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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농장에 남은 192마리…"살고 싶어요"[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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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1.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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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땅 개농장서 살린 개들, 계양구청은 불법이라며 나가라고만…시민 봉사자들만 살리려 '안간힘'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안 보였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계양산 개들과의 첫 만남. '널 먹으려 했던 사람과 같은 종족이야. 왜 그리 바라봐주니.' 이제야 어렵게 살았는데, 정말 어떻게든 살리고 싶어 네게로 갔다./사진=남형도 기자
계양산 개들과의 첫 만남. '널 먹으려 했던 사람과 같은 종족이야. 왜 그리 바라봐주니.' 이제야 어렵게 살았는데, 정말 어떻게든 살리고 싶어 네게로 갔다./사진=남형도 기자
개농장에 남은 192마리…"살고 싶어요"[남기자의 체헐리즘]
까만 눈동자들이 일제히 내게 쏠렸다. 한 녀석과 눈을 마주쳤다. 한껏 젖힌 귀, 온순한 눈, '멍멍' 하는 우렁찬 소리, 힘차게 움직이는 꼬리. 이게 무얼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와줘서 반가워요." 가까이 다가갔다. 앞발을 들어 두 발로 서고 난리가 났다. 쓰다듬어 줬더니 몸을 옆으로 하고 가만히 기댔다. 계속 쓰다듬어 달란 의미였다.

걸음마다 격한 환영을 받다 일순간 고개를 떨궜다. 문득 미안한 맘에 속이 시끄러웠다. '너희를 먹으려 했던 사람과 같은 종족이야. 그러니 미워해도 괜찮아. 갑자기 사라진 친구들이 있었잖아. 그게 다 사람 때문이었어. 근데 왜 이리 잘해주니.'

다정한 반김이 더 속상하고 슬펐던 날, 녀석들과 나의 첫 만남이 그랬다.

인천광역시 계양구 목상동 산 37번지. 이곳 계양산에 갈 곳 없는 개들 192마리가 있다고 해 찾아갔다. 원래 개농장이었고, 다 죽을 뻔했으나 동물보호단체 케어와 정(情) 많은 시민들이 겨우 살렸다. 지금은 개들을 돌보는 보호소가 됐다. 그러나 '개발제한구역'이라 계양구청은 위법이니 나가라 하는 상황. 당장 이 많은 녀석들을 옮길 부지도 없고, 비용도 많이 들어 벼랑 끝에 내몰려 있었다.



죽을 차례가 되어서만 뜬장을 나왔다


롯데가 빌려준 계양산 땅에 개농장이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서 있는 게 차라리 편했던 개들은, 때가 되면 도살장으로 갔다. 수십년 동안 그랬다./사진=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 페이스북
롯데가 빌려준 계양산 땅에 개농장이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서 있는 게 차라리 편했던 개들은, 때가 되면 도살장으로 갔다. 수십년 동안 그랬다./사진=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 페이스북

들여다 보니 꽤 오래된 이야기였다.

여긴 원래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1978년부터 소유하던 땅이었다. 1992년부터 이모씨 부부가 임대해 개농장을 운영해왔다. 300마리가 넘는 개들을 철로 된 뜬장에서 키웠다. 밑엔 구멍이 뚫려 배설물만 빠져나갔다. 그러니 차마 편히 앉지도 못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서서 삶을 버텼다. 죽을 차례가 됐을 때만 바깥에 나왔다. 도살장에서 고기가 되는 날이었다.

그러다 2015년 전후로 계양구청에 민원이 들어왔다. 짖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등 내용이었다. 사실 이 땅은 개발제한구역이라, 이씨 부부가 20년 넘게 불법으로 개농장을 하던 것이기도 했다. 구청은 2017년부터 철거하라 압박했다. 올해 8월 말까지 유예 기간을 줬다.

개농장을 없애는 과정에서, 300여마리의 개들이 죽을 위기에 처했다. 바삐 도살장에 보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구해야 했다. 동물보호단체인 케어와 150여명의 시민들이 나섰다. 그 과정에서 미국에 있는 한 복지가가 3300만원을 이씨 부부에게 지불하고, 개들을 그만 죽이도록 막았다. 몸을 내던져 구해낸 셈이었다.

비로소 보호가 시작되었다. 뜬장에서 나온 녀석들은 초록 펜스 안으로 들어갔다. 무척 좁았으나 이제야 편히 누울 수 있었다. 시민 후원으로 사료와 간식도 먹고, 깨끗한 물도 마셨다. 병원이란 곳도 가보게 됐다. 치료도 받고 접종도 했다. 사설 위탁처도 보내고 해외·국내에 입양도 갔다. 살기 위한 시간을 보내는 건 처음이었다.

그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살고 싶고 살 수 있는 개 192마리가, 개농장이 사라진 보호소에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감정 없는 법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계양구청은 유예 기간이 끝났으니 나가라고 압박했다. 펜스를 치는 것도 불법이라 했다. 행정 처분에 나섰고, 이행강제금과 형사 고발도 진행될 예정이다. 그게 현재 처한 상황이었다.



"나도 인사해줘", 아주 난리였다


시민들과 동물단체 도움으로 뜬장에선 구했으나, 옮겨진 펜스 안은 여전히 너무 좁았다. 걸어다니는 와중에도 밥그릇, 물그릇이 밟혔다. 더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시민들과 동물단체 도움으로 뜬장에선 구했으나, 옮겨진 펜스 안은 여전히 너무 좁았다. 걸어다니는 와중에도 밥그릇, 물그릇이 밟혔다. 더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사진=남형도 기자
13일 오전 10시, 계양산에 도착했다. 아이들 밥과 물을 챙겨주며 하루 봉사할 계획이었다. 평일엔 봉사할 사람이 부족하다고 해서 보탬이 되고 싶기도 했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보호소가 나왔다. 입구에서 정호진씨(23), 강진구씨(23)와 인사했다. 친구인 둘은 아르바이트로 이 일을 시작했다. 봉사자들이 없을 때도 녀석들 밥과 물을 챙겨주기 위해, '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에서 고용한 거였다. 정씨는 "저희도 개를 좋아해서 시작했는데 보람도 있고 좋다"고 했다.
뜬장에 들어가봤다. 앉으려 하니 좁다란 철창이 엉덩이를 들쑤셨다. 너무 불편한 이곳에 개들이 살다 도살장으로 갔다. 당신들도 들어와 보라./사진=남형도 기자
뜬장에 들어가봤다. 앉으려 하니 좁다란 철창이 엉덩이를 들쑤셨다. 너무 불편한 이곳에 개들이 살다 도살장으로 갔다. 당신들도 들어와 보라./사진=남형도 기자
개농장이었음을 알리는 흔적이 먼저 눈에 띄었다. 이제는 비워진 뜬장이었다. 무릎 높이로 녹슨 철창이 떠 있고, 정사각형 모양 구멍이 일정하게 뚫려 있었다. 좁다란 공간에 들어가 쭈그리고 앉아봤다. 몹시 불편했다. 개들이 왜 서서 지낼 수밖에 없는지 금세 깨달았다. 차라리 그게 편한 거였다. 안에서 바닥을 보니 변을 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았을지.

좀 더 올라가니 개들이 있는 곳이 나왔다. 한 마리도 없는 것처럼 조용하더니, 셋이 들어가니 192마리가 난리가 났다. 반갑다고, 좋다고, 어서 오라고 바라보는 눈빛과 몸짓들이 과분했다. 식용견이라고 별다른 게 아니라, 그냥 사람 좋아하는 똑같은 개였다.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인사했다. "안녕"이라고 했지만 속으론 '많이 힘들었지'라며 되뇌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 녀석을 쓰다듬으면 옆에 녀석이 짖고 난리가 났다. 표정을 보니 "나도 인사해줘, 나도!"하는 것 같아서 양손으로 하나씩 같이 어루만졌다. 그러니 신기하게 조용해졌다. 정씨는 "원래는 사람만 봐도 무서워했는데, 몇 달 동안 돌보니 이렇게 좋아한다"고 했다. 서로 언어가 달라도 진심은 그리 전해지는 거였다.



고작 한 끼도 편히 주지 못하고


'너희들이 먹어야 할 밥은 음식물 쓰레기가 아니라 이거였어. 많이 먹으렴.' 그러나 밥을 주기도 힘든 환경이 속상했다./사진=남형도 기자
'너희들이 먹어야 할 밥은 음식물 쓰레기가 아니라 이거였어. 많이 먹으렴.' 그러나 밥을 주기도 힘든 환경이 속상했다./사진=남형도 기자
들어가 맘껏 품에 안고 싶었건만, 그럴 수도 없었다. 철제 펜스 안이 너무 좁아서였다. 불법이라 하니, 눈치보며 겨우 마련한 공간이라 어쩔 수 없었다. 한 녀석씩 들어가 있는데 드나들 문도 없었다. 그러니 밥을 주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우선 사료 포대를 뜯어 붓고, 양고기 간식도 함께 섞었다. 강씨는 "아이들이 음식물 쓰레기 같은 걸 오래 먹어서 이렇게 만들어 준다"고 했다. 큰 수레 몇 개에 사료와 간식을 담고 고루 잘 비볐다. 이미 녀석들 눈빛이 나를 향해 뜨겁게 불타올랐다.

이제 밥을 줄 차례였다. 펜스 안에 나뒹구는 밥그릇을 앞으로 끌어당긴 뒤, 위에서 잘 조준해 사료를 부으면 된다고 했다. 수레가 움직이니 밥 달라고 난리가 났다. 하루 한 끼니 그럴 만도 했다. 강씨가 막대기로 밥그릇을 당기면, 내가 펜스 위로 손을 넣어 사료를 조심조심 부었다. 생각처럼 쉽지 않아 땅바닥에 떨어지기도 했다. 붓고 있는데 허겁지겁 먹는 아이도 있었다.

그리 192마리에게 밥을 건넸다. 다 마치고 나니 2시간이 넘게 걸렸다. 봉사자가 많이 필요하겠다 싶었다. 땀이 비 오듯 났다. 점퍼를 아예 벗어 던지고 반팔티만 입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맛있게 먹는 녀석들을 볼 땐 좋았지만, 고작 이 한 끼도 맘 편히 줄 수 없는 상황에 속상했다. 이제야 뜬장서 어렵게 구했고, 불법인 땅에서 힘겹게, 그마저 시민들 노력 덕이니 그랬다. 더 나은 환경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순식간에 텅 빈 밥그릇을 보며 더 줄 수 없음에 맘 아팠다.



그릇의 때를 깨끗이 벗기고


설거지는 내 전문 분야다. 더 하러 가겠습니다./사진=남형도 기자
설거지는 내 전문 분야다. 더 하러 가겠습니다./사진=남형도 기자

밥을 다 주니 비로소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점심시간이 됐다. 강씨와 정씨는 "점심 먹기가 마땅찮아서 삼각 김밥을 사 오거나 보통 그냥 굶는다"고 했다. 계양산 안에 있으니 그럴 법도 했다. 함께 굶겠다고 하니 커피 하나를 건네줬다. 천천히 마시며 땀을 식히며 한숨을 돌렸다.

쉬면서 개들이 지내온 이야기를 들었다.

정씨는 뜬장에 있을 때부터 돌봐왔단다. 케어와 시민 봉사자들과 함께 꺼내줬지만, 그 과정에서 죽은 녀석들도 꽤 있었단다. 기억에 남는 일도 있었다. 정씨는 "입양을 보내려 따로 빼놓은 새끼가 있었는데, 엄마랑 떨어지니 많이 울었다"며 "마음이 아파 만져주면 좋아서 조용하다가, 뜬장 문을 닫으면 다시 울고 그랬다"고 회상했다.

들을수록 먹먹했던 건 지나온 과거 때문만은 아녔다. 여전히 불편하게 지내고 있기에, 앞날을 알 수 없기에 더 그랬다. 나란히 앉은 셋은 "애들을 빨리 꺼내주고 싶다. 더 좋은 곳에 보내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했다. 그러니 가까운 날에 정말 그리될 것처럼 맘이 조금은 나아졌다.

이어 더러워진 그릇들을 말없이 벅벅 씻어냈다. 수세미로 닦고 호스로 시원하게 부어 헹궈냈다. 반짝반짝해진 걸 보며, 녀석들의 나쁜 기억도 이리 씻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들은 우연히 그곳에서 태어난 죄(罪) 말곤 없었으므로.



경쾌한 합창 같았던, 물 마시는 소리


개들에게 물 주는 기자. '많이 목 말랐지, 물 먹자.'/사진=계양산 개들을 돌보는 대학생들.
개들에게 물 주는 기자. '많이 목 말랐지, 물 먹자.'/사진=계양산 개들을 돌보는 대학생들.

깨끗한 그릇을 가지고 다시 녀석들에게 갔다. 이제 물을 줄 차례였다. 정씨는 "물 주는 건 밥 주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며 겁을 줬다.

그도 그럴 것이 물뿌리개에 물을 가득 넣은 뒤, 반복해서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아까처럼 큰 수레에 물을 담을 수 없어서였다. 정씨가 깨끗한 물그릇을 바닥에 떨어트리면, 내가 펜스 틈새로 물뿌리개를 넣어 물을 콸콸 부었다. 다섯 녀석에게만 줘도 금세 동이 났다.

많이 목말랐던 모양이었다. 물이 다 차는 걸 못 기다리고, 물줄기에 혀를 넣어 벌컥벌컥 마시는 녀석들이 많았다. 여럿이 함께 물을 튕겨 들어 올리는 소리가 마치 경쾌한 합창 같았다. 샘물을 손가락으로 통통 굴리는듯 청명한 소리였다. 귀 기울이고 있으니 하루 내 복잡하고 피로했던 마음이 맑아지는 듯했다.
금세 비운 물그릇은 뒤집히거나 안쪽에 가 있기 일쑤였다. 막대기로 그걸 끌어와 물을 다시 채워줬다. 펜스 위쪽이 뾰족해 그 과정에서 팔에 상처가 많이 났다. 아픈 것도 잊고 있다가, 물을 한 번씩 다 준 뒤에야 눈에 들어왔다. 빈 그릇에 물을 한 번이라도 더 주려고 분주히 돌아다녔다. 내일까지 또 버텨야 하니까, 그런 생각에 멈추기가 힘들었다.
가는 걸음마다 이렇게 좋다고 난리였다./사진=맘아픈 남기자
가는 걸음마다 이렇게 좋다고 난리였다./사진=맘아픈 남기자

오후 3시, 어느새 돌아갈 시간이 됐다. 밥과 물을 먹은 아이들은 조금은 나른한지 깔아둔 볏짚에 기대 누웠다. 좁다랗고 고요한 밤을 보낼 녀석들이 상상돼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일없이 구석구석 녀석들을 돌아보며 인사를 했다. 또 오겠다고, 잘 지내라고. 안녕(安寧)이란 말은 아무 탈 없이 편안하단 뜻이라고, "안녕, 안녕"하고 꾸벅꾸벅 조는 녀석들에게 중얼거렸다.



비 오는 데 천막도 못 치게 막았다


비가 오니 땅바닥에 물이 사정없이 고였다. 이제야 좀 편히 누웠었던 개들은 다시 일어나야 했다./사진=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
비가 오니 땅바닥에 물이 사정없이 고였다. 이제야 좀 편히 누웠었던 개들은 다시 일어나야 했다./사진=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

돌아온 뒤엔 하루도 맘 편한 날이 없었다. 매일 달려가고 싶은 시간이었다. 오픈 채팅방에 모인 150여명의 시민들도 같은 맘이었다. 함께 이야길 나누고, 방법을 생각하고, 긴 한숨을 쉬었다.

비가 많이 온단 이야기에 다들 맘이 바빠졌다. 지붕도 없고, 아무것도 막아줄 게 없으니 개들이 비를 다 맞을 수밖에 없어서였다. 채팅방에선 걱정과 함께 "천막을 쳐야겠다"는 계획이 오갔다. 이곳에서만 나눈 이야기들이었다.

그런데 그 안에 봉사자를 가장하고 있던 누군가에 의해, 계양구청 도시재생과 개발제한구역관리팀 공무원들에게 정보가 흘러갔다.

봉사자들이 천막을 치러간 날, 이미 알고 온 구청 공무원들이 천막을 못 치게 막았다. 누군가 민원을 넣었다고 했다. "192마리가 비를 다 맞으란 얘기냐"는 항의에도 소용없었다. 불법이고, 본인들은 막는 것 뿐이란 대답뿐이었다. 천막 천만 겨우 펜스에 덮어 놓았다.
비가 퍼붓던 날, 죽은 것처럼 숨만 붙어 있던 녀석. 속상한 봉사자들은 맘 아파 울었다./사진=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
비가 퍼붓던 날, 죽은 것처럼 숨만 붙어 있던 녀석. 속상한 봉사자들은 맘 아파 울었다./사진=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

수요일(18일)부터는 비가 많이 쏟아졌다. 천막을 제대로 못 친 터라, 펜스 안엔 비가 속수무책으로 들이쳤다. 땅바닥에 물이 사정없이 고였다. 잠시나마 편히 지냈던 개들은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뜬장에서 지냈던 그때처럼. 죽은 듯 움직이지 않는 아이도 있었다. 숨만 겨우 붙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앞에서 봉사자들은 울었다. 안타깝고 속상하고 맘이 아파서.
비가 퍼부었고, 이젠 너무 추워졌다. 겨울이 온다. 그러나 녀석들은 갈 곳이 없다./사진=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
비가 퍼부었고, 이젠 너무 추워졌다. 겨울이 온다. 그러나 녀석들은 갈 곳이 없다./사진=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

해가 지고 컴컴한 밤이 되도록 봉사자들은 볏짚을 깔았다. 늦은 끼니와 물을 챙겨주며 그곳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핸드폰 불빛에 기대어 외롭고 힘든 녀석들을 달랬다. 누구는 퇴근하고 달려가겠다 했고, 또 누구는 이 상황을 SNS며 커뮤니티에 알렸다. 칠흑 같은 공기 속에서 마음만은 환히 빛났다.



계양구청장님, 보고는 받으신다는데…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먹먹했다. 불법만 얘기할 게 아니라 대책을 생각해야 할 게 아닌가.

박형우 계양구청장에게 전화했다. 비서실이 받았다. 계양산 개들 이야길 하며 연결해달라고 했다. 안 해줬다. 연관된 실무 부서(도시재생과 개발제한구역관리팀, 환경과 오수관리팀)를 통해 해결하란다.

박 구청장이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관련 사안은 다 보고를 받고 있단다. 상황을 다 알고 있단 얘기였다.

구청 홈페이지를 통해 박 구청장 일정을 파악했다. 다른 행사긴 했으나 직접 만나려니 방도가 없었다. 인천에 갔더니 박 구청장은 사정이 생겨 못 오고, 이승학 부구청장이 왔다. 행사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그에게 계양산 개들에 대한 해결책을 물었다.

대답은 이랬다. "불법 시설이고, 유기견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식용견으로 키우고 있는 것이고 소유자도 있지 않느냐." 그 말에 "지금은 소유자도 없고, 개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반박했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얘기만 돌아왔다. 행사 중이라면서 다른 관계자가 막아섰다.



보호하고 있어도, '보호 동물'은 아니라는 계양구청


이미 90여마리는 사설보호처로 보내거나 입양을 보내 살렸다. 아직 192마리가 남았다. 시간과 비용, 대책이 필요하다. 살릴 수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썼다./사진=남형도 기자
이미 90여마리는 사설보호처로 보내거나 입양을 보내 살렸다. 아직 192마리가 남았다. 시간과 비용, 대책이 필요하다. 살릴 수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썼다./사진=남형도 기자

어떻게든 해결 방안을 찾고 싶어 계양구청 실무진롯데지주(상속인이 땅 소유) 측 입장을 들어봤다.

롯데지주 관계자는 "상속인 분들에게 사안에 대해 설명을 드렸고, 다른 방안들이 있는지 검토를 해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계양구청 도시재생과 개발제한구역관리팀(불법 행위 단속 역할) 주무관은 "가슴으론 이해하지만, 불법 행위에 대해 눈감아줄 순 없는 입장"이라 했다. 법 앞에선 평등하고 누군 봐주고 누군 봐주지 않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는 얘기였다. 유예 연장에 대해서도 충분히 시간을 줬다고 했다. 시정 명령은 내렸고, 향후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고, 고발할 계획이란다.
계양구청은 계양산 개들이 당초 가축사육 목적이라 '유기견 보호소'는 아니라고 했다. 계양구청이 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에 보낸 공문 중 일부./사진=시민모임
계양구청은 계양산 개들이 당초 가축사육 목적이라 '유기견 보호소'는 아니라고 했다. 계양구청이 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에 보낸 공문 중 일부./사진=시민모임

계양구청 환경과 오수관리팀은 계양산 보호소가 "가축분뇨 배출시설임에도 신고하지 않았다"며 행정 처분을 하겠다고 나섰다. '유기견 보호 시설'은 가축분뇨 배출시설에서 제외한다는 환경부 유권해석(한나네 보호소 사례)이 있지만, 해당 팀 팀장은 케어 측과 면담에서 "육견 사업을 포기했어도 보호 동물은 아니다"라고 했다.

먹기 위해 태어난 개들이니, 애써 구하고 살리기 위해 노력해도 보호 동물도 보호 시설도 아니란 걸까.그곳에서 사료와 물을 주고, 천막을 치고, 아픈 녀석들을 꺼내어 치료하고, 돌보다 입양을 보내는 애씀과 노력은 다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자세히 듣기 위해 해당 팀장과 19일 오전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이 아예 되지 않았다.



개고기가 될 뻔한 아이들입니다


뜬장에서 태어난 안소니의 어린 시절. 뭣모를 때라 그런지 표정마저 밝아 슬프다./사진=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
뜬장에서 태어난 안소니의 어린 시절. 뭣모를 때라 그런지 표정마저 밝아 슬프다./사진=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

개고기가 될 뻔했던 녀석들 이야기를 해야겠다. 과연 그 논리대로 '보호 대상''식용견'을 가를 수 있는지 봐달라.

눈 떠보니 뜬장이었다. 두 마리 모두 그랬다. 개고기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 새끼 때부터 뜬장에서 서 있는 연습을 했다. 다행히 2~3개월 무렵 구조가 됐다. 뜬장을 나왔다. 예방 접종도 받고, 보호를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이름이 생겼고, 이를 매일 다정히 불러줄 사람들도 있었다. 활발하고 애교 많은 녀석은 안소니, 얌전하고 차분한 녀석은 레이건이라 정했다.

7~8개월쯤 되었을 때 마침내 새 삶을 찾게 됐다. 해외로 입양 가게 된 것이다. 그 전에 목욕재계. 16일 오전 녀석들을 목욕시켜줄 봉사자를 찾는다고 했다. 둘을 씻겨야 하는데, 평일이라 구하기가 마땅찮았다. 만나고 싶기도 하고 도움도 필요한 것 같아 자원해서 간다고 했다. 인천으로 다시 향했다.
안소니 생애 첫 목욕, 뽀송뽀송 씻자. 조금만 얌전히 있어주렴./사진=옷이 다 젖은 남기자
안소니 생애 첫 목욕, 뽀송뽀송 씻자. 조금만 얌전히 있어주렴./사진=옷이 다 젖은 남기자

푸른 두 눈에 빠져들 것처럼 매력적이었던 멋진 녀석들, 그게 첫인상이었다. 안소니는 어찌나 활발한지, 반갑다고 난리가 났다. 다른 봉사자 3명과 낑낑대며 케이지에 넣고, 반려견 셀프 목욕시설로 향했다. 내 차 뒷좌석에 안소니를 태웠고, 조수석 의자를 뒤로 당겨 움직이지 않게 고정시키고, 아주 얌전하게 운전을 했다.

생애 첫 목욕은 쉽지 않았으나 개운했다. 향이 좋은 비누를 벅벅 칠해 구석구석 긁어줬고, 따뜻한 물로 시원하게 씻어냈다. 아직 닦지도 않았는데 털을 시원하게 털어 옷이 흠뻑 젖었다. 그래도 다 같이 웃었다. 레이건은 들어오자 마자 긴장했는지 응아를 했다.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걸 기다려주고, 힘껏 들어 올리고, 겨우 씻겼다. 그리고 드라이를 하고 뽀송뽀송하게 말렸다.
이렇게 예쁜 녀석이었다. 예쁘지 않아도 그냥 그 자체만으로 귀한 거긴 하지만./사진=하트뿅뿅 남형도 기자
이렇게 예쁜 녀석이었다. 예쁘지 않아도 그냥 그 자체만으로 귀한 거긴 하지만./사진=하트뿅뿅 남형도 기자

원래도 예뻤지만 얼마나 말끔해지던지. 목욕시설에 들어온 다른 손님은 "어머, 너 너무 예쁘다"며 쓰다듬고 난리였다. 안소니는 이름표가 달린 목줄을 하고, 내부를 위풍당당하게 돌아다녔다. 내게 안겨 핥아주고 애교를 한껏 부리다가 이제야 나른한지 누워 곤히 잠들었다.

그때 봤다. 어쩌면 계속해서 뜬장에 서서 버텼을 안소니의 깨끗한 발바닥을. 옆에 있던 봉사자는 "아마 거기 서 있느라 발바닥이 더 아팠겠다"고 나지막이 얘기했다. 쌔근쌔근 잠든 녀석을 보며, 어렸을 적 나쁜 꿈을 꾸지 않길 바랐다. 스마트폰을 꺼내 녀석이 잠든 모습을 담았다. 기억하고 싶을만큼 사랑스러웠기에.
안소니의 발바닥./사진=잠잘 때 몰래 찍은 남기자
안소니의 발바닥./사진=잠잘 때 몰래 찍은 남기자

그러니 어디서 무엇을 위해 태어났든, 현재 어디에 있든, 크든 작든, 견종이 무엇이든 간에.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매일 애달프고, 새 삶을 주기 위해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곳이 보호소이며 돌보는 이들이 보호자이며 개들은 보호 대상이란 얘기다.



개들은 아프고, 이제 겨울이 온다


밥과 물도 안 먹는 녀석. 오랜 뜬장 생활로 지쳤고, 아픈 녀석들도 많다./사진=남형도 기자
밥과 물도 안 먹는 녀석. 오랜 뜬장 생활로 지쳤고, 아픈 녀석들도 많다./사진=남형도 기자

부디 해결책을 마련하길 바란다. 간절히.

그러나 현재 상황은 모양새가 좀 이상하다. 땅을 빌려준 롯데그룹도, 여기에 개농장을 만든 농장주도, 그걸 수십 년간 막지 못한 계양구청도 살아 있는 개들을 위한 해결책엔 뒷짐을 진다. 살아 있는 생명을 모른 척하지 못해서, 마음 쓰여서, 매일 동분서주하는 봉사자들만 범법자가 됐다.

역설적이지 않은가. 구하려는 이들만 애달프게 "현장에 못 가서 죄송하다"고,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매일 매일 호소하는 게. 후원이라도 하겠다고, 주말엔 꼭 봉사 가서 돕겠다고, 병원비를 한 푼이라도 보태겠다고 안간힘을 쓴다. 채팅방은 하루도 잠잠한 날이 없다. 한숨과 걱정이 뒤섞여 넘쳐나고, 서로를 향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찰나마다 오가고 있다.

김영환 케어 대표는 "불법을 저질렀다고 하는데, 그건 저희가 한 게 아니고 이미 개농장 주인에 의해 (개발제한구역이) 훼손돼 있던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지자체가 잘못한 걸 해결하려는 건데, 네가 구했으니까 네가 끝까지 책임지라는 거다. 정말 웃기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겨울이 온다. 시간이 많지 않다. 이미 홍역에 걸린 개들이 6마리 넘게 나왔다. 녀석들이 아프다. 오랜 뜬장 생활에, 제대로 먹고 마시지 못해 건강이 약해진 탓이다. 봉사활동 때 이미 밥을 줘도, 물을 줘도 하나도 안 먹는 녀석들이 많았다. 그게 제일 속상했었다. 비가 그친 뒤엔 강추위가 몰려온다고 했다. 찬 바닥에서 맨몸으로 모든 걸 견뎌야 한다.

그러기엔 개들은 너무 지쳤다. 봉사자들도 힘을 합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머뭇거리는 동안에도 시간은 속절없이 가고 있다.

아직 살아 있다.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아니, 찾아야 한다. 각자 입장과 의견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만큼은 공감할 것이다. 불법도, 돈도, 아니 그 무엇이라도, 귀한 생명의 가치보다 높을 순 없다는 것을.
미국에 도착한 안소니와 레이건을 이동 시켜주는 봉사자. 새 보호자를 만나러 가는 길, 안소니가 웃는다, 이제서야./사진=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
미국에 도착한 안소니와 레이건을 이동 시켜주는 봉사자. 새 보호자를 만나러 가는 길, 안소니가 웃는다, 이제서야./사진=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
에필로그(epilogue).

안소니와 레이건은 18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계양산 뜬장서 태어난 녀석들은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갔다.

함께할 보호자는 스키며 레저 활동을 좋아한다고 했다. 정말 기뻤다. 드넓은 평지를 맘껏 뛰어다닐 두 녀석이 상상되어서. 얼마나 꼬릴 흔들고, 웃고, 사랑받을까 싶어서.

그런데 기억하는가.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하마터면 보신탕 몇 그릇으로 사라질 뻔했다. 모두가 무심하게 외면했다면 말이다. 다행히 세상엔 맘이 보드랍고 용기 있는 이들이 있었고, 그래서 모든 게 달라졌다.

그러니 이 글을 보았다면 꼭 힘을 보태주기를. 아직 계양산에 남은 192마리의 개들을 위해.



  • 남형도
    남형도 human@mt.co.kr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시선에서 소외된 곳을 크게 떠들어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면서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 간직하려 노력합니다. 좋은 제보 언제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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