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주문한 '준법위' 만들고도…이재용 '실형' 못피한 이유

(서울=뉴스1) 박승주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1.1.18/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서울=뉴스1) 박승주 기자 =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3)이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판사 재량으로 형을 깎아주는 '작량감경'은 이뤄졌지만 삼성 측이 바라던 집행유예는 선고되지 않았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 송영승 강상욱)는 18일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불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오던 이 부회장은 이날 선고로 법정구속됐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삼성 경영권 승계 및 지배구조 개편을 도와달라는 청탁을 하고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2017년 기소됐다.

이 부회장은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그런데 대법원은 뇌물액 50억여원을 추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에 뇌물·횡령 금액이 86억여원으로 대폭 늘어나면서 이 부회장에겐 실형이 불가피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죄에서 횡령액이 50억원이 넘으면 5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한다.


일각에서는 '작량감경' 등을 거친다면 집행유예가 선고될 수 있단 관측도 내놨다. 작량감경은 판사가 재량에 따라 처단형의 상한과 하한을 모두 2분의 1로 감경하는 것이다.

재판부가 작량감경을 결정했다면 이 부회장의 형량은 징역 2년6월까지 감형될 수 있다. 또 3년 이하의 징역에서는 집행유예가 가능하기에 집행유예가 선고될 가능성도 있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대법원의 유무죄 판단을 뒤집을 수 없기에 결국 쟁점은 이 부회장에 대한 양형, 그중에서도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에 대한 평가였다.

형사1부는 삼성에 준법감시위원회 설치를 권고하면서 위원회 활동이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이 있으면 이 부회장에 대한 감경 요소로 삼을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관련 뇌물공여 등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1.1.18/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결과적으로 재판부는 작량감량을 거쳐 최하한인 '징역 2년6월'을 선고하면서도 실형은 불가피하다고 봤다. 이 부회장으로서는 작량감경이라는 1차 고개는 넘었지만, 집행유예라는 2차 고개는 넘지 못했다.

이를 두고 삼성이 준법감시위원회를 통한 준법감시활동을 나름대로 진행하긴 했지만 실효성과 지속가능성 면에서 부족한 것으로 판단됐단 분석이 나온다.

이날 재판부도 "삼성의 강화된 준법감시제도는 일상적인 준법감시 활동에 더해 대외후원금과 내부거래 등 이 사건에서 문제된 위법행위에 초점을 맞춰 준법감시 활동을 하고 있다"며 "그러나 앞으로 발생가능한 새로운 유형의 위험을 정의하고 이에 대비한 선제적 위험 예방·감시 활동을 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과거 삼성그룹에서 발생한 위법행위들을 살펴보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조직을 통해 위법행위가 이뤄졌다"며 "현재 삼성의 준법감시제도에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조직을 통해 위법행위가 이뤄지는 것에 대한 대응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어 "최고경영진의 위법행위를 통제하는 방식에 실효성이 있다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와 같은 실행행위가 이뤄질 개연성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계열사들에 대해서는 계열사에서 독립된 준법감시위에 의한 직접적인 감시체계가 확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경영권 승계 관련 불법행위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삼성그룹 계열사 대부분에 대해 실효적인 준법감시가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 준법감시위만으로는 이를 감당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한 판사는 "작량감경 사유와 집행유예 사유는 중첩되는 부분이 있고 사유에 준법감시위 활동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삼성이 어느 정도 준법감시기능을 위해 노력했지만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날 재판부는 "우리나라 최고 기업이자 자랑스러운 글로벌혁신기업인 삼성이 이처럼 정치권력이 바뀔 때마다 범죄에 연루된다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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