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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때 귀티나던 이건희, 왜 하필 레슬링 지원했냐" 물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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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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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29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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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 회장과 김필규 전 KPK통상 회장의 추억이 담긴 서울사대부고 동창 수필모음집인 '우리들의 이야기 8호'/사진=서울사대부고 동창회 홈페이지
이건희 삼성 회장과 김필규 전 KPK통상 회장의 추억이 담긴 서울사대부고 동창 수필모음집인 '우리들의 이야기 8호'/사진=서울사대부고 동창회 홈페이지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암센터 강당에서 진행된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영결식에서는 김필규 전 KPK통상 회장이 추도사를 낭독했다. 김 전 회장은 이 회장과 서울사대부고 동문으로 레슬링부에서 함께 활동했다.

서울사대부고 레슬링부 기수는 김 전 회장(11회)이 이 회장(13회)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두 사람은 막역하게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제17대 총동창회장을 지낸 김 전 회장은 지난해 11월 발간된 서울사대부고 동창 수필모음집인 '우리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회장의 쾌유를 빌기도 했다.

이날 영결식에서 김 전 회장은 수필집에 썼던 이 회장과의 추억 중 일부를 추도사로 대신했다.

김 전 회장은 "서울사대부고 강당 한 구석에 있던 레슬링 반에서 7~8명의 신입생 레슬링 반원 지망자들과 상견례를 했다"며 "유난히 피부가 희고 눈이 깊고 귀티가 나는 당신(이 회장) 보고 '왜 하필 레슬링 반을 지원했냐고' 물었다"고 이 회장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이 질문에 이 회장은 "초등학교 시절 몇 년을 일본에서 살았다"고 밝히면서 "당시 일본은 물론 세계 프로레슬링 영웅이던 역도산의 경기를 많이 보고 존경했기 때문에 레슬링이 하고 싶어졌다"고 당차게 말했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은 유난히 호기심이 강했던 이 회장의 모습도 이렇게 기억했다.

'늦은 밤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이 회장 방에 올라가 보니 각종 전자기계 부품이 가득했다. 이 회장 자신은 밤을 새우며 라디오, 전축, TV 등 전자제품들을 조립하고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다고 하더라'

김 전 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71,500원 상승1800 2.6%) 부회장에 대해서는 "재용군을 보면 호부무견자(虎父無犬子)란 말이 떠오릅니다. 훌륭한 아버지를 둔 훌륭한 아들"이라면서 "게다가 그의 행동거지는 언제 어디에서 보아도 공손하여 부자 집 아드님이라기 보다는 양가 집 아드님입니다. 좋은 교육을 받았다는 뜻"이라고 기특해했다.

다음은 서울사대부고 수필모음집 '우리들의 이야기'에 실린 김 전 회장이 쓴 글 전문

李 健 熙 會長께,

2019年 11月 11日 金 弼 圭

이 건 희 회장!

존경하는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을 함께 담아 당신을 불러봅니다. 존경하는 마음이란 아시아의 변방에 있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현대산업기술의 총아인 전자산업부분에서 세계의 챔피언으로 우뚝 세워놓은 공로에 대한 고마움이요, 안타까운 마음이란 7년을 넘어 투병하고 있는 당신을 바라보면서 의료과학기술의 힘이 버거워하는 곳에 기필코 신의 손길이 내리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최근 미국의 경제잡지 포브스(Forbes) 에서 지난 100년 동안 아시아를 대표하는 최고의 혁신기업으로 당신의 삼성전자를 뽑았고 다음이 일본의 자존심인 도요다(Toyota) 또 그 다음으로 소니(SONY)를 뽑았답니다. 중국의 알리바바(Alibaba)는 다섯 번째 랍니다. 연이어 들리는 소식은 삼성이 5세대(5Generation) 이동통신 부분에서도 현재 일본 및 중국에서 좋은 실적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더욱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초일류의 통찰력과 비전 그리고 안목으로 우리 역사상 전무하고 후무 할 성취를 이루어낸 당신의 리더십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당신은 대한민국 을 대표하는 Human Landmark(이런 표현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아닙니까? 부디 툭툭 털고 일어나서 빙긋이 웃으며 우리에게 다가 오시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난 것은 1958년 봄 서울시 중구 을지로6가에 있던 서울師大附高 강당 한 구석에 있던 레슬링 반 에서 였 읍니다. 7-8명의 신입생 레슬링 반원 지망자들과 상견례를 하던 중에 유난히 피부가 희고 눈이 깊고 귀티가 나는 당신보고 내가 물어봤지요. 왜 하필 레슬링 반을 지원했냐고요? 당신은 뜻밖의 답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몇 년을 일본에서 살았는데 당시 일본은 물론 세계프로레슬링의 영웅이던 역도산(力道山)의 경기를 많이 보고 존경했기 때문에 레슬링을 하고 싶어 졌 다고 했습니다.

당시 우리 서울사대부고는 한국고등학교 레슬링의 챔피언이었고 시합은 대부분 장충체육관에서 열렸습니다. 그런데 이회장의 댁이 바로 장충체육관 길 건너편에 있어 자연스레 댁에 드나들며 출전준비도 하고 그랬지요. 어머님이신 박두을(朴杜乙)여사께서 따듯하게 돌봐주셨고요 당신 침대에서 놀고 있던 눈처럼 희고 작은 스피츠(Spitch)라는 개도 난생처음 보았고, 대문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에 철망으로 만든 우리 안에 커다란 독일산 도베르만 두 마리가 항상 으르렁 거리고 있었지요, 처음으로 만난 시날코(콜라와 사이다를 섞은 듯 한 음료)도 많이 마셨습니다. 수년 전에 부인 홍 여사께 이 스피츠 이야기를 했더니 회장께서 15년 이상 사랑하던 개인데 어느 날 출장에서 돌아오던 회장을 발견하고 너무 반가워하며 이층에서 뛰어 내리다 다리가 부러졌다고 하셨습니다. 일 년 후에 3학년이던 저는 졸업을 했습니다.

이 회장을 딱히 은둔 형이라고 까지 할 수 없겠으나 자신의 말을 아끼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과묵한 성품에 언론에도 잘 나서지 않고 동창회, 결혼식, 장례식 등 세속적인 모임에도 발길을 안 하는 까닭에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기 일쑤고 특히 근거 없는 악성루머들이 심심치 않게 당신 주변을 맴돌아 당신의 가족은 물론 당신을 자랑으로 알고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오늘 당신께 그동안 들려드리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사대부고 은사님이신 韓祐澤 선생님이 한국럭비협회 임원 자격으로 1964년 동경올림픽에 참석하셨다가 이회장의 배려로 이 회장댁에 묵으면서 고맙게도 동경구경을 며칠 더 할 수 있었답니다. 이 회장은 그때 와세다 대학에 재학 중이셨는데 한 선생님이 댁에 머무는 동안 도저히 상상 할 수도 없는 경험을 하셨다며 언젠가 제게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늦은 밤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이 회장 방에 올라 가보니 각종 전자기계 부품이 가득하고 이 회장 자신은 밤을 새며 라디오, 전축, TV등 전자제품들을 조립하고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후일 필생의 사업이 된 전자산업의 기본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답니다.

부자 집 아들이 경제학이나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을 것으로 믿고 있던 선생님은 큰 충격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 미국 유학까지 마치고 귀국한 후 부회장 직함으로 일하실 때도 많은 루머가 떠돌아 다녔지요. 매일매일 정상 출근을 안 하고 한남동 자택에서 무언가를 하신다고.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쯤엔 아마 반도체 산업에 천착하고 후일 선대회장께 메모리반도체산업에의 과감한 투자를 강력 진언할 준비를 하셨던 것으로 생각 됩니다. 또한 그 당시 일본의 우수한 기술자들을 댁으로 초치하여 선진기술을 익히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요즈음 미술이나 건축하는 사람들의 입에 자주 회자되는 Ludwig Mies van der Rohe가 즐겨 사용했다는 말 “God is in the details”가 이 회장 머릿속에는 “God is in the qualities”로 오래전부터 각인되어 있은 듯합니다. 1993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선포의 key word도 품질혁신이었지요. 품질의 중요성을 48시간이나 강조하는 회장에게 조심스럽게 그래도 물량의 중요성도 무시하면 안 된 다 고 했던 원로 경영인 한분이 회장께 혼 구 멍이 나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 소 모든 임원들이 회장의 품질로 승부한다는 원대한 꿈의 도전에 두 말 않고 동참하게 되었다지요.

비슷한 예 가 하나 더 있습니다. 1999년에 鄭夢九 회장이 현대 자동차의 회장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2001년 부친이신 鄭周永 회장이 타계하기 2년 전 일이었습니다. 모두들 현대자동차가 망한다고 극언들을 했습니다, 특히 현대그룹의 현직 고위간부들이 앞장서서 입방아들을 쪘습니다. 우선 정몽구회장의 경영능력을 수준미달로 평가절하 했고 경험도 부족하다고 했지요. 그러나 그때 사람들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몽구 회장은 동생들이 소위 좋은 자리라는 건설, 중공업, 상선, 철강, 전자, 종합상사등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을 때인 1973년부터 현대자동차써비스(주)에서 묵묵히 일하면서 자동차 품질에 관해서는 초일류가 되어 있었으며 후에 현대정공을 설립하면서 완성차산업에 대해서도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품질로 승부를 건 현대 자동차도 결국 2-3년 후에 글로벌 플레이어로 당당히 섰습니다. 게다가 기아자동차를 과감히 인수하는 뚝심도 보였습니다. 저는 품질혁신을 통해 세계를 제패한 이 건희 회장의 삼성전자와 정몽구 회장의 현대자동차의 성취를 한국경제의 제2의 한강의 기적이라고 생각 합니다.

대저 아버지는 아들들에게는 극복의 대상이라고 합니다. 특히 성공한 아버지를 둔 자식들은 많은 심리적 부담과 압박을 받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유업을 크게 융성시키는 일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고들 합니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말에 승어부(勝於父)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비를 이긴 다기보다는 아비를 능가한다는 것으로 효도의 첫걸음이라고 배운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과문(寡聞)한 탓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을 둘러보아 도 당신만큼 크게 승어부하여 효도한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삼성그룹을 100배 1,000배 키웠다고 이야기들 하지만 당신의 성취를 수량으로만 가늠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취의 내용과 질 그리고 무엇보다도 온 국민이 만끽하는 대한민국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어떻게 수량으로 가늠할 수 있겠습니까?

“삼성이 하면 뭔가 다르다” 삼성을 칭찬하는 찬사 가운데 이보다 더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말은 없을듯합니다. 1976년 캐나다의 몬트리올 하계올림픽에서 건국 후 최초로 레슬링에서 양정모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해 온 국민을 열광시킨 뒤에는 레슬링 선수출신인 당신의 삼성이 있었고요, 2010년 캐나다의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전 세계를 경악 시키며 모태범선수와 이상화선수가 남녀 500m 에서 각각 금메달을 동반 획득 한 것도 삼성의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 었습니다. 교통사고 후유증에서 회복하기 위해 직접 시작하셨던 승마도 후원하시었습니다. 비 인기종목인 레슬링, 스케이팅, 승마 등을 후원하여 드디어 승마에서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었지요.

국가보다는 기업이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해야 하는 새로운 기업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선견지명으로 일찍이 삼성문화재단을 설립하여 다양한 사회문화공익사업 활동을 통해 국민문화생활의 질적 향상에 이바지 하려고 힘쓰셨지요. 물론 그 하이라이트는 선대회장께서 설립한 호암미술관과 당신이 설립한 삼성미술관 리움입니다.

특히 리움 미술관은 설립 초기부터 헌신한 당신의 부인인 洪 羅喜 관장의 안목과 열정 그리고 혁신적 운영으로 세계적 명성의 미술관으로 우뚝 섰습니다.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국내외 거장들의 최고수준의 걸 작품들과 문화재청이 지정한 국보 47점과 보물 96점을 그것도 국내외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있던 우리민족문화를 대표하는 정수들을 모아 한자리에서 서로의 아름다움과 예술성을 뽐내게 하며 결국은 온 국민에게 선물한 한 업적은 아무리 상찬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제가 모교의 총동창회장을 역임했던 2,000-2,001년, 李 禹煥 재일화가, 李 基俊 서울대학교 총장 그리고 李 健熙 삼성회장을 자랑스러운 사대부고인으로 선정하였으나 당신이 시상식에 참가하지 못하셔서 동문들 모두 서운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안타깝게도 미국에서 수술을 받으신 후 첫 겨울을 오키니와에서 요양 하고 계셨다지요. 모교에는 항상 많은 후원을 해주셨고 특히 동창회관 건립 시 어렵게 지원을 부탁 드렸을 때도 거금을 쾌척해 주셨고요, 제가 보잘 것 없는 책 ‘할아버지가 꼭 보여주고 싶은 서양명화 101점’을 출간했을 때도 이회장 스타일로 저를 크게 격려해주셨지요. 항상 감사한 마음을 마음속에 담고 있습니다.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최고의 선물은 포도주라고 합니다. 그런데 맛과 향기가 생명이라고 알려진 이 신의 선물이 우리 국민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며 주요 기호품으로 자리 잡는 데는 이회장이 일등공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외 와인업계와 와인 애호가들은 항상 이회장이 국빈초대, 신년하례식, 회사의 기념식 등에 사용하는 와인을 알고 싶어 하고 심지어는 직원들을 격려하러 선물하신 와인들도 관심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그 와인들은 당연히 그해의 최고 인기 와인으로 자리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회장이 애주가 혹은 호주가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실상 회장께서는 와인을 많이 마시지는 않으시지요. 제가 뵙기로는 하루저녁에 한잔 이상 마시지는 않으시던데요. 그런데도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항상 곁에 두시고 많은 와인 애호가들과 친지들에게 귀한 와인을 맛볼 기회를 주시며 시간을 같이 즐기시더군요.

저는 이것을 당신이 베푸시는 또 다른 보시(布施)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회장께선 와인을 문화로 그것도 고급문화로 곁에 두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바빌로니아 남부의 수메르 지방을 포함하여 세계 중요문화 발상지에서 4,000-5,000년 전에 이미 와인을 마셨다는 기록이 발견된 것처럼 와인은 인류 문명과 같이 발생하고 또 진화해 온 것입니다. 와인은 음식이자 문화입니다. 사교와 비즈니스의 주요 키워드로 와인을 안다는 것이 세계화의 첫걸음이며 문화인, 교양인으로 또 글로벌 플레이어로 필수라고 일찍이 간파하시고 삼성의 직원들을 포함한 젊은 세대들을 교육 시켜 오신 것으로 보입니다.

1969년 삼성그룹이 전자산업에 진출하려고 정부에 사업승인을 신청했을 때 난리가 났었지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던 좌파성향의 경제학자들과 기존 전자산업체 60여개가 신문에 대형광고까지 내가면서 반대 했었지요. 그들의 주장은 본시 전자산업은 중소기업 몫이라 대기업이 진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올해로 삼성전자가 창립 50주년을 맞았지요. 만 50세가 된 한국의 자존심입니다. 삼성전자가 없는 대한민국을 상상도 할 수 없는 오늘 50년 전에 이 땅 의 불모지에 21세기의 기적 삼성전자를 심고 키운 삼성가(三星家)에 새삼 경의를 표합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큰일 날 뻔 했습니다. 한 선각자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실감 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 회장이 회장에 취임한 1987년 삼성그룹의 매출이 10조원을 조금 밑돌았는데 이제 400조원에 상회하는 놀라운 성장을 달성하였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젊은 선장 在鎔군의 어깨가 무거울 것이라며 근심 어린 성원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세요. 당신이 선대 회장의 어깨 너머로 인생과 사업을 배웠듯이 당신의 어깨너머로 배운 在鎔군 또한 훌륭하게 아버지를 능가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미래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려는 당신의 야심은 훌륭하게 계승되고 있습니다. 최근 인터브랜드(Interbrand)가 발표한 글로벌 100대 블랜드(Brands))에서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가 지난 5년간 계속 늘어나 올해 611억불로 세계6위에 랭크되었다고 발표 했는바 상위 5위까지를 석권한 미국을 제외 하면 독일 일본 등을 제치고 당당히 세계에서 1등이랍니다. 재용군을 보면 호부무견자(虎父無犬子)란 말이 떠오릅니다. 훌륭한 아버지를 둔 훌륭한 아들입니다.

게다가 그의 행동거지는 언제 어디에서 보아도 공손하여 부자 집 아드님 이 라기 보다는 양가 집 아드님입니다. 좋은 교육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또한 두 분 따님들도 훌륭한 경영자로 성장했고 무엇보다도 이들 뒤에는 당신의 보물인 어머니 홍 라희 여사가 든든한 버팀목으로 지켜 주시고 계십니다.

나는 1941년생이고 당신은 1942년생이나, 당신이 정월 생이라 같은 신사생(辛巳生) 라고 홍 여사께서 언제 말씀하시데요. 어쨌든 우리 지금 모두 80고개를 넘어가고 있고 많은 친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공평한 것은 누구나 나고 또 죽는 다는 엄연한 현실이 증명하고 있지요. 오래된 티베트의 속담처럼 우린 지금 내일(來日)을 먼저 맞게 될지 내생(來生)을 먼저 맞게 될지 장담 못할 나이에 와있습니다.

그저 신의 섭리에 맡길 수밖에 없도록 인간은 그렇게 약한 존재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래도 이 회장은 잊으시면 안 됩니다. 당신은 항상 우리들의 상상 이상을 생각해 내고 또 이루어 내는 사람 아닙니까? 우리 모두 이회장이 툭툭 털고 일어나 삼성이 지향하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의 대업을 위해 계속해서 매진(邁進)해 주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끝으로 이회장과 동시대에 태어나서 같은 학교에서 공부 할 수 있었던 인연에 감사하고 또 많은 기회는 아니었으나 같이 교유 할 수 있었음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회장, 순 한국식 표현으로 응원합니다. Figh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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