 밤늦도록 바삐 일하는데, 그러느라 아이 홀로 보내는 시간도 늘었다. 배고픈 아이들을 늘 반겨주는 건 24시간 편의점, 머무는 시간은 길어야 10~20분. 돌봄의 '사각지대'에서 편의점이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온 마을이 아이를 함께 키운다


도시락 받았어요, 잘 먹겠습니다./사진=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부산종합사회복지관
도시락 받았어요, 잘 먹겠습니다./사진=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부산종합사회복지관
어린이 식당이 좋았던 건, 그곳이 오롯이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어서였다. 동네 엄마들이, 형들이, 언니들이, 누나들이, 오빠들이 잔뜩 모여 아이들을 바라봐주었다. 음식을 만들며 생각하고, 만나선 인사하며 반겨주고, 땀 흘리며 놀아주고, 맛있게 먹을 수 있게 공간이 마련되었다.

그뿐인가. 그곳엔 뭣보다 친구들이 있었다. 홀로 저녁을 먹어야 했을 아이들이 모이니 외롭지 않았다. 맛있고, 재밌고, 그러니 신날 수밖에.

실제 어린이 식당을 찾은 아이들 의견이 이랬다.

"집에서 혼자 먹는 것보다 어린이 식당서 먹으니 더 맛있었어요. 입맛이 돈다고 할까요."
"못 먹었던 음식을 먹으니 몸무게도 늘고, 키도 좀 큰 것 같아요!"
"편의점 음식으로 때웠는데, 제대로 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게 됐어요. 매주 기대돼요."


그리 품어주다 보면, 다 어른이 되는 거니까. 누구나 그런 아이였으니까. 잘 돌봐야하지 않을까 싶어서./사진=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그리 품어주다 보면, 다 어른이 되는 거니까. 누구나 그런 아이였으니까. 잘 돌봐야하지 않을까 싶어서./사진=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그러니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생각났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돌봄의 틈, 그걸 나무라거나 탓하지 않고 아이를 함께 돌볼 수 있다는 위로의 말. 어쩌면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나이 지긋한 누군가의 그런 지혜의 말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접했다. '라면 형제' 동생이 하늘나라로 갔다고./사진=남형도 기자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접했다. '라면 형제' 동생이 하늘나라로 갔다고./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그날 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기사 하나를 봤다.

배고파서 라면을 홀로 끓여 먹다 불이 나 사경을 헤맸던 두 아이. 살아서 다행이라 여겼는데 갑작스레 동생이 숨졌다고 했다. 그 한 그릇도 차마 못 먹고 떠난 게 맘 아파서, 노트북 화면을 켜놓고 흔들리는 불빛을 보며 멍한 눈빛으로 앉아 있었다.

비현실적 상상은 슬픔 없는 어딘가로 날 데려갔다. 그곳엔 숨진 줄 알았던 아이가 있었다. 그리고 따뜻하고 맛있는 향기가 솔솔 풍기는 식당이 있었다. 들어가니 동네 어른들이 "어서 와, 배고팠지"하며 밥과 반찬을 넉넉히 담아줬다. 배부른 아이는 그제야 곤히 잠들었다.

현실로 돌아왔을 땐, 어두컴컴한 창밖 풍경이 덜컹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막연한 상상을 했다. 기차가 지나는 그 모든 곳에, 어린이 식당이 밤늦도록 불을 밝혔으면 좋겠다고. 배고픈 아이들이 언제든 찾을 수 있도록.



  • 남형도
    남형도 human@mt.co.kr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시선에서 소외된 곳을 크게 떠들어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면서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 간직하려 노력합니다. 좋은 제보 언제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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