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속보
통합검색

800조 삼성 곳간 열쇠, 당신에게 맡긴다면[오동희의 思見]

머니투데이
  •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 카카오톡 공유하기
  • 카카오톡 나에게 전송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 카카오스토리
  • 텔레그램
  • 문자
  • 2020.11.02 05:30
  • 글자크기조절
  • 댓글···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일등공신 이건희 회장이 지난달 25일 향년 78세를 일기로 영면한 가운데 고인의 상속재산을 두고 상속세율 논란이 뜨겁다.

 고인은 삼성전자 주식 등 18조원가량(리움 등 개인소장 국보급 미술품 등 제외)을 유산으로 남기고 떠났다. 매일 1000만원씩 써도 4931년 이상 쓸 수 있는 규모다.

 고인이 남긴 18조원의 가치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화폐의 숫자와는 다른 의미와 상징성을 갖는다.

칼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라는 책에서 “(상품소비) 욕구가 위장에서 나오는가, 또는 환상에서 생기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그 물건(화폐 포함)의 유용성은 그 물건으로 하여금 사용가치가 되게 한다”고 말했다.

사용가치로서의 식품은 배고픔 등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인데 반해, 경영권 비용이라는 상품의 가치는 배고픔과는 다른 ‘기업가 정신’이라는 욕구를 충족시킨다.

직장인 A씨에게 18조원은 매일 1000만원씩 4900년 이상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는 돈일 수 있지만 기업가 이건희에게 18조원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을 잘 관리하기 위한 ‘종갓집 곳간’ 열쇠의 의미였다.

 고인은 이 열쇠를 쥐고 1987년 삼성 회장에 오른 후 2020년까지 33년간 ‘우리나라의 자랑이 된’ 삼성이라는 그룹의 곳간을 지킨 맏며느리 역할을 했다.

 그는 1987년 현대와 대우에 이어 재계 3위(자산 5조8880억원, 계열사 36곳)였던 삼성의 곳간 양식을 803조원(2019년 말 기준 금융그룹 포함)까지 늘렸다.

 간혹 정치권 관리들이 곳간 양식을 탐해 곤욕을 치른 적도 있지만 고인은 재계 1위, 글로벌 톱 기업으로 성장시킨 선관주의 의무에 충실한 관리자였다. 한솔·CJ·신세계그룹 등을 분가시키고도 이룬 성과다.

 현재 상속세 논란은 대주주의 상속세율이 일반 개인과 달리 최고 60%로 과도하다는 데 집중돼 있지만 더 큰 문제는 높은 상속세율로 인해 삼성 곳간의 열쇠를 더 대규모 자본인 외국계 등 다른 쪽에 넘겨줘야 할 수도 있다는 데 있다.

 전통사회에서 종손이 물려받은 종갓집 곳간 재산은 종손 개인의 몫이 아니다. 종가 공동의 재산을 잘 관리하고 이를 잘 불려서 다음 세대에 물려주라는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부여하고 곳간 열쇠를 맡기는 것이다.

 상속세 논란의 핵심도 상속재산의 절반 이상을 상속세로 낸 후 삼성그룹의 곳간을 안정적으로 잘 관리·운영하는 환경이 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선친만큼은 안 되지만 현행법대로 상속세를 다 내고도 하루 1000만원씩 2000년 이상 쓸 돈이 있고 후대에 남길 만큼의 부가 있다.

 다만 이 돈의 성격은 생활에 쓰는 그런 가치의 돈이 아니라 곳간을 더 키우는 열쇠의 역할을 부여받은 자본이다. 그 열쇠가 약해질 때 곳간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약 803조원의 삼성그룹 자산이 담긴 곳간을 지키는 열쇠를 누군가는 쥐어야 하고 가업승계를 한 이가 월급을 받는 대리인보다는 더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것이다. 종갓집 종손의 책무와 명예가 있기 때문이다.

 고인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작은 기업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고 수만 명의 일자리에서 수십만 명의 일터로 성장시키는 금고지기 역할을 했다.

 이제 그 역할을 이 부회장이 맡을 상황에서 상속세 최고 명목세율 60%가 곳간의 열쇠를 뺏는 일이 아니기를 바란다. 단순히 상속세를 줄여주라는 게 아니라 가업승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라는 얘기다. 황금주를 도입하든, 상속세 연납기한을 늘리든 가업승계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삼성은 법에 따라 상속세를 낸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사회 일각에서 삼성의 의사와 무관하게 상속세 논란이 있는 것은 이 부회장의 상속세가 개인을 넘어 삼성, 더 나아가 국가 경제의 향배와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재벌총수 상속세를 걱정해준다고 비아냥거리며 무시할 사안은 아니다.

 기업가 가문에서 자라났고 그 자식에게는 그 길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한 기업가가 선량한 관리자로서 제대로 기업을 운영해 국가 경제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몫이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 오동희
    오동희 hunter@mt.co.kr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기자의 다른기사

칼럼목록

종료된칼럼

오늘의 꿀팁

  • 날씨
  • 건강쏙쏙

많이 본 뉴스

부동산 유튜브 정보채널 부릿지
부꾸미

포토 / 영상

머니투데이 SERV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