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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방·카'가 뭐길래…이제 그만 하시죠[50雜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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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형 기자/미디어전략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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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23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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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의 50잡스]50대가 늘어놓는 雜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 여전히 나도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의 소소한 다이어리입니다.

또 다시 연말이다.
언론을 통해, 혹은 카톡 메신저를 통해 인사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물 먹거나, 물러나는 이들의 소식은 나중에 전해 듣게 되고 들리는 것은 모두 승진과 취임이다. 당사자께는 축하인사와 더불어 “좋은 일 많이 해 달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그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자리를 비켜준 사람들의 눈물 위에 선 자리인만큼 그 조직 구성원을 위해, 그리고 사회를 위해 기여해 달라는 말이다.

인사철이 아니더라도 기자 일 하다 보면 자리 관련 덕담은 기본 에티켓이다.
“좀 더 하셔야죠, 아직 하실 일이 많으신데요”
주로 직함 뒤에 '~장'자 붙은 분들 만날 때 이런 말을 많이 하게 된다. 높은 자리에 오래 계신 분들에게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하는 경우는 아주 가끔 빼곤 ‘거의’ 없다. 지각 있는 상대방이라면 나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진 않았을 것이다. 그랬길 바란다.
‘이제 그만 하시죠, 후배들한테도 기회를 주셔야죠, 나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 일 말고 할 일이 없으신가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새로운 도전을 해보시죠, 약간 아쉬운 듯 할 때가 그만 둘 때입니다’ 대체로 이게 본심이다. (작년 연말, 2년간 맡았던 자리를 떠나면서 페이스북에 썼던 말인데, 생각이 그대로이고 세상이 그대로이니 앞으로도 무한 ‘자기표절’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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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초 금융권에선 생명보험협회장으로 정희수 전 보험연수원장이 취임했다. 53년 10월생이니 만 67세를 넘겼고, 3년 임기가 끝날 때는 71세가 된다. 3선 국회의원에 나라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국회 기재위원장까지 했던 분이다.
TK(경북 영천 영도)텃밭에서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소속으로 3선을 했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 캠프에 들어가 그 ‘공’으로 보험연수원장에 올랐다. 내 경험으론 사고가 합리적이고 구 여권 내에서 바른 말도 자주 했던 분이다. 하지만 소속을 바꿔가며 양지에 머물고,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또다시 금융권의 새 협회장 자리를 맡을 만큼 뚜렷한 목표와 그에 따른 성과가 뒤따를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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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에선 얼마전 언론진흥재단 이사장에 표완수 전 시사인대표가 취임했다. 표이사장은1974년에 경향신문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47년생이니 만 73세다. 개인적 인연이 없어서 인품이나 주변 평가는 잘 알지 못하지만 권위주의 정부 시절 불이익을 당한 언론계의 선배인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요즘 기득권 꼰대라고 싸잡아 비난받는 ‘586’도 훌쩍 넘어 ‘764(나이 70대, 60년대 학번, 40년대 출생) 어르신’이다. 언론사 대표 자리만 5군데를 거쳤다. 가뜩이나 갈 곳 없어서 퇴직 후가 막막한 언론계 인사들은 그 자리 하나 비워주는 게 제일 좋은 언론진흥이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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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신문에 몸담고 있다 보니 ‘경제’와 ‘언론’쪽이 눈에 띄었지만, 당연히 이쪽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민간이 아닌 정부 공공부문에서 알게 모르게 이뤄지고 있는 ‘어르신 인사’는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들다.
지난달에는 김상곤 전 교육부장관 겸 부총리가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49년생, 우리 나이로 이미 만 70세다. 교육과 민주화에 대한 신념과 헌신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그래도 그렇지, 부총리까지 지낸 분이 정권 말기에 교육부 산하 기관장으로 가야 했을까.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 정권창출에 기여하고 정치철학을 공유하는 인물들이 주요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기준으로 봐도 김 이사장이 바통을 넘겨줄 만한 ‘젊은 후배’들이 넘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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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70세가 넘어 이달 초 사의를 밝힌 진영 행정자치부 장관은 "장관직뿐 아니라 정계에서도 은퇴한다"고 밝혔다. 장관의 '은퇴'선언이 익숙하지 않은 언론은 '민주당 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으냐'는 식의 질문을 던졌지만 진 장관이 "절대 아니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하고서야 인정하는 분위기다.
수영을 좋아하고 피아노도 잘 치는 진 장관은 "운동을 하고 피아노도 더 배우는 등 편하게 쉬려고 한다"고 했다. 국회의원 4선 출신에 장관까지 지냈으니 더이상 원이 없을 법도 했을 터이고, 놀 줄 아니까 하고 싶은 것이 있으니까 '진짜로 은퇴' 선언이 가능했을 법 하다.

은퇴도 능력이다. ‘100세 청춘’ 김형석 교수는 “인생의 황금기는 60~75세더라”고 했다. 노동과 가족 건사의 짐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기라는 뜻이다. 아는 분은 오래 전 미국 여행중에 '할머니'로 보이는 스튜어디스에게 “그 나이 되도록 일할 수 있어서 얼마나 좋으냐”고 했다가 “은퇴할 능력이 되면 내가 왜 이러고 있겠냐”라는 면박을 들었다.
이처럼 능력이 없으면 싫어도 오래오래 일해야 하는데,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경제적 짐에서 벗어나 있으면서도 은퇴할 준비가 안돼 있는 분들이 문제다.

67세로 올해 임기만료를 맞은 한 현직 기관장은 다른 자리를 부지런히 알아보고 있다. 격의없는 후배가 사석에서 “더 연세 드시기 전에 이제 좀 재미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하시는게 어떠시냐”고 했다. “이게 제일 재밌어”라는 답이 돌아왔다.
민간이건 공직이건 높은 자리 오래 있던 분들이 자리를 떠나면 제일 힘든게 제 손으로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는 것과 차 문 여는 거라고들 한다. ‘차, 방, 카’ 즉 회사 차, 개인 사무실, 법인카드에 오랫동안 재미 붙여온 사람들은 그걸 놓지 못하고 ‘자리 쇼핑’을 반복한다.
정권말기가 되면 챙겨줘야 할 사람은 자꾸 떠오르고, 당사자들도 마음이 급해지는데, 이처럼 오래토록 ‘꿀보직’ 자리보전하고 나서는 분들은 민폐가 되고 잡음을 유발한다.

기자로서 지켜본 경험으로는, 구 여권은 현 정권보다 훨씬 오랫동안 기득권을 누려왔고 노하우도 쌓여 있었던 터라 상대적으로 잡음도 덜했다. 권위주의 정부에선 낙하산 인사라고 반발하고 나서기도 힘들었다. 권력기관을 통한 사찰까지 동원해 쫓아내고 자기 사람 앉혔던 게 일상이었다.
현 정부는 집권기를 두 번 건너 뛰면서 마땅한 곳에 자리를 잡지 못한 ‘동지’들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탈권위 민주화와 적폐청산을 기치로 든 마당에 잡음 없이 만들어 낼 자리가 많지 않을 것이다.
‘진보는 분열로 죽는다’. 이데올로기적 순수성에 대한 집착으로 논쟁하다 날 샌다는 말이지만, 진보의 분열 뒤에는 ‘보상’문제도 없지 않을 것이라 짐작한다.

실제로 훌륭한 능력과 인품을 지녀 모셔오고 싶은 분들도 없지 않다. 남들이 탐하지 않는 자리를, 최적임자가 봉사하는 마음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유권자들이 직접 선택하는 선출직은 나이가 얼마가 됐든 나설 수 있다. 생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청렴하게 살아서 후배들이 자리를 꼭 챙겨드려야 할 분도 존경받을 만 하다고는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사례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전기가 귀해 야간 조명을 켤 수 없었던 시절에는 야구경기에 일몰 서스펜디드 게임이란게 있었다. 일몰 30분전에는 새로운 이닝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식의 규칙이다. 인생에서도 '일몰'이 다가오면 '자리'에 앉지 말자는 공감대가 필요할 듯 하다. 사례도 없지 않다. 하나금융지주는 회장 후보 나이 상한을 만 70세, 신한금융지주는 만67세(연임시 재임시한 70세)로 못 박고 있다.

물론 나이만으로 차별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정치권에서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에도 나이에 따른 차별금지 조항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차별금지와 보호는 은퇴하기도 힘든 약자들을 위한 것이지 누릴 만큼 누린 어르신들을 위한 것은 아니다.

'차·방·카'가 뭐길래…이제 그만 하시죠[50雜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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