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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고생해썽ㅋ"…딸 문자에 경비원이 웃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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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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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점심 먹는 20분 새에도'비양심 쓰레기' 와르르…"나이 먹은 게 죄(罪), 내가 폐품 같아 서글퍼"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안 보였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분리수거 도중 마대자루 위에 올라가 밟고 있는 기자. 이렇게 7~8번을 반복해서 눌러준 뒤에야 자루 하나가 마무리 된다. 이 또한 아끼기 위한 경비원들 노력이다. 발이 잘못 빠지면 위험하다./사진=경비원 정씨
분리수거 도중 마대자루 위에 올라가 밟고 있는 기자. 이렇게 7~8번을 반복해서 눌러준 뒤에야 자루 하나가 마무리 된다. 이 또한 아끼기 위한 경비원들 노력이다. 발이 잘못 빠지면 위험하다./사진=경비원 정씨
"가만있자, 남기자가 어디서 잠을 자야 하나. 빈 경비 초소가 있나?"

밤 10시, 경비원 김용기씨(가명)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누우면 뻗을 것처럼 피곤했으나 낮에 봤던 '경비원 휴게실'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비어 있는 초소가 없다면 꼼짝없이 거기서 자야 했다. 휴게실에 갔을 때 김씨가 했던 말이 뇌리에 콱 박혀 있었다. "여기서 자면 쥐가 배 위로 막 타고 다녀, 진짜야." 퀴퀴하고 칙칙한 공간, 석면이 드러난 천장을 보니 그 말을 믿을 수밖에.

다행히 남은 경비 초소 하나가 있었다. 들어가 좁다란 의자에 몸을 뉘었다. 몸을 잘못 돌리다간 굴러떨어질 만한, 딱 그 정도 공간이었다. 지독한 피로가 몰려왔으나 쉬이 잠들지 못했다. 경비 초소 창문엔 주민들 그림자며 말소리가 휙휙 파고들었고, 오가는 배달 오토바이 굉음은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잡생각에 뒤척이다 보니 1시간이 훌쩍. 고요하고 컴컴한 어둠조차 사치인 겨울밤이었다.
경비원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고 싶어 24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참 오래 걸렸다. 고(故) 최희석 경비원님이 주민 갑질로 숨진 게 지난 4월. 그 삶을 체험해 짐작하고 싶었으나 섭외가 무척 어려웠다. 다들 고사했다. 불이익을 당할까 두렵다고 했다. 경비원 아버지가 갑질을 당한다며 제보한 딸도, 결국 부친을 설득하지 못했다. 생계가 걸린 노년 일자리란 게 그토록 무거운 거였다.
고 최희석 경비원님의 초소에 붙은 추모 메모들. 그는 왜 그리 떠나야 했을까. 지금 달라진 건 무엇일까. 그 물음에 답해야 했다./사진=뉴스1
고 최희석 경비원님의 초소에 붙은 추모 메모들. 그는 왜 그리 떠나야 했을까. 지금 달라진 건 무엇일까. 그 물음에 답해야 했다./사진=뉴스1
11월 끝자락에 아파트 경비원 김용기씨(가명)를 만났다. 그도 실은 취재가 걱정된다고 했다. 그러나 김씨는 자신들 이야기를 알리고 싶다고 했다. 이유는 이랬다. "세상이 금방 바뀌진 않겠지요. 그래도 누군가는 떠들고 알려야 나아지지 않을까요." 아무렴, 같은 마음이라며 감사하다고 했다.

경비원들에겐 참 고되다는 재활용 분리수거 날, 김씨가 일하는 아파트를 찾아갔다. 굳이 주말에 간 이유가 있었다. 관리사무실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아 눈치가 덜 보인다 하기에. 그와 동료들 안위가 최우선 순위여서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경비원 근무는 하루 근무 후 하루 휴식, 그래서 24시간을 똑같이 보내보기로 했다.



숨겨진 아픔이 많아 운다고


경비원 김씨의 집안. 그는 머리가 시려울 거라며 내게 검은 털모자를 줬다. 내 머리엔 좀  아담하지만 따뜻했다./사진=남형도 기자
경비원 김씨의 집안. 그는 머리가 시려울 거라며 내게 검은 털모자를 줬다. 내 머리엔 좀 아담하지만 따뜻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새벽 5시에 김씨의 집으로 갔다. 이미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났단 그가 날 맞았다. 거실 한쪽 벽엔 감색 경비원 잠바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경비 일을 시작한 지는 수년이 넘었단다. 안쪽엔 아담한 방 하나가 있었다. TV서 흘러나오는 방송 뉴스 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그의 침대 머리맡엔 타일 무늬 시트지가 붙어 있었다. 무언가를 가리려 한 흔적 같았다. 물어보니 거기에 사연이 있었다.

김씨는 "경비 일을 하다 보면 너무 화나는 일이 많다"고 운을 띄웠다. 한 번은 그걸 못 참아서 침대 맡을 머리로 들이받았더니 벽에 구멍이 났다. 음악을 크게 틀고 맘으로 울던 날이었다. 그런 날이 많단다. 청소하다 추워서 울고, 더워서 울고, 쓰레기가 쏟아져 나와 운다고 했다. 숨겨진 아픔이 말도 못 하게 사장돼 있다고 했다.

새벽 5시 30분, 무거운 맘으로 그와 함께 아파트 단지로 갔다. 경비원 옷은 입지 않았다. 주민들이 날 보고 "젊은 경비원 누구냐"고 물으면 곤란할 수 있다고 해서, 그냥 주민인 척하기로. 바깥 공기가 차가워 입김이 훅 쏟아졌다. 걷다 보니 큰 단지여서 물으니 2000세대가 넘는다고 했다.



그게 다, 경비원이 하는 일


새벽녘 이미 출근을 마친 경비원들. 그나마 제일 한가한 시간, 업무의 힘듦에 대한 이야길 나누며 서로 위로한다./사진=남형도 기자
새벽녘 이미 출근을 마친 경비원들. 그나마 제일 한가한 시간, 업무의 힘듦에 대한 이야길 나누며 서로 위로한다./사진=남형도 기자
경비 초소는 이미 불빛이 환했다. 순찰하며 경비원들 얘길 들었다. 따뜻한 믹스 커피와 삶은 밤 고구마로 아침을 해결했다. 이들에게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배울 요량이었다. 그건 의외로 이해하긴 간단했다. 김씨 설명이 명료했다. "누수나 배관 고치는 그런 기능적인 일 있잖아요. 그것 빼곤 다 경비원이 하는 일이에요. 여기서 경비해 본 적 없어요. 다 잡일이지요."

마침 나가는 주민 한 명이 다가와 자동차 키를 맡기고 갔다. 이중 주차된 차들이 많으니, 혹시 차 뺄 일 있으면 해달라고. 불법 주차 단속도 경비 몫. 그런데 단속 스티커를 붙였다가 주민이 노발대발하면 다시 떼는 것도 경비가 한단다. 경비원 백만원씨(가명)는 "스티커를 떼다가 차가 약간 긁혔는데, 경비원이 일 잘릴까 봐 자기 돈 100만원을 줬어요. 관리사무실은 주민 눈치만 보지요"라고 하소연했다.

경비원 슛돌이씨(가명)는 택배 이야길 했다. "새벽에 잠자고 있는데 주민이 초소 문을 발로 뻥 차요. 택배 내놓으라고. 어떤 사람은 전화해도 찾아가지도 않아요. 한 달이 넘도록요." 점심시간에 밥 먹고 있을 때 전화 올 때도 있다. 지금 택배 달라고. 그래서 바깥에 나가 밥 먹기도 불편해, 대다수가 도시락을 싸 와서 먹는단다.
낙엽은 통상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쓴단다. 쓸어도 쓸어도 끝이 없다고, 그 또한 경비원 업무다./사진=남형도 기자
낙엽은 통상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쓴단다. 쓸어도 쓸어도 끝이 없다고, 그 또한 경비원 업무다./사진=남형도 기자
마지막 김씨 이야기가 화룡점정. 어느 날 아파트 주민에게 전화가 왔다. 용건은 이랬다. "경비 아저씨, 여기 개똥이 있는데, 와서 좀 치워요." 근데 그날은 그가 24시간 근무를 한 뒤 쉬는 날이었다.



27시간씩 이어지는 재활용 분리수거


쓰레기는 버리고 돌아오면 그만이었다. 남겨진 이들의 힘듦을 짐작하는 시간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쓰레기는 버리고 돌아오면 그만이었다. 남겨진 이들의 힘듦을 짐작하는 시간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통상 재활용 분리수거 시간은 오후 3시부터 밤 10시까지(7시간). 그러나 정해진 시간은 무의미하다고 했다. 김씨는 "주민들이 쓰레기 가지고 나오는 게 시작하는 시간이고, 안 가지고 나오면 끝나는 것"이라고 했다.

통상 분리수거일 아침 7시부터 다음 날 새벽 2~3시까지, 이어 아침 7시부터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해가는 오후 2시까지 주민들이 계속 버린다. 최대 27시간씩 이어지는 강행군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쏟아지는 쓰레기를 계속 살펴야 한다. 듣기만 해도 벌써 지치는 듯했다.

아침 8시쯤, 재활용 분리수거를 하는 주차장 공터는 아직 조용했다. 주말이라 자고 있을 시간이란다. 경비원 이대단씨(가명)와 최묵묵씨(가명)는 전날 밤에 이미 분리수거를 하기 위한 큰 마대 자루와 비닐들을 다 펴뒀다.

이유가 있었다. 최씨는 "아침부터 분리수거를 하려면 주차장에 세워둔 주민들 차를 빼야 하는데, 주민한테 일찍 전화하면 '아침부터 전화질이냐'며 욕을 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본인들 쓰레기를 치우느라 차를 빼달라는 이야기도, 눈치를 보며 한단 거였다. 그러나 아는가. 경비업법 상에, 이들 본연 업무에, 분리수거는 원래 없었단 것을.



'가짜 CCTV'까지 설치한 이유


오죽하면 가짜 CCTV까지 설치했을까. 불도 들어온다./사진=남형도 기자
오죽하면 가짜 CCTV까지 설치했을까. 불도 들어온다./사진=남형도 기자
오전 10시부터 주민들이 슬슬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 버리는 것까지만 생각했었고, 그 뒤 일은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마대 자루 안에서 펼쳐지는 광경이 가관이었다. 플라스틱을 버리라는 곳엔 캔이 들어 있고, 공병(소주병 등)을 모으는 곳엔 깨진 도기 그릇이 널브러졌다. 알루미늄 캔을 버리는 곳엔 플라스틱 배달 용기가 들어 있었다. 라벨을 뜯은 페트병만 모아 놓는 곳에 온갖 플라스틱 용기들이 뒤섞여 있었다.

경비원 이씨와 최씨는 이를 제자리에 다시 가져다 놓았다. 늘 있는 일이라 익숙하다고 했다. 그 뒤론 계속해서 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쓰레기를 제대로 버렸나 살피고, 그걸 다시 집어 원래대로 바로잡는 거였다. 그런데 그게 끝이 없었다. 하나를 정리하는 중에 새로운 주민이 나와 분리수거를 이상하게 해놓고 갔다.
캔에 플라스틱 쓰레기를 집어넣는 이유는 대체 뭡니까./사진=뿔난 남기자
캔에 플라스틱 쓰레기를 집어넣는 이유는 대체 뭡니까./사진=뿔난 남기자
고육지책으로 이씨는 가짜 CCTV까지 달아 놓았다. 한눈만 팔면 아무렇게나 버리고 가는 비양심 주민들을 방지하기 위한 거였다. 그는 "이게 건전지 넣으면 불까지 들어오거든요. 아주 효과가 좋아요"라며 만족해했다. 그렇게까지 하게 만든 상황이 아쉬웠다.



밥 먹는 시간 고작 20분, 다녀와 보니…


경비원의 조촐한 저녁밥상. 후딱 먹고 나가야 한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 쓰레기를 막 버리고 있으므로./사진=남형도 기자
경비원의 조촐한 저녁밥상. 후딱 먹고 나가야 한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 쓰레기를 막 버리고 있으므로./사진=남형도 기자
그러니 추운 날씨에도 초소에 들어가 있지 못했다. 잘 버리는지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문득 동네 경비원님이 생각났다. 왜 계속 바깥에 서 있는지 의아했었다. 불안해서 차마 자릴 못 뜨는 거였다. 그럴만했다. 영하로 뚝 떨어진 날에만, 잠깐씩 들어가 손만 녹이고 나온단다.

점심, 저녁을 충분히 먹을 틈도 없다. 휴게 시간이 각각 2시간씩 주어지지만, 분리수거 날 밥 먹는 시간은 고작 20분에 불과했다. 경비원들은 밥과 김치 등 간소하게 싼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데운 뒤, 부리나케 먹고 나왔다.

그리고 분리수거장에 다시 나와 확인했을 때,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그 잠깐 사이에 주민들이 쓰레기를 마구 버리고 갔다. 롤러 블레이드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공병엔 잡병이 뒤섞여 있었으며, 누군가 던지고 간 거대한 초록 텐트에 화가 치밀었다. 경비원 정긍정씨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아주. 어떻게 사람 없을 때만 이렇게 막 버리고 가는지. 허허허"하며 한숨을 쉬었다.
역시나 막 버리고 갔다. 초록 텐트를 바닥에 집어던지고 사라진 비양심 주민./사진=남형도 기자
역시나 막 버리고 갔다. 초록 텐트를 바닥에 집어던지고 사라진 비양심 주민./사진=남형도 기자
폐기물도 큰 골칫거리다. 경비원들이 순찰을 돌거나 청소하러 초소를 비울 때 와서 아무렇게나 막 버리고 간단다. 의자, 이불, 컴퓨터 모니터, 가구, 파레트 등 그날 본 것만 10가지가 넘었다. 폐기물 스티커 2000~3000원이 아깝다며 마구 버리고 간 것들이다. 정씨는 "경비원들이 십시일반으로 자비 1000원씩 내어서 버린다"며 "돈이 문제가 아니라 양심이 너무 비틀어져 있으니 그게 화나는 것"이라고 했다.



무개념 주민과 고마운 주민


주민이 건넨 음료와 귤. 맘이 따수워졌다./사진=남형도 기자
주민이 건넨 음료와 귤. 맘이 따수워졌다./사진=남형도 기자
주민들도 가지각색, 무개념 주민이 있는가 하면 고마운 주민도 있다.

양말 공장을 하는 한 주민은 겨울만 되면 경비 초소에 양말을 한가득 두고 간다고. 부부인데 그들은 경비원에게 늘 아침에 먼저 "좋은 하루 되십시오"하며 깍듯하게 인사를 한다. 경비원 이씨는 "정말, 진짜 그럴 땐 너무 좋지요. 그 맛에 삽니다"라고 웃었다. 별다른 게 사는 힘이 아녔다. 한 사람에 대한 존중과 예의, 그런 거였다.

분리수거를 하는 날만 해도 고맙다며 무언가 놓고 가는 주민들 맘이 따뜻했다. 누군가는 귤을 놓고 가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밤이 춥다며 음료 여러 병을 놓고 갔다. 어떤 주민은 꽃게를 건네며 "라면에 넣어 드시면 맛있다"고 했다. 고생이 많다며 새우튀김과 만두, 소주 한 병을 건네고 가는 할머니도 있었다. 고마운 이들이었다.

반면 무개념 주민도 많다. 분리수거를 예로 들면 이렇다. 비닐 쓰레기에 똥 묻은 기저귀를 넣어놓고 사라진다. 이를 모르는 경비원들은 쓰레기양을 어떻게든 줄이겠다고, 이 비닐 쓰레기들을 누른다. 그 과정에서 똥이 묻는 일도 있단다.
양념 좀 닦고 버립시다./사진=남형도 기자
양념 좀 닦고 버립시다./사진=남형도 기자
양념이 묻은 치킨 박스며, 제대로 안 씻은 용기를 마구 버리는 이도 있다. 그것도 모르고 마대자루 줄이겠다고 발로 밟았다가, 온갖 양념이 신발에 묻기도 한다. 경비원 정씨는 "그래서 장화를 신고 쓰레기를 밟아야 한다"고 했다. 여름엔 이런 쓰레기들이 지독한 냄새를 풍긴다.



찬바람 들이치는 경비 초소, "너무 춥지요"


경비 초소의 자그마한 잠자리. 주민들이 난로도 못 켜놓게 해서 그나마 안 보이는 쪽에 설치했단다./사진=남형도 기자
경비 초소의 자그마한 잠자리. 주민들이 난로도 못 켜놓게 해서 그나마 안 보이는 쪽에 설치했단다./사진=남형도 기자
끝도 없이 나오는 분리수거 쓰레기에 숨이 턱턱 막혔다. 오후 4시가 넘으니 두들겨 맞은 듯 뻐근했고, 온몸이 나른해 서 있기 힘들 만큼 지쳤다. 경비원 정씨는 "오전 7시부터 시작하니 오후 2시만 되면 진이 다 빠진다"며 "그때부턴 피로 쌓인 상태에서 하는 거다. 정신이 몽롱해진다"고 했다.

그리 고단한 일일진대, 쉬는 공간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다.
이게 경비원 휴게실의 화장실이다. 저 네모난 물 고인 곳에 소변을 본단다. 변기 하나 제대로 없어서./사진=남형도 기자
이게 경비원 휴게실의 화장실이다. 저 네모난 물 고인 곳에 소변을 본단다. 변기 하나 제대로 없어서./사진=남형도 기자
아파트 한 동 지하에 있는 경비원 휴게실은, 대다수가 이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천장은 석면인데 비닐로 덮어 놓았고, 변기 하나도 없어 물에 소변을 본 뒤 빨아올리는 정도만 가능했다. 내부는 겨울임에도 퀴퀴한 향이 코를 찔렀다. 여름엔 곰팡이 냄새로 견디기 힘들단다. 경비원 김씨는 "쥐가 많아서 쥐약을 놓기도 했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경비 초소도 마찬가지로 열악했다. 오래된 철제 창틀이라 추운 겨울엔 찬바람이 들이친다고 했다. 비닐 뽁뽁이를 붙여도 별 소용이 없다. 경비원 이씨는 "영하 날씨엔 추워서 모자와 귀마개, 마스크까지 쓰고 잔다"고 했다. 관리실에서 제공한 건 에어컨 하나고, 나머지 냉장고며 의자며 가구며 난로는 다 동네 주민들이 폐기물로 내놓은 걸 주워다 쓴단다.



3개월에 한 번씩 계약…"제가 폐품처럼 느껴져요"


한눈 팔면 이렇게 버리고 간다./사진=체념한 남형도 기자
한눈 팔면 이렇게 버리고 간다./사진=체념한 남형도 기자
겨울철이라 해가 빨리 떨어졌다. 저녁 6시가 되자 또 한 차례 쓰레기가 쏟아져 나왔다. 경비원들은 틈틈이 애환을 얘기하다가도 쓰레기만 나오면 자동으로 일어나 몸을 움직였다. 우직하고 부지런한 손길이었다. 그들을 따라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려 동분서주했다. 다시 추워지는 날씨에 손이 얼어붙었다.

겨우 쉴 틈이 생겼다. 셋이 나란히 쭈그리고 앉았다. 경비원 정씨가 귤 하나를 건넸다. 또 다른 경비원은 쭈그리고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후하고 불었다. 기다란 입김과 섞인 뿌연 연기가 가로등 불빛 아래로 흩날려 사라졌다. 생(生)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계절이랄까.
허리를 몇 번이나 숙였을지. 빛 같은 따뜻한 한 마디에 힘을 내는 이들./사진=남형도 기자
허리를 몇 번이나 숙였을지. 빛 같은 따뜻한 한 마디에 힘을 내는 이들./사진=남형도 기자
짧은 휴식 속 오가는 대화는 묵직했다. 12월이 조마조마한 달이란다. 3개월씩 계약을 해서다. 맘에 안 들면 자르겠단 이야기란다. 보통 주민 민원이 들어가면 끝이다. 너무 불안정하단다. 관리실에선 대놓고 "대체할 인력은 얼마든 있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실제 할 사람은 줄을 섰단다. 파리목숨 같은 삶, 그걸 어떻게든 이어가려 보호받아야 할 이들끼리 이간질하기도 한단다. "저 놈 잘라야 한다"고. 서글픈 생존 경쟁이다.

경비원 정씨가 꿈꾸는 노년은 좀 더 고상했다. 이런 세상이 있는 줄 몰랐단다. 글을 쓰거나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었다. 이력서만 스무 군데 넘게 떨어진 뒤 비로소 깨달았다. 이야길 하다 정씨는 내게 이렇게 얘기했다.

"기자님, 세상에서 제일 큰 죄가 무슨 죄인지 알아요? 나이 먹은 죄에요. 그거 딱 하나에요. 60살 넘으면 이력서 안 받아요. 유일하게 받는 데가 경비원 뿐이여. 그것도 운이 좋아야 해요. 기자님 딱 30년 뒤 모습이라니까."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그리고 또 이렇게 말했다.

"나중엔 내가 폐품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 하도 깨지니까. 세상이 나를 몰라주네 했어요. 그런데 나를 몰라도 내 나이는 알더라고. 끝난 거지요."



누군가의 소중한 아버지


경비원 이대단씨(가명)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보낸 메시지./사진=남형도 기자
경비원 이대단씨(가명)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보낸 메시지./사진=남형도 기자
밤 10시가 되었다. 이제 분리수거 업무를 마칠 시간이었다. 물론 끝난 게 아녔다. 주민들은 계속해서 나와서 버렸다. 쫓아다니면 끝이 없었다. 마대 자루와 비닐을 충분히 놓고 잔다고 했다. 다음날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다시 한번 정리하고, 다음 조와 교대하면 24시간 업무가 끝난다.

경비원 이씨를 따라 초소에 들어왔다. 이제야 한숨이 나갔다. 그의 인생 얘기도 좀 들었다. 잘 나가던 대기업 사원이었다. 주식 투자를 잘못해 가세가 기울었다. 치아가 다 빠질 만큼 힘들었다. 2000년대 초반에 퇴직하고, 이씨 홀로 아들과 딸을 키우게 됐다. 룸싸롱, 사우나를 다니며 잡병을 수거해 팔며 돈을 벌었다. 술을 아무리 먹고 싶어도 자녀들이 있을 땐 참았다.

잠들 준비를 하던 이씨가 스마트폰을 보더니 씨익 웃었다. 아들과 딸의 연락이었다. 저장된 이름은 '이쁜 딸', '잘난 아들'이었다.

이쁜 딸: "아빠 분리수거 다했남ㅋ"
이씨: "인제 막 끝났당."
이쁜 딸: "ㅋㅋㅋ고생해썽."
이씨: "잉 빨리 자야징ㅋㅋㅋ"
잘난 아들: "수고했성."


참 잘 키우셨단 말에 그는 귀한 아들과 딸 얘기를 조금 더 이어갔다. "내 자랑 같지만"이란 말을 덧붙이며, 싱글벙글 웃으면서. 조촐한 믹스 커피 한 잔과 음료 한 병에 고단했던 깊은 하루가 달게 익어갔다. 그는 경비원이기 이전에 훌륭한 아버지이고, 귀한 사람이었다.



동네 경비원님이 다시 보였다


동네 경비원님이 새삼 다시 보였다. 그냥 되는 것 따윈 아무 것도 없었다. 누군가의 노고가 다 담겨 있었을 뿐./사진=남형도 기자
동네 경비원님이 새삼 다시 보였다. 그냥 되는 것 따윈 아무 것도 없었다. 누군가의 노고가 다 담겨 있었을 뿐./사진=남형도 기자
경비 초소에서 잤고, 새벽 4시 반에 일어났다. 어느새 찾아온 경비원 김씨가 따뜻한 라면 하나를 끓여줬다. 끓는 동안 곁들인 말 덕분에 추억 여행을 했다. "1964년에 라면이 나왔었어요. 냄새가 어찌나 좋은지, 그렇게 먹고 싶더라 그게. 사 먹을 돈이 어딨어요. 참 비쌌지 그땐." 그 모진 세월을 어찌 살았나 모르겠다며, 꿈 같았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이 새삼 커 보였다.

"상상도 안 된다"고 다음 세대가 말할 수 있게 해준 대단한 장본인들, 그러니 그들은 '나이든 죄인'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일으킨 주인공이라고. 그러니 그에 맞는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뜨끈한 라면 국물을 마시며 고요히 생각했다.

그날 이후 동네 경비원님이 다시 보였다. 소복이 내린 눈을 쓰는 그에게 다가가 "고생 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하며 말 한마디를 건넸다. 정신없이 이어지는 분리수거 쓰레기 더미 속에서, 이걸 이렇게까지 치워야 하나 한없이 작아졌을 때 일으켜 준 말들이 그런 거였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수고 많으세요." "감사합니다." 그런 짤막하고 다정한 말들이, 무너지는 몸과 맘을 작게나마 일으켰던 것 같다.

그리고 분리수거를 하는데 시간을 충분히 썼다. 페트병 라벨을 뗐고, 색깔이 있는 스티로폼을 걸렀으며, 배달 용기는 깨끗하게 씻고, 박스 테이프를 떼어 납작하게 만들어 내었다. 10분 정도면 충분했다. 분주히 분리수거를 하는 동네 경비원님을 위해 초소 책상에 따뜻한 음료와 믹스 커피를 가져다 놓았다. 부지런한 그의 시간 덕분에 그동안 편히 지냈었으므로.
"아빠 고생해썽ㅋ"…딸 문자에 경비원이 웃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에필로그(epilogue).

영하 날씨로 내려가면 분리수거하다 손이 깨진다고, 경비원 정씨가 그랬다.

어떤 장갑을 껴도 손이 너무 시리다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근데 누가 그러더라고요. 손모아장갑을 끼면 손이 안 시리대요."
"아, 그래요? 왜요?"
"살끼리 맞대니까 더 따뜻하대요."


'그러니 앞으론 함께할게요.' 생략된 맘속 응원이 그랬다.



  • 남형도
    남형도 human@mt.co.kr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시선에서 소외된 곳을 크게 떠들어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면서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 간직하려 노력합니다. 좋은 제보 언제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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