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옆 수어통역사 배치” 요청 계속되는데…청와대는 아직도 검토중

"연설하는 대통령님 옆에 수어통역사를 배치해달라"는 농인들의 잇단 요구에도 대통령의 신년 연설에는 수어통역사가 없었다.

관련 활동가 등은 "정부가 코로나19(COVID-19) 브리핑 발표자 옆에 수어통역사를 배치했을 때 '큰 화면으로 나온다'며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면서 재차 변화를 촉구했다. 청와대는 여전히 관련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수차례 이어지는 배치 요구에도…청와대 변화는 아직

(서울=뉴스1) 이광호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새해 국정운영 방향을 담은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2021.1.11/뉴스1

15일 장애인 인권단체 등에 따르면 농인과 단체들은 대통령 연설 등 청와대 주요 연설에 발언자 옆 수어통역사를 직접 배치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최근에는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장애벽허물기) 등은 지난달 30일 이와 같은 의견을 청와대에 제출했다.

당시 장애벽허물기 등은 "농인들 수어통역이 있는 방송만을 봐야 하는 등 선택권이 제한돼 있다"며 "5월 10일 대통령 취임 3주년 대국민 특별연설에서 수어통역은 KBS·MBC·SBS·MBN·KTV)만 제공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11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연설에도 청와대는 직접 수어통역사를 배치하지 않았다. 농인들은 수어통역을 제공하는 방송사만을 통해 시청해야 했다. 연설 직후 장애벽허물기는 "수어통역사 배치가 대통령의 권위를 떨어뜨리지 않는다"며 "실망스럽다"고 평했다.


이들은 일부 방송사에서 통역을 제공하더라도 연설 제공 기관인 청와대가 직접 통역사를 배치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해왔다. 인권위가 지난달 '주요 방송국이 수어통역을 제공했다고 하더라도 공공행사를 개최하는 청와대에 통역 지원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는데, 이와 같은 취지다.

특히 올해 2월 코로나19 브리핑, 8월 국회 발표 현장, 9월 공중파 3사 메인뉴스 화면에 수어통역사가 나와 농인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지만 청와대 변화는 더디다는 지적이다.

김철환 장애벽허물기 활동가는 "청와대 주요 연설에 수어통역사를 배치하라는 요구는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라며 "지속적으로 의견을 전달했지만 아직 변화는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고 했다.

"수어는 국어와 동일, 통역사 크게 나와 편해"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이 지난해 2월 22일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브리핑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인권단체나 전문가들은 청와대의 수어통역사 직접 배치가 그 자체로 당연한 일이자 농인들의 편의를 크게 신장할 수 있는 조치라고 설명한다.

2016년 제정된 한국수화언어법이 수어를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로 규정한 만큼 배치해야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해당 법은 농인이 수어 사용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또 국가와 국민이 수어가 계승·발전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김 활동가는 "법의 취지대로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는 청와대가 당연히 수어통역사를 둬야 한다"며 "법률 통역 등 경험이 있는 통역사를 몇명 지정통역사로 지정해 연설 때 부르면 되는데, 만약 비용 문제로 두지 않는다면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농인들은 통역사가 나오는 방송국을 찾아 봐야 하고, 그마저도 통역사가 작게 나와 불편해한다"며 "코로나19 브리핑 담당자 옆에 통역사가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농인이 '수어를 크게 볼 수 있다'면서 무척 기뻐했다"고 전했다.

또 "문 대통령이 대선 때부터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과거 인권 변호사 경력이 있던 만큼 기대감이 큰 건 사실인데, 발전이 꼭 있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신년 연설 관련해 장혜영 정의당 의원도 13일 "청와대가 '코로나19에 따른 현장 인원 최소화' '방송사 수어 통역 제공'을 수어통역 제공이 어려운 이유로 들었다"며 "현실 핑계 댈 때가 아니라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아울러 "청와대도 안 하는데 시민들은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되물으며 "포용국가를 소리높여 외치던 초심을 잃지 마시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청와대는 "관련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답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코로나19 브리핑 등은 정시에 하지만 청와대 연설은 규칙적이기 힘들다는 특징도 고려해야 한다"며 "올해 신년 연설에서는 방송국들이 수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과거보다 수어 사용이 많이 활성화됐는데, 일부 지적처럼 비용 문제나 수어통역사가 대통령 권위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해 배치하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니"라며 "코로나19 유행 전에는 이러한 문제제기가 많지 않았기에 현재 검토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