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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만나는 북한 문화유산] ⑬사리원 정방산성과 성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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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16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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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의 활동무대 정방산 인근에 다수의 사찰과 산성 유적이 산재

[편집자주]북한은 200개가 넘는 역사유적을 국보유적으로, 1700개 이상의 유적을 보존유적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지역적 특성상 북측에는 고조선과 고구려, 고려시기의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지난 75년간 분단이 계속되면서 북한 내 민족문화유산을 직접 접하기 어려웠다. 특히 10년 넘게 남북교류가 단절되면서 간헐적으로 이뤄졌던 남북 공동 발굴과 조사, 전시 등도 완전히 중단됐다. 남북의 공동자산인 북한 내 문화유산을 누구나 직접 가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하며 최근 사진을 중심으로 북한의 주요 문화유산을 소개한다.

(서울=뉴스1) 정창현 머니투데이미디어 평화경제연구소장 =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이 홀로 듣는구나/ 저 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뎅그렁 울릴 제면 더 울릴까 망설이고/ 들릴 젠 또 들리라 소리 나기 기다려져/ 새도록/ 풍경소리 데리고 / 잠 못 이뤄 하노라."

노산(蘆山) 이은상(李殷相)이 지은 '성불사의 밤'이란 시조다. 그가 성불사를 찾은 건 29살 때인 1931년 8월 19일이었다. 그는 이화여전(현재 이화여대) 교수시절 벗들과 정방산(正方山)에 올라 성불사를 돌아보고 그날 밤 청풍루 마루에서 잠을 잤다. 그는 법당 처마 끝에서 들려오는 댕그랑거리는 풍경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그때의 고적한 감동을 담은 시조가 '성불사의 밤'이다. 1932년 미국 유학시절 홍난파(洪蘭坡)가 이 시조에 곡을 붙인 노래가 바로 '성불사의 밤'이다.

황해북도 사리원시 정방산 기슭에 있는 성불사(成佛寺)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황해북도 사리원시 정방산 기슭에 있는 성불사(成佛寺)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노래의 무대가 된 성불사(成佛寺, 국보유적 제87호)는 황해북도 사리원시 정방산의 주봉인 천성봉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평양-고속도로로 1시간 정도 걸리는 사리원시에서 8㎞ 떨어져 있다. 정방산 초입에 들어서면 산 능선을 따라 쌓은 산성이 눈에 들어온다. 고려 때 쌓은 정방산성(국보유적 제89호)이다. 이 산성은 한반도 서부의 남북을 이어주는 주요한 교통로를 지키는 천혜의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다. 정방산의 험한 절벽과 정방골에 내리뻗은 능선을 이용해 성벽을 쌓았다. 동?서?남쪽의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었다. 성벽의 둘레는 12㎞ 가량 된다.

고려시기에 쌓은 황해북도 사리원시의 정방산성의 서쪽 성곽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고려시기에 쌓은 황해북도 사리원시의 정방산성의 서쪽 성곽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고려시기에 쌓은 정방산성 남문의 정방루.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고려시기에 쌓은 정방산성 남문의 정방루.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성문은 동서남북에 각각 1개씩 설치되어 있었지만 6·25전쟁 때 파괴됐고, 남문인 정방루(국보유적 제88호)만 1968년에 복구됐다. 기봉산(천성봉), 모자산, 노적봉, 대각산의 산마루가 서로 잇닿아 정방형을 이룬다 하여 정방산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하며, 조선시대 '3대 도적'이라 일컬어지는 임꺽정의 활동무대로도 유명하다.

남문을 지나 큰 길을 걸어가면 '정방산 성불사'란 현판이 붙어있는 청풍루가 나온다. 성불사로 들어가는 통로가 되는 누각이다.

정방산 성불사 청풍루와 5층석탑.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정방산 성불사 청풍루와 5층석탑.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청풍루를 지나 절마당으로 들어서자 중앙에 4m 높이의 5층석탑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고려 후기에 건립된 석탑이다. 탑신의 높이를 일정한 비율로 줄여 안정감을 준 전형적인 고려탑 형식을 하고 있으며, 상하 2개의 부분으로 된 기단 위에 돌을 4각으로 다듬어 5층을 올렸다.

정방산 성불사 5층석탑과 극락전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정방산 성불사 5층석탑과 극락전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정방산 성불사 입구에 서 있는 '성불사 기적비'. 성불사의 내력을 기록한 이 비는 1727년에 세운 것이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정방산 성불사 입구에 서 있는 '성불사 기적비'. 성불사의 내력을 기록한 이 비는 1727년에 세운 것이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중앙의 5층탑을 중심으로 극락전과 웅진전, 명부전, 산식각, 운하당, 청풍루가 자리 잡고 있다. 성불사는 신라 효공왕 2년(898년)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했으니 13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셈이다. 절 입구에 서 있는 '성불사 기적비'에 따르면 이 절에는 한 때 20여 채가 넘는 전각과 10여 개의 암자, 15개의 돌탑이 있었으며 1000명이 넘는 스님들이 있었다. 그러나 6·25 전쟁 때 폭격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했던 성불사는 1957년에 다시 복구돼 비교적 큰 사찰로 거듭났다.

정방산 성불사 응진전 전경. 고려 말에 건립됐고, 우리나라 최고 목조전각의 하나로 꼽힌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정방산 성불사 응진전 전경. 고려 말에 건립됐고, 우리나라 최고 목조전각의 하나로 꼽힌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정방산 성불사 응진전 내부에 좌우로 안치돼 있는 오백나한상.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정방산 성불사 응진전 내부에 좌우로 안치돼 있는 오백나한상.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특히 고려말기에 건립된 응진전은 우리나라 최고(最古) 목조전각의 하나로 꼽힌다. 응진전은 고려 충숙왕 14년(1327)에 처음 지어졌고, 조선 중종 25년(1530)에 수리됐다. 정면 7칸(22.75미터), 옆면 3칸(6.7미터)이고 겹처마 배집 지붕의 양식을 하고 있다. 고색창연한 전각과 그곳에 그려진 옛 단청 문양, 아름답고 화려한 꽃문양으로 짜여진 문살 등 응진전은 성불사 최고의 구경거리다. 응진전 안에는 금동 석가모니불과 좌우 보살상이 있고, 양옆으로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는 제작된 오백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마치 살아있는 듯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표정이 인상적이다.

조선 말기 정방산성의 성장(城將) 김성업의 업적을 기록한 '성장김공성업영세불망지비'(城將金公成業永世不亡之碑)앞면.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조선 말기 정방산성의 성장(城將) 김성업의 업적을 기록한 '성장김공성업영세불망지비'(城將金公成業永世不亡之碑)앞면.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성불사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빼놓아서는 안 되는 역사유적이 '성장김성업비'(城將金成業碑)다. 조선 말기 산성의 성장(城將) 김성업의 업적과 덕행을 찬양하여 세운 비석이다. 이 비석은 1879년(고종 16)에 건립된 것으로 성불사에서 정방루로 가는 길가에 서 있다. 비석의 전체높이는 1.5m이고, 비신의 높이는 1.2m이다. 비문은 1행에 4자씩 4행으로 총 16자를 새겨 넣었다. 외세의 침략에 대처해 성 방비를 강화하여 성을 지켜낸 공적을 찬양한다는 내용이다. 조선 말기의 성곽제도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는 비석이다

정방산성의 북쪽으로는 황주읍 동쪽 덕월산에 황주성이 있고, 남쪽으로는 평산군 산성리에 태백산성(국보유적 제93호)이 남아 있다. 모두 고구려 때 처음 쌓았고, 도성인 평양성을 방어하는 위성과 산성 역할을 했다.

황해북도 평산군에 있는 태백산성의 동문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황해북도 평산군에 있는 태백산성의 동문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사리원시 동쪽에 붙어 있는 연탄군에는 도선국가가 창건했다는 또 다른 사찰인 심원사(心源寺, 국보유적 제91호)가 남아 있다. 정방사에서 정방산맥을 타고 서쪽으로 올라가면 최고봉인 천녀봉이 나온다. 이 천녀봉을 등지고 서쪽으로 백운봉과 청학대, 동쪽으로 청룡봉과 관음봉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자비산 중턱에 심원사가 자리 잡고 있다.

심원사는 고려 초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지만,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수 없다. 이곳에 있는 '심원사사적비' 비문에 따르면 1374년(공민왕 23년)에 고쳐지었다고 한다. 고려 말경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 오던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쇠락한 절을 보고 1374년(고려 우왕 즉위년)에 중건하면서 중국의 유명한 화가 오도자(吾道子)의 관음탱화를 봉안했다고 한다.

황해북도 연탄군에 있는 심원사 전경. 현재 보광전, 응진전, 향로각, 칠성각, 청풍루가 남아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황해북도 연탄군에 있는 심원사 전경. 현재 보광전, 응진전, 향로각, 칠성각, 청풍루가 남아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경내에는 보광전과 응진전, 향로각, 칠성각, 청풍루가 사동중정형(四棟中庭形)으로 배치되어 있다. 즉, 마당을 중심으로 주불전인 보광전과 출입문인 청풍루가 남북으로 마주 보고 있고 마당 동쪽에 응진전, 서쪽에 향로각이 마주 보고 있다. 여기에 보광전 뒤쪽으로 칠성각이 따로 있다. 특히 보광전은 성불사 응진전, 경상북도 영주의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건물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의 하나다.

심원사로 가는 능선에는 심원사의 역사를 기록한 '심원사사적비'와 '해월당부도비'가 남아 있다. 둘 다 보존유적으로 지정돼 있다.

황해북도 연탄군에 있는 심원사 보광전. 성불사 응진전과 함께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의 하나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황해북도 연탄군에 있는 심원사 보광전. 성불사 응진전과 함께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의 하나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황해북도 연탄군에 있는 심원사 부도탑들. 해월당부도탑은 보존유적 1129호로 지정돼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황해북도 연탄군에 있는 심원사 부도탑들. 해월당부도탑은 보존유적 1129호로 지정돼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심원사에서 동남쪽으로 내려가면 황해도의 소금강(小金剛)으로 불리는 숭덕산(崇德山)이 나온다. 숭덕산은 신선이 마시던 샘물이 남아 있다고 전하는 명승지다. 서흥군에 속해 있는 이 산의 기슭에 귀진사(歸眞寺, 국보유적 제92호)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절은 12세기 중엽에 성수사(星宿寺) 소속의 암자로 건립되었고 16세기 중엽 크게 확장, 중건했다.

황해북도 서흥군에 있는 귀진사 전경.(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황해북도 서흥군에 있는 귀진사 전경.(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황해북도 서흥군에 있는 귀진사의 출입문인 주악루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황해북도 서흥군에 있는 귀진사의 출입문인 주악루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주악루를 통하여 절 마당에 들어서면 맞은편에 본전인 극락전, 서쪽에 심검당이 자리 잡고 있다. 이외에 칠성각, 향로전, 동선당, 서선당, 정광여래칠층사리탑이 있었으나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이 절에는 '용감수감(龍龕手鑑)', '법화경', '화엄경', '십지론', '수륙문', '42장경', '부모은중경' 등 불경 판목 2천여 장이 보존되어 있었는데 일부는 일제강점기에 유실됐고, '용감수경' 등 남은 판목은 묘향산박물관으로 옮겨 보관되고 있다.

한편 사리원시 중심부에는 봉산탈춤으로 유명한 경암루(景岩樓, 국보유적 제145호)가 남아 있다. 조선시대 때 봉산군 관아의 누정으로 처음 세워진 경암루는 1798년에 군 소재지를 봉산군 구읍리로 이전하면서 함께 옮겨지었다가 1917년에 현재의 위치로 다시 옮겨왔다. 6·25전쟁 때 폭격으로 심하게 파괴된 것을 1955년에 원상 복구했다.

황해북도 사리원시 경암산에서 본 민속거리(위)와 민속거리에서 본 경암산과 경암루 전경(아래).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황해북도 사리원시 경암산에서 본 민속거리(위)와 민속거리에서 본 경암산과 경암루 전경(아래).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황해북도 사리원시에 있는 경암루. 현재 경암루 앞 광장에서는 매년 봉산탈놀이 경연대회가 열린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황해북도 사리원시에 있는 경암루. 현재 경암루 앞 광장에서는 매년 봉산탈놀이 경연대회가 열린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09.© 뉴스1

일제강점기 때는 5월 단오절이면 경암루 아래에서 봉산탈춤을 추었다고 한다. 봉산탈춤은 황해도에 널리 전해져 오는 탈춤의 한 종류이다. 현재 경암루 맞은 편에는 사리원민속거리가 조성되었고, 여기서 추석 때 봉산탈놀이 경연대회가 열린다. 북한은 1980년대 중반 "봉산지방에서 전해져오는 민속무용유산의 하나"로 재평가하기 시작했고, 22종의 봉산탈도 현대적으로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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