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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와 숀 코너리[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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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1.0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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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링컨 리무진이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유족을 태운 대형 전세버스와 카운티버스가 뒤를 따른다. 여느 장례식장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운구 행렬이다. 몰려든 취재진과 추모객의 규모를 제외하면 범부의 마지막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면에 든 이는 한국 최고 갑부였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올해 낸 소득세와 주민세만 1860억원으로 추정된다. 2019회계연도 배당소득 4747억원에 대한 세금이다. 여기서 추가로 막대한 지방소득세와 건강보험료를 냈을 것이다.

절대적인 금액으로는 이건희 회장과 비교를 할 수 없겠지만,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 부장도 매달 상당한 금액의 세금을 제외한 월급이 통장에 찍힌 걸 확인한다. 재벌 회장이나 월급쟁이나 나름의 무게로 신성한 납세의 의무를 이행한다.

기업은 기업대로 책무를 다한다. 삼성전자에서는 임직원 10만5000여 명이 저마다 자신의 달란트를 행사한 대가를 가져간다. 그 대가가 충분한지 문제를 제기할 사람도 있겠지만, 임직원 대부분은 봉급을 기반으로 중산층에 진입했거나, 진입할 확률이 높은 이들이다.

삼성전자는 법인세로만 2018년 11조5000억원, 2019년엔 3조9000억원을 냈다. 또 이건희 회장에게 돌아간 배당보다 훨씬 많은 5300억원을 한 해 동안 사회공헌에 썼다. 이 돈은 모두 미래를 위해 공공사업에 투자되거나, 약자를 위해 재분배됐다. 따라서 가족 중에 삼성에 다니는 이가 없더라도 우리가 사회 구성원이라면 삼성의 존재로 혜택을 받는다 할 수 있다. 현대차도, SK도, LG도, 김 부장이 다니는 중소기업이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세금을 통해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시켜 나가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이건희 회장 사후 논란이 된 상속세가 그 역할을 한다. 이 회장의 주식 18조원 가운데 11조원은 상속세로 국가에 헌납해야 한다. 나라의 중기재정계획을 다시 짜야 할 규모다. 경쟁국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세율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의를 해 볼 필요가 있는 게 분명하지만 이렇게 부의 세습을 조절하는 장치가 없다면 우리 사회에 새로운 카스트제도가 등장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당연한 납세의 의무가 당연하게 와 닿지 않은 이들도 있다. 해외에서는 세금 때문에 나라를 등지는 게 부자들 사이에 유행이었다. 프랑스 국민배우 제라르 드빠르디유와 미국 액션스타 스티븐 시걸은 세금을 이유로 러시아로 망명했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프랑스의 높은 소득세와 상속세가 싫다며 벨기에 국적을 신청하기도 했다. 얼마 전 타계 소식이 전해진 숀 코너리 역시 조세피난처 바하마에서 만년을 보낸 것을 두고 세금 때문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개인 차원의 조세저항이다.

전방위 증세가 이뤄지고 있는 한국에서는 집단적인 조세저항이 늘고 있다. 대주주 요건을 주식가치 3억원으로 낮추려 하자 개인 투자자들이 반발한 것도 조세저항이다. 생산인구 감소와 고령화, 저성장이 일상화한 상황에서 폭증하는 재정 수요를 충당하려면 이제 거위의 솜털을 뽑는 것처럼 소리없이 세금을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를 확대하고, 기업 유보소득에도 과세를 하고, 부동산 관련 제반 세금을 더 늘려야 하는데 저항은 더욱 격렬해질 것이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증세가 미래를 대비하는 방법임을 설득하는 것이다. 그동안 청와대와 여당, 정부의 방식은 정공법이 아니었다. ‘부자증세’를 추진하면서 “99%는 세금이 늘지 않으니 안심하라”며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인 1%를 소외시켰다. 유동성 홍수로 자연스럽게 급등한 부동산에는 징벌적 조세, 죄악세를 부과했다.

세금 부과를 합리화하기 위해 ‘부는 사회악’이라는 전제를 강요하고 '나만 손해 안 보면 된다'는 다수의 이기심을 부추겼다. 하지만 세금은 탐욕에 대한 '패널티'이자 절대자의 '심판'이라는 인식을 확산하면서 저항을 꺾을 수는 없다. 거위를 침묵시키겠다고 거위의 배를 갈라서는 안된다.

영국의 앤디 머레이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고 올림픽에서 우승한 테니스 스타다. 그런데 그가 영국 언론으로부터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은 것은 세금망명을 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게 이유였다.

재벌 회장이나, 김 부장이나, 기업이나, 각자의 자리에서 납세의 의무를 이행하는 이가 영웅이다. 때려잡을 게 아니라 영웅 대접을 해야 한다.
임종철 디자인기자 /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임종철 디자인기자 /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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