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주로에 고추·멸치 말린다?"…'지역비하'로 번진 신공항 논란

한 어르신이 강원 강릉시 노암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정선에서 사온 빨간 고추를 뙤약볕에 말리고 있다. 2020.08.25. /사진제공=뉴시스

부산 가덕도를 비롯한 지역 신공항 논란이 정국의 이슈로 부상한 가운데 사업성을 꼬집는 "활주로에 고추 말린다, 멸치 말린다"는 일각의 비유가 '지역 비하' 논란으로 번졌다. 관련 설전에는 여야 현역 국회의원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 MB 정부 인사까지 폭넓게 참전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24일 국회에서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가덕도신공항에 대해) 고추를 말린다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는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전날 SNS에 "가덕도 신공항은 타당성을 정교하게 따져볼 일"이라면서 "공항이 활성화될지, 활주로에서 고추를 말릴 지에는 항공사들의 노선 개설이 중요하다"고 쓴 것에 대한 비판이다.

한 의장은 "동남권 신공항은 국가균형발전 큰 틀에서 고려돼야 한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지역주의를 이용해 정쟁화하려는 일각의 시도를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활주로에 고추 말린다'는 표현은 오래전부터 지역 신공항의 사업성 부족을 지적할 때 자주 쓰인 표현이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전국 14개 공항 중 무려 10개 공항은 매년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가까이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2016년 6월 한 방송에서 동남권 신공항 필요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지금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빨라 고속열차 등 다른 교통수단도 발전하고 있다. (공항을) 십여 년 걸려 지어놓아도 그때 되면 필요 없어질지도 모른다. 잘못하면 진짜 활주로에 고추 말리게 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2005년 참여정부 당시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서 지방공항 건설 논란에 대해 "비행장 만들어서 고추 말릴 일 있나"라고 말한 것을 시작으로 꼽기도 한다.

고추 논란은 멸치로도 번졌다.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이 지난 21일 SNS에 가덕신공항과 관련해 "고추 대신 멸치 말리는 공항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반면 영남은 물론 신공항 유치 필요성을 줄기차게 제기해 온 각 지역에선 '고추·멸치' 따위의 표현에 강하게 반발한다. 최지은 더불어민주당 국제대변인은 이날 서면 논평에서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을 겨냥해 "서울 밖은 모두 시골인 줄 아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 전 법무장관도 논란을 거들고 나섰다. 그는 전날 SNS에 "부산·경남 사람들은 고추나 멸치 말리러 활주로 가는 사람들이 아니"라면서 '식물 및 그 밖의 장애물을 설치·재배하거나 방치해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을 포함한 공항시설법 제34조(장애물의 제한 등)을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