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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재수감으로 잃은 것들[오동희의 思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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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2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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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출장을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0월 14일 오전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공항를 통해 귀국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유럽 출장을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0월 14일 오전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공항를 통해 귀국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이재용이 없다고 삼성이 굴러가지 않는다면 그게 정상적인 조직입니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수감을 두고 실형이 가혹하다는 지적에 대한 반론이다. 어떤 조직이든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게 정상이지만 세상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그 시스템도 사람이 중심일 수밖에 없다.

시스템만으로 돌아간다며 대통령이나 총리도, 장관도 필요 없다. 어떤 사회든 그 조직 리더의 역할이라는 것이 있다. 삼성의 리더로서 이 부회장을 재수감함으로써 삼성은 물론 우리 사회가 잃은 것은 분명 있다.

또 일각에선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해야 하고 삼성 총수인 이 부회장도 예외일 수 없다"며 그의 구속이 사회정의 실현에 이바지해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것이 많다고 주장한다. 정의를 구현했다는 것이 사실일까.

대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며, 다수로서의 정의에 부합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렇다고 여러 사람이 동의하는 '다수로서의 정의'가 모두가 수긍하는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아니다.

대법원 등 사법 시스템이 절대 선이자 전지전능한 신적 존재는 아니라는 얘기다. 존중하지만 개개인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민주주의다.

몇 년 전 어느 저녁 식사자리에서 만난 한 전직 대법관은 학교 다닐 때 공부했던 법전에서 배웠다며, "판결이 반드시 사실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법에 문외한인 기자 입장에서 법원의 판결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적잖이 놀랐었다.

사회 갈등의 마지막 심판자로서, 선량한 수호자로서 법의 판단을 정의이자, 진실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설혹 진실이 아니더라도 진실에 가까울 것이라는 게 우리의 희망이며 믿음이다.

하지만 이와는 동떨어진 그의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1심, 2심을 거쳐 대법원에서 판결했으면 그게 진실 아니냐?'라는 주장을 뒤집는 말이기도 했다. 그만큼 진실을 추구하는 길은 멀고, 정치적으로 엇갈리는 판결이 있을 수 있다는 게 그 말의 핵심이었다.

그의 말처럼 판결이 사실이 아닌 경우는 우리 주변에서 자주 목격된다.

1999년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 3인조 강도치사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옥살이를 했던 세 명의 청년이나, 2000년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하게 10년간 옥살이를 했던 최모씨도 마찬가지다.

더 가까운 예로 연쇄살인범 이춘재가 저지른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윤씨에게 '진범'이라는 낙인을 찍은 것도 '인권의 최후의 보루'인 법원이었다.

당시 최선의 판결을 했다고 주장하겠지만 그 판결이 사실이 아니었음이 진범인 이춘재의 증언으로 증명됐다. 법이 시민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사례다.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재판에서 우리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세 가지 개념을 접했다. '경제공동체'와 '묵시적 청탁', 그리고 '기업 경영권 승계는 대통령이 허락하는 것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가족 관계나 어떤 법률로 묶이지 않더라도 이익 공동체가 돼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국가대표를 육성할 의도로 민간인을 지원한 것이 공무원에 대한 뇌물로 변하는 순간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또 말을 하지 않고 눈빛만 보고 알 수 있는 소위 '궁예의 관심법'으로 '마음 속으로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청탁'도 누군가 이를 알아내 청탁으로 처벌할 수 있음을 깨우친 사회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이 판결이 법과 정의를 수호하고,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데 일조했다는 주장에 100% 동의하기 어렵다.

최근 현대차, LG, 한진, 한화, DB 그룹 등의 사례에서 보듯 국내 어느 기업도 대통령에게 경영권 승계를 부탁해 회장이나 대표에 오른 경우가 없다. 그냥 기업 내부에서 최고경영자를 정하면 되는 내부 프로세스일 뿐이다. 역사의 평가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이 부회장의 재수감으로 잃은 것은 아버지를 잃은 자녀들이나, 아들을 잃은 어머니라는 개인사적 손실이 아니라, 그의 위치에서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여러 기회를 잃었다는 점이다.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 생존시 '경영수업'을 오래 했다. 그 대부분은 인맥을 넓히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 미국, 중국, 일본, 인도, 러시아, 영국 등 전세계 최고 정치인이나 경제인들을 협상 테이블에 앉힐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실관계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 부회장이 코로나19 백신 협상을 위해 UAE를 방문하려 했다는 것도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얘기는 아니다.

지난해 10월 이건희 삼성 회장이 타계한 후 삼성의 총수로서 역할을 해야 할 이 부회장이 선량한 관리자로서 기여할 수 있는 길이 막힌 것이다. 준법감시위원회와의 잦은 소통을 통해 삼성을 글로벌 리더 기업으로 만들어가겠다던 포부도 꺾였다.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논리는 경영권 공격에 나섰던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에게는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을 통해 먹잇감을 공략할 수 있는 좋은 재료를 준 셈이다. 이 또한 우리의 국가적 손실이다.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그동안 그를 공격했던 이들은 "해냈다"며 카타르시스를 느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잃은 것은 정치적 논란 속에 희생된 기업과 기업가다. 그 손실이 시간이 흐른 후에 입증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 오동희
    오동희 hunter@mt.co.kr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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