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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치워 번 돈, 장학금으로…71살 할머니의 값진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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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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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딛고 일어선 클린하우스 지킴이 이유순씨의 삶 책 4300권 기부 이어 모교에 5000만원…"행복합니다"

공공근로자 이유순 할머니(71·제주 서귀포시)가 지난 26일 제주 서귀포여자중학교에 장학금 5000만원을 기부한 뒤 재학생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서귀포여자중학교 제공) /© News1
공공근로자 이유순 할머니(71·제주 서귀포시)가 지난 26일 제주 서귀포여자중학교에 장학금 5000만원을 기부한 뒤 재학생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서귀포여자중학교 제공) /© News1
(서귀포=뉴스1) 오미란 기자 = "한숨도 못자고 갔지. 정말 꿈 이루는 날이라 그랬는지…."

제주 서귀포시 서귀동에 사는 이유순 할머니(71)는 모교인 서귀포여자중학교를 방문했었던 지난 26일을 떠올리며 쑥쓰러운 듯 주름진 두 손을 연신 매만졌다.

형편이 어려운 후배들을 위해 10년간 클린하우스(분리수거함) 지킴이와 공공기관 청소, 잔디 관리와 같은 공공근로를 하며 모은 5000만원을 장학금으로 내놓던 날이었다.

물론 이 날이 오기까지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음에도 생활비를 뺀 월급에 국민연금, 기초연금까지 끌어모아 해마다 500만원씩 꼬박꼬박 저금해 온 그다. 강산이 한 번 바뀌는 동안 한 해도 거른 적이 없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이 할머니는 그저 스쳐가듯 "인생의 마지막 숙제였달까…"라는 짧은 말만 내뱉을 뿐이다.

지난 28일 제주 서귀포시 서귀동 자택에서 만난 공공근로자 공공근로자 이유순 할머니(71·제주 서귀포시).2020.10.28 /뉴스1 © News1
지난 28일 제주 서귀포시 서귀동 자택에서 만난 공공근로자 공공근로자 이유순 할머니(71·제주 서귀포시).2020.10.28 /뉴스1 © News1

서귀포시 송산동에서 6녀2남 중 일곱째로 태어난 이 할머니는 5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줄곧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다.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형편이었던 탓에 8남매에게 학교는 일종의 사치였지만 이 할머니 만큼은 예외였다. 유독 공부를 잘해 손위 남매들의 도움으로 중학교까지 다닐 수 있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지게를 짊어지고 이 산 저 산으로 나무를 하러 다녔다. 당시로서는 어떻게든 집안에 금전적으로 도움이 돼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 수록 공부에 대한 갈망은 커져만 갔다. 이 할머니는 "저멀리 고등학교 교복을 곱게 차려 입은 친구들이 보일 때면 부럽고 창피한 어린 마음에 황급히 나무 뒤로 몸을 숨기고 숨죽여 울곤 했다"며 쓴 웃음으로 지난 날을 돌아봤다.

결국 이듬해 1월 이 할머니는 홀로 부산으로 향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남의 집 식모살이라도 하며 고교 학비를 벌 작정이었다. 그렇게 열 달 뒤 돈을 벌고 제주로 돌아왔지만 애석하게도 그 돈은 또 고스란히 집안 뒷바라지에 쓰이고 말았다.

그래도 이 할머니는 오빠를 따라 투포환 선수가 되면서 서귀포여자고등학교와 신성여자고등학교에 차례로 진학할 수 있었다. 당시 제주도 학생부 대표로 전국학도체육대회에 출전할 정도로 기량이 뛰어났지만 이마저도 여러 문제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

이 할머니는 "꿈 많던 소녀였는데 가난이 계속 발목을 잡으니 이런저런 곡절이 많았을 수밖에… 그 사이 '이젠 엄마를 행복하게 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 갔다"고 했다.

공공근로자 이유순 할머니(71·제주 서귀포시)가 잔디 관리 작업 중 잠시 장갑을 벗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이유순 할머니 제공) /© News1
공공근로자 이유순 할머니(71·제주 서귀포시)가 잔디 관리 작업 중 잠시 장갑을 벗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이유순 할머니 제공) /© News1

20대가 된 이 할머니는 닥치는 대로 일하기 시작했다. 오로지 가족을 위해서였다. 오일장의 장돌뱅이를 자처하며 쌀이나 과일, 그릇, 약통 등을 이리저리 팔러 다녔고, 한 때는 장대한 기골과 굵직한 목소리를 뽐내며 깨나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홀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난 29살 때는 별다른 목표 없이 방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할머니는 오히려 이 때가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했다. 남은 인생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도우며 살겠노라 다짐했던 때가 바로 이 때였다고 한다.

그렇게 수십 년간 도움이 필요한 곳에 수시로 돈을 쪼개어 주며 살던 이 할머니가 정기적으로 기부를 하기 시작한 건 고정적으로 국민연금을 받을 때부터였다.

국민연금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꾸준히 모아 2년에 한 번씩 평소 존경하는 테레사 수녀의 삶이 담긴 책을 사 제주 고등학교 곳곳에 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기부한 책만 4300권이 넘는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이 할머니는 한 지인으로부터 '책 보다는 장학금이 학생들에게 더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고 곧바로 10년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매년 500만원씩 총 5000만원을 모아 모교인 서귀포여중에 기부하겠다는 꿈이다.

그 꿈이 이뤄진 지난 26일 서귀포여중에서 가장 먼저 이 할머니를 반긴 것은 '선배님의 고귀한 사랑, 후배들이 잘 이어 가겠습니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었다. 그 뒤로 모습을 드러낸 재학생들의 감사 인사는 그를 가슴 뭉클하게 했다.

이 할머니는 "앞으로 10년간 매년 모교를 방문해 학생들에게 직접 장학금을 주기로 했다. 행복하다"고 활짝 웃으며 "학생들도 만나며, 재밌게 일도 하며, 취미인 시도 쓰며 남은 인생을 멋지게 살아가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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