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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돈은 잃어도 사람 잃고 싶지 않아"

머니투데이
  • 중기협력팀 배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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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0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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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경 인코코스메틱 대표의 '그 사람'

[그 사람] "돈은 잃어도 사람 잃고 싶지 않아"
살다 보면 잊을 수 없는 '그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이관경 인코코스메틱 대표는 앞으로도 잊지 못할 '그 사람'을 회상했다. "박승한 선배! 형님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 첫 만남

풋내 진동하던 신입 시절 '그 사람'을 처음 봤다. 1987년 신입사원 연수원에서다. 그는 일별도 없이 스쳐 지나갔을 뿐. 회사 선배인지도 몰랐다.

그룹 기획실로 배치받았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 사수들과 사담 중 학교 얘기가 나왔다. "어, 너 고등학교 선배가 인사팀 박승한 대리야." 그들이 가리키는 손가락의 끝은 연수원에서 스친 '그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박 대리님, 안녕하십니까. 선배님이신 줄 알았다면 진작 인사드렸을 겁니다."
"하하, 그러냐. 잘해라. 학교 욕 먹이지 말고."

'그 사람'은 그랬다. FM 같은 사람이라 고교 후배라고 특별히 챙기지 않았다.

◇ 맨몸

1991년 이직했다. 지인이 화장품 회사 오너였다. 공장을 인수하는데 그걸 맡아서 운영·관리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존 연봉보다 더 줄게. 차도 사줄게." 막상 가 보니 회사는 형편없었다. 약속한 연봉과 차, 그런 건 언감생심.

순수했다. '젊은 나이에 돈보다 일(비전)이 우선이지.' 첫애 태어나는 것도 못 보고 4~5년을, 그렇게 일했다. 달라진 건 없었다. 심지어 오너의 경영 마인드는 정의롭지 못하기까지. 1995년 사표를 내던졌다. 배신감은 턱 끝까지 차올랐다.

살림살이는 궁글 대로 궁글었다. 아무리 어려워도 손 벌리지 못하는 성격. 한번은 어린 아들이 수두에 걸렸지만 1만5000원짜리 주사 하나 맞힐 돈이 없었다. 소주 2병 값은 있었다. 침안주로 마신 술은 취기를 잔뜩 끌어올렸다. 형편이 괜찮은 친형한테 전화했다. "지금껏 한 번도 술 먹고 전화한 적 없잖아. 무슨 일 있는 거냐. 아침에 찾아와라." 다음 날 아침 술 깨고 다시 전활 걸었다. "아무 일 없어. 그냥 어제 좀 취했나 봐."

무일푼으로 뭘 할 수 있을까. 나름 자신 있는 게 인맥. 친구 사무실에 전화기만 1대 달랑 놓고 판촉물 영업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화장연필을 떼다 팔기도 했다. 화장품 회사 다닐 때 알던 곳이었다.

사업은 잘됐다. 2~3년 새 판촉물은 대기업으로도 들어갔다. 사무실까지 새로 차렸다. 어느 날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카드를 내밀었다. "이 카드 사용 정지인데요." 골드카드였다. 선득했다. 건설업 하던 형을 돕기 위해 보증 선 게 있는데, IMF 여파로 터진 것이었다. 하루아침 빈털터리에 신용불량자가 됐다.

1998년 간신히 2000만원을 손에 쥐었다. 보증금 1700만원에 월세 50만원으로 지하실이 달린, 방 2칸짜리 살림집을 구했다. 남은 돈으로는 앵글과 판자를 사서 지하실에 작업대를 짰다. 화장연필을 조립, 납품하기 위해서다.

◇재회

하루는 지인이 지하 작업장에 놀러 왔다. 작업대 위 제품을 가리키며 묻는다. "저건 뭐야." "응, 아이디어가 있어서 손으로 만들어봤어." 화장연필·아이섀도 세트였다. 지인은 다시 운을 뗐다. "내 아는 회사에서도 저런 걸 취급할 텐데, 나 한번 줘 봐." 일주일 뒤 연락 왔다. 반응이 좋다며 샘플을 제대로 만들어 줄 수 있냐는 것이다.

수중에 있는 돈을 탈탈 털었다. 다직해야 50만원. 샘플을 만들어 보냈다. 답변이 왔다. "납품해 달라."

재기의 물꼬가 트이는 순간. 근데 땡전 한 푼 없다. 섀도 같은 건 외주를 맡겨야 하기 때문에 자금 없이는 안 될 일이다. 손 벌리는 건 죽기보다 싫지만 번히 보였다. 납품할 때마다 일주일 후 결제해 주는 조건이어서다.

이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가족, 친구, 지인. 가족들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친구와 지인으로 좁혔다. 지인도 제쳤다. '친구'라고 생각하는 몇몇에게만 연락했다. 결과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리라.

애 말랐다. 신세한탄이나 할 겸 지나는 길에 선배 사무실에 들렀다. 첫 직장에서 만난 고교 선배, '그 사람'이었다. 사실 판촉물 사업을 한창 하고 있을 때 그 선배의 근황을 들었다. 관악구에서 벼룩시장을 운영 중이라고 했다. 1996년께, 그러니까 돈 좀 벌 때였고, 반가운 나머지 바로 찾아간 적 있었다. 그 뒤로 삼사 년 동안 서너 번 더 갔을까. 그 짧은 몇 번의 만남 동안 '인생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었다.

이번엔 무일푼 신세로 넋두리나 하려고 선배를 찾은 것이다. "요즘 어떻게 사냐. 별일 없냐." 선배의 이런저런 물음에 신세타령이 나왔다. "납품 요청도 있고 기회는 생기는데, 뭐 되는 게 없네요." 허투루 내뱉는 수많은 넋두리에 섞인, 하나의 푸념일 뿐이었다.

어째서, 해필, 선배는, 그 많은 넋두리 속에 묻혀 지나갈 그 하나의 푸념을 흘려듣지 않았을까. "납품 얘기는 뭐야. 자세히 말해 봐."

"사실은..."

듣자마자 대뜸 하는 말이 "얼마 필요해?"였다. 엉겁결에 "5000만원 정도"라고 답했다. 숨 한 번 채 쉬기 전에 선배의 짧은 일성이 다시 큇바퀴를 타고 들었다. "계좌번호 불러." 선배는 그 자리에서 돈을 부쳤다.

"제가 안 갚으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순식간 일어난 일이라 그냥 툭 튀어나온 말이다. "너를 안다. 믿는다. 혹여 잘못돼 돈은 잃어도 사람 잃고 싶지 않다."

선배가 꿔 준 돈은 한 달 만에 갚았다.

"모두가 숨죽일 IMF 당시 절대로 쉽지 않았을 겁니다. 돈을 꾸러 간 것도 아닌데 그 자리에서 주더라고요.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말이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형님, 형님은 제 마음의 스승입니다. 형님 하시는 사회복지사업에 일조할 수 있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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